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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olo Jun 18. 2021

수평선 너머로 향하며 (2)-5

-직장생활이라는 여정과 그 무료함에 관하여.

 너무 큰 기대는 너무 큰 실망을 안긴다. 

낯섦이 낯설 지라도, 그것은 익숙함은 아닐 것이다 낯섦도 아닐 것이다. 

아마도 나는 더 이상 낯섦을 기대할 수 없게 됐나 보다.


 이런 실망감의 손을 잡고 찾아온 피로감은 나를 실망시키고 피로하게끔 한다.

그 피로는 지독하리만큼 쉽사리 가시지 않기에, 나는 그 찌들어가는 피로함에 좌절하곤 했다.

채워지지 않던 나의 허전함은 어찌나 쉬이 그 피로감의 손을 잡는지, 

넘기고 넘겨도 채워지지 않던 나의 허기의 기저에는 피로감, 허전함 그리고 공허함이 자리했다.

아주 깊이깊이.


 낯섦을 기대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여정이었다.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여정뿐이었다.

직장생활이라는 여정에 어쩌면 너무나 큰 기대를 했는지도 모른다. 그 기대에 이 무거운 몸을 기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슬하고 위태로웠는지도 모른다 나의 불안함은 그 불균형을 끊임없이 흔들어댔기에.


직장생활이라는 여정에선 난 더 이상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까, 내가 나일 수 없기에 이 여정의 끝이 아닌 시작이 그리고 이 시작의 끝이 '무료함'이란 것을 나는 온몸으로 알 수 있었다. 

온몸으로 알았지만, 온몸으로 느껴야만 했다. 이는 여정을 시작해야만 했던 나의 일이니 말이다. 

지금 이 순간 한 번만 더 기대하고픈 것은, 나의 이 여정이 시작이 아니라 처음이 아니라 그 끝이길 바라는 것이다. 


 무료함에 끝이 있을까? 아니면 무료함은 그저 무료함일까?.

나의 여정이 끝나기도 전에 채 시작도 전에 무료한 것은 내가 여전히 큰 기대를 이 여정에 하고 있다는 것일까?.


 무료함에 무료함을 더해도 무료하니, 이 여정은 나에게만큼은 무료하기만 하다. 

여정에 있을 인생의 고달픔은 맛보지도 않았는데 그리고 장밋빛 미래는 아직 내 손에 잡히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잡은 적도 없는 장밋빛 미래가 마치 잡아본 듯 선명하다. 맛본 적도 없는 그 고달픔이 마치 즐겨 찾는 듯이 선명하다. 


 나는 이 여정의 끝을 여전히 알지 못한다. 끝내본 적이 없기에 그리고 여전히 이 여정을 걷고 있기에.

여전히 걸어야만 하는 이 여정의 끝은 걸어야만 알 수 있지만, 지금 이 순간의 나는 그 끝에는 없음만은 알고 있다. 내가 나이고 싶음을 지키고 싶은 것은 나의 이상(理想)이고, 이 여정에서의 이상(常)이다. 


 이 여정의 풍광을 바라보며, 나는 나의 지난 풍광을 기억한다.

낡고 낡은 지난 풍광을 꺼내 들며 나는 지금 이 여정의 끝을 그려본다. 

이 여정의 끝에도 내가 있고, 시작에도 내가 있다. 나는 이런 나를 마주하고, 그런 나를 마주해야만 한다.

이 여정의 끝과 시작도 이렇게 마주해야만 한다.


(2)-6.

Covent Garden coffeehouse, Bilker Allee 126, 40217 Düsseldorf, Germany


나는 '여전히' 큰 창문을 통해 마주하는 풍광을 좋아한다.

아주 여전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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