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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olo Aug 12. 2021

수평선 너머로 향하며 (2)-6

-직장생활이라는 여정과 그 무료함에 관하여.

 직장생활이라는 여정 속에서 나는 이 끄적임을 시작했다. 이러한 끄적임 조차도 축복일 수 있음을 자그마치 '수평선 너머로 향하며의 (2)-6'에 이르러서야 느낀다는 것이 나는 부끄럽지는 않다. 내가 나일 수 있기 위한 몸부림 속에, 그런 몸부림을 치는 내가 집어 들 수 있었던 것은 볼펜 한 자루만 이었으니까. 그것은 현대 사회의 볼펜 한 자루라 할 수 있는 이러한 끄적임일 테니까 아무나 볼 수 없는 나만의 공간에서의.


 시간의 흐름은 당연하다듯이 내가 내린 결정 그리고 생각들 조차도 뒤집어 놓는다. 아니, 뒤집어 놓고자 만 한다. 나는 이 시점의 이 것을 알기 위하여, 그 시점의 그것들에 부딪혀 가고 있었다고 말하며. 하지만 부딪힌 나는 이것을 알고 싶지 않았다. 허나 나는 이것을 알아야만 했고 그래서 부딪혀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지독하게 따분하고 무료했나 보다.


 하지만 이런 지난 시간들은 여전히 내게 생생하지만, 지금의 나의 생각들을 뒤집어 놓기엔 부족한가 보다. 내가 이러한 끄적임을 이어가는 것에는 여전히 내가 나이기를 지키고 있다는, 그 말과 다름 아니기에. 


 무엇을 위해 이 글을 시작했나 보다는, 지금 이 순간 이 끄적임을 이어가며 마주한 여정을 곱씹어보고자 한다. 무료함을 유료함으로 바꾸기 위한 필사적인 발버둥은 우연하게도 시간의 유한함을 곱씹게 하는 순간들을 나에게 가져다주었다. 유한함을 매 순간 곱씹는 그 순간들은 역설적으로 그리고 필사적으로 무한하기를 바라는, 그 유한함이 무한함일 수 있기를 바라는 순간들이었다. 


 내가 그토록 갈구했던 유료함은 무료함 속에 있을 수 있었음을 나는 이제야 어렴풋이 느끼는 듯하다.

직장생활의 무료함은 결국 직장생활 외의 유료함을 돌아보게끔 했나 보다. 직장생활이 유료 하기만을 바랐던, 멋모르는 애송이의 푸념일지도 모를 나의 끄적임이다. 하지만 그런 끄적끄적 속의 내가 있고 내가 있기에, 나는 이러한 끄적임을 멈추지 않을 수밖에 없는지도 모를 터다.


 이것을 잃기에 저것을 얻는다라는 로직은 꽤나  합리적인 것처럼 비추어진다. 직장생활의 무료함을 얻는 대신, 직장 외 생활의 유료함을 얻었다 라는 결론은 꽤나 합리적인 것처럼 느껴지기에. 

허나 그러한 사고 조차 꽤나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또 다른 '여정'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내가 꽤나 합리적일 수 없음을 그리고 못함을 말하는 것만 같다. 다가와서 마주하는 그리고 이어가는 시간이 언제나 합리적일 수 없음을 여전히 모르는 듯 이 말이다. 

하지만 여정이 합리적이지만은 않음을, 직장생활의 이 '무료함'을 통해서 위안하는 것이 아이러니컬하다.


여정의 무료함 속의 유료함 속의 유한함 속의 무한함 속의 유한함 속의 유료함.


주말 속의 픙경 속의 유한함 속의 유료함 속의 무한함 속의 무료함 속의 유한함.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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