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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kie Oct 02. 2020

제로 웨이스트 도시락 : 쓰레기 없이 30분 만에 완성

버리는 것 없이 맛있게 살아가는 법

"이야, 부지런하네", "오늘도 건강식이네!", "Frankie 씨 다이어트해?". 내가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열면 듣는 말 TOP3다. 내가 부지런하고 건강을 챙기기 위해 매일 도시락을 가져온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경기도 오산이다. 자주 묻는 질문에 대해 먼저 답변하자면, 나는 게을러서 레시피를 파괴하고, 딱히 건강을 챙기지 않으며, 체중감량을 하는 거면 진작에 술부터 끊었어야 했다. 이마저도 게을러서 설명은 생략하고 "하핫"이라는 웃음으로 대체한다.


그럼에도 왜 꾸준히 점심 도시락을 싸오냐고 묻는다면, 시간을 절약하고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기 위해서다. 매일 점심시간 30분을 절약해서 코딩 과제를 하거나 책을 읽는다. '오늘은 아보카도!'라고 외치면 그 날은 일단 동료들과 같이 먹기는 글렀다. 점심만큼은 나에게 있어서 타협이란 없으니까. 그 짧은 1시간 안에 회사 바로 옆 중국 요릿집에도, 맞은편의 베트남 요리 전문점에도 없는 아보카도를 찾아 모험을 떠나야 한다. 그 날따라 서브웨이조차 당기지 않는다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이러니 나에게 도시락이 작고 소중할 수밖에 없다. 도시락으로 비용이 절약되고 지구가 행복한 것은 어쩌다 보니 생긴 부차적인 효과일 뿐이다.


기쁜 소식은 최근 회사 내에서 점심시간을 함께하는 도시락파 파티원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물어보면 이유는 늘 간단하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최근 파티원들은 플라스틱을 줄이고 싶은데 오늘도 플라스틱을 이만큼이나 썼다고 나에게 고민을 토로한다. 그 해결책으로 내 도시락을 보여줄라치면 바로 '근데 집에서 싸오는 건 웬만큼 부지런하지 않으면 힘들잖아'라는 말이 돌아온다.


그래서 오늘은 게으른 제로 웨이스터의 도시락 만들기 과정을 공개한다. 불을 쓰지 않고, 30분 안에 끝낼 수 있는 3일 치 도시락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장보기부터 회사에서 먹고 집에 가져가기까지 쓰레기는 최소한으로 하는 것이 인지상정.






오늘의 메뉴는 오키나와 명물인 타코 라이스. 말 그대로 밥에 타코 재료를 올린 음식이다.




장보기 : 천주머니 들고 시장, 야채가게 가기 (저렴함 + 1)


제로 웨이스트 장보기 비결을 터득하기 전, 나는 롯데마트의 가오나시였다. 사과 두세 개까지도 플라스틱 봉지에 포장해둔 걸 어쩔 수 없이 집어 들 때마다 아쉬움과 탄식의 의미로 '아...'라고 혼자 내뱉곤 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시장과 천주머니라는 대체재가 있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그때는 플라스틱에 포장해서 팔면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사야 하는 줄 알았던, 소극적인 제로웨이스터였다.


지금은 아침에 천주머니를 챙기면, 퇴근하는 길에 시장에 들러 야채를 사 온다. 마트와는 다르게 플라스틱을 피해 갈 수 있는 선택지가 있고, 저렴함은 덤이다. 예전에는 시장에 대한 편견들도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요즘은 카드도 되고 배달도 되는 데다, 다 바구니에 담겨있으니 정답은 내가 고르기만 하면 된다. 세상 참 좋아졌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플라스틱에서 야채를 꺼내고 그것을 정리하고 매번 버리러 가는 건 생각만 해도 귀찮아서 습관적으로 플라스틱은 필사적으로 피해 가는 편이다. 심지어는 집을 구할 때 고려하는 것 중 하나가 시세권이냐 혹은 야세권(시장이나 야채가게가 도보 10분 이내인 집)이냐 일 정도이다.






지금은 감사하게도 보관용기를 빌려서 쓰는 중. 나중에 이사를 가도 보관용기를 쓸지는 아직 신박한 방법을 고민 중이다.






프렙과 요리 : 내일을 위한 밀키트 만들기 (시간 절약 + 1)


몇 년 전에 일주일치 식사를 만들어두는 밀프렙이 유행했다면, 이제는 밀키트*의 시대라는 것을 실감한다. 뉴스를 챙겨보지 않아도 코로나와 장마 덕에 밀키트 매출이 급증했다는 소식이 종종 들려오기 때문이다. 나의 식사도 3년 전 열정적인 밀프렙을 지나 이제는 밀키트의 시대로 진입했다.


물론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밀키트는 사지 않는다. 위생이나 디자인 등 회사 나름의 이유는 있겠지만, 식사 한 번을 위해 이렇게까지 플라스틱을 써도 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만한 쓰레기 양이 그 첫 번째 이유이다. 미세 플라스틱을 줄이는 좋은 방법은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것이라 믿는 것도 있다. 두 번째는 첨가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굳이 건강상의 이유가 아니더라도, 소스는 단순하고 덜 짜게, 설탕 없이, 그렇게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기는 타입이다. 이런 조건을 충족시켜주는 것은 집에서 만들어두는 수제 밀키트뿐. 역시 인생은 DIY다.


예를 들어 두부 샐러드를 만든다고 치자. 밀프렙처럼 일주일치 두부 샐러드를 만들어두는 게 아니라, 3일치 두부 샐러드를 위한 재료를 손질해서 따로 보관한다. 도마를 꺼내지 않아도, 가스레인지를 켜지 않아도 그다음 날 손질된 재료를 넣어서 원하는 만큼만 먹을 수 있도록 말이다. 수제 밀키트의 장점은 중간에 다른 요리로 방향을 바꿔도 된다는 것. 내 식욕의 소리를 따라 두부 샐러드는 그다음 날 두부를 넣은 미소된장국과 간단한 사이드 샐러드로 변신할 수도 있다. 일주일치 만들어두면 중간에 질리기도 하고, 냉장고 전력을 뺏는 기분도 들고, 사람에 따라서는 냉장고에 오래 보관된 음식을 선호하지 않는 밀프렙의 단점들을 보완해준다.


*밀키트란 손질된 식재료와 믹스된 소스를 이용해 쉽고 빠르게 조리할 수 있는 식사키트이며, 최근 유명 쉐프들의 레시피로 제공되는 Meal-Kit도 출시되고 있다. (출처 : 위키피디아)






정리하기 : 주방세제 없이 설거지하기 (생필품 비용 절약 + 1)


여러분에게 고백하겠다. 제로 웨이스트 도시락이라 해놓고 플라스틱이 나와버렸다. 그렇지만 그 실패담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올린다. 두부 대신 버섯을, 카레가루 대신 유리병에 든 큐민 가루를 활용했다면 완벽한 제로 웨이스트가 되었을 것이라 반성해본다.


음식물 쓰레기는 잔가시가 있는 오이의 꼭지 두 개가 전부다. 야채와 과일은 씹기 힘든 가지만 빼놓고 다 먹는 편이다. 요새 나의 취미는 사과도 가지만 빼고 통째로 집어삼키는 마술일 정도. 물론 처음부터 뭐든 잘 먹진 못했다. 가장 처음에 시도했던 건 야채의 뿌리를 익힌 요리에 넣고, 그다음엔 생으로도 먹고, 다른 부위도 먹기 시작했다. 마치 생선에는 버릴 부위가 없다고 하는 말처럼, 야채에도 버릴 부위가 하나 없다.


욕실에서 노푸를 한다면 주방과 세탁실에선 노 세제를 실천하는 중이다. 동물성 기름을 먹을 일이 없어서 주방세제 없이도 설거지가 충분히 가능하고, 그렇기에 세제를 따로 구매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렇다고 세제를 전혀 안 쓰는 건 또 아니다. 대신에 쓰는 건 천연세제들. 올리브 오일을 적게 쓰면 물로도 가능하지만, 오일 파스타처럼 기름을 많이 쓴 요리를 먹은 그릇에는 필요하다.


소프넛 우린 물은 기대했던 것보다 효과가 없었고, 내가 애용하는 방법은 베이킹소다를 물에 걸쭉한 농도로 타서 쓰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제의 유해성에서 멀어질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법이다. 최근 책에서 뚝배기의 작은 숨구멍에 세제 흡수되면 나중에 음식을 먹을 때 주방세제도 함께 먹게 된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깨끗이 헹구면 된다고 하지만, 여전히 가끔씩 주방세제의 유해성에 대한 이야기가 거론된다. 덜 유해한 세제를 찾기보다, 아예 다른 것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제로 웨이스트야 말로 이렇게 창의성을 발휘하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다.







사진 속 빛은 직사광선이 아니다. 그저 스탠드일 뿐.




보관하기 : 냉장고가 없어도 괜찮아 (전기세 절약 + 1)


이미 씻은 야채와 과일, 손질된 재료들은 냉장고에 넣지만, 그 외의 재료들은 냉장고 밖에 보관한다. 보관 팁은 간단하다. 최대한 바닥에 가까이 보관할 것, 바닥 난방을 키는 계절이라면 위쪽에 보관할 것. 포인트는 가장 찬 곳에 보관하는 것이다. 이것 하나만 지키면 여름에도 바깥에 보관할 수 있다. 아, 직사광선은 피해서 보관하는 것도 잊지 말자. 가장 찬 곳을 찾아 겨울에 베란다에 두면 얼음이 씹히는 아이스 파프리카를 맛볼 수 있으니 뭐든 적당히 조절하도록 하자.


이미 냉장고에서 한번 살았던 야채와 과일들은 실온에서 오래가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나 또한 경험상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냉장고 없이 밖에 내다 놓고 파는 시장이나 야채가게를 선호하는 것도 있다. 시금치나 상추 등 샐러드 야채는 실온에서 한없이 약하지만 하루 이틀 보관하는 정도라면 야채 상태에 따라 가능하긴 하다. 제일 좋은 것은 살랑살랑거리고 말랑한 것들은 당일날 다 먹어치우는 것이 최고다. 아니면 밀키트행.










열심히 먹기 : 커트러리와 손수건을 챙길 것 (깔끔함 + 1)


그렇다면 점심시간 실전을 위한 도시락 준비물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넉넉한 스테인리스 도시락통이다. 먼저 칭찬하고 싶은 건 가방 안에서 굴러다니지 않는 안정감! 그리고 사이즈가 각각 다른 보관용기 여러 개나, 도시락통 안에 각종 칸을 나누는 것들이 들어있는 잡다함을 선호하지 않는다. 다른 무엇보다 설거지할 때 귀찮다. 넉넉한 스테인리스 도시락통에 사이좋고 보기 좋게 반찬과 재료를 잘 분배해 넣는 것도 도시락 만들기의 하나의 묘미라 생각한다.


그다음으로 챙기는 건 나무 수저 세트와 테이블클로스다. 테이블클로스를 굳이 챙기는 이유는 뭔가 떨어지면 굳이 휴지로 닦지 않아도 되고 먹은 자리가 깔끔하기 때문이다. 냅킨 대용이었던 손수건은 시국이 시국인지라 집에서 쉬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냅킨을 쓸 일은 없다. 일단 무언가를 보면서 먹지 않고, 식사에 오롯이 집중한다면 음식을 떨어뜨리거나 흘릴 일이 줄어든다. 깔끔하게 먹는 것을 염두에 두고 도시락을 만들 때도 최대한 먹기 좋은 사이즈로 자르는 등 여러모로 신경을 쓰기도 한다. 때로는 먹방 ASMR을 찍는 유튜버에 빙의해 음식이 아주 깔끔하게 사라지는 마술을 보여주기도 한다.


요리와 식사시간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설거지가 아닐까. 생각을 전환해보면, 설거지는 곧 식사의 마무리이자, 요리를 해준 나 자신과 음식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의식이다. 더 깨끗이 비워놓을수록 더 맛있는 내일의 식사가 기다리고 있다. 귀찮기보다는 응당 해야 하는 일이고, 몇 시간 후의 나와 내일의 나를 위해 기꺼이 하는 일이기도 하다.


설거지는 점심을 먹고 나서 바로 하되, 테이블클로스를 식기 건조대 대신에 쓴다. 그릇을 말릴 때 밑에 수저를 깔아놓으면 도시락통이 습기에 점령당하지 않는다. 회사 탕비실이나 주방이 어떤 구조인지에 따라 다른데, 되도록이면 같이 쓰는 공간에 해가 되지 않도록 적당히 말리고 양치 후 수거해올 때도 있고, 그대로 뒀다가 퇴근할 때 가져가는 곳도 있었다. 매일 도시락통을 설거지 후 키친타월 5~10장을 뽑아서 물기를 닦는 모습을 본다. 키친타월로 일일이 닦는 방법도 있다면, 이런 방법도 있다는 것을 소개해보고 싶었다.






봄에 만들었던 파이어 도시락은 이런 느낌. 지금은 계란도 안먹지만, 그 땐 계란 처돌이였는지 사진 속에 종종 등장한다.




여름 : 불 쓰지 않는 요리를 지향한다 (시원함 + 1)


이 날 만든 타코 라이스도 불을 전혀 쓰지 않고 만들었다. 조금 머쓱하지만 밥 때문에 전기의 힘은 좀 빌렸다. 평소에도 야채는 날 것 그대로를 먹으려고 노력한다. 시금치나물보다는 시금치 샐러드를 먹고, 토마토 파스타를 한다면 면만 데치고서 찬 그릇에 오일과 토마토를 넣어 섞고 간을 한다. 1분 동안 데쳐야 하는 야채가 있다면 30초만 데친다.


열대우림 속 초식동물처럼 먹으려는 이유는 2가지다. 첫 번째는 여름엔 더우니까, 두 번째는 영양소와 재료 본연의 맛을 위함이다. 나는 작년에 6개월간 로비건으로 살았다. 생채식을 했다는 뜻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식사가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풀 맛도 점점 질렸다. 믹서기를 사고 싶진 않았다. 어찌 보면 내 생채식은 실패했고, 공부가 더 필요했다. 그렇지만 로비건을 하면서 분명하게 배운 것은 생채소의 놀라움이었다. 아삭함은 늘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줬고, 내 혀의 감각은 그 전보다 더욱 발달했다. 꼭 불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배움은 오늘날 나의 단순한 요리 습관을 완성시켜주었다. 내일 먹을 야채는 데치기보다 샐러드를 해 먹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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