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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kie Jun 22. 2024

5년 간의 미니멀리즘

다큐일 줄 알았는데 현실은 시트콤

7평짜리 방, 가구는 작은 책상, 큰 의자, 그리고 스툴 하나. 지금 가지고 있는 가구는 이 세 개가 전부다. 졸업 논문을 쓰려고 구글 검색을 하던 중에 우연히 발견한 미니멀리즘 관련 책 속 사진에서 시작된 게, 벌써 5년이 지났다. 그러니까 이 편지는 한국에서 시작되었고 지금은 나에게로 옮겨진 이 편지가 유지되지 못하고 4년 뒤에는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내 곁에 남아있는 뭐 그런 상황인 것이다. 


"그 미니멀리스트 분 맞죠?"라는 말을 처음 보는 회사 사람에게서 듣기도 하고, 책상에 물건을 하나도 두지 않아 잠깐 노트북을 들고 회의에 갔다 오면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다른 사람이 앉아있기도 했다. 사람들은 내 방을 보고 경악을 했지만, 나 또한 그들의 방을 보고 경악을 하기도 했다. 5년 간의 미니멀 라이프는 평화로운 수행 같기도 했지만, 때로는 그런 시트콤 같은 즐거움도 있었다. 오늘은 그 시트콤 속에서 무엇이 변화했는지, 그리고 시즌 6의 계획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빈티지 가구를 센스 있게 잘 활용하는 가게들을 볼 때마다 늘 감탄한다. 






수납장 없이도 물건이 수납되는 삶


이제는 더 이상 '미니멀'한 수납을 위해 또 다른 정리 도구를 사지 않는다. 물건이 많아 집이 좁아 보인다며 더 넓은 공간으로 이사 가기보다, 어떻게 하면 작은 공간에서 더 효율적으로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미니멀리즘 연습생 시절, 각종 정리정돈에 대한 책을 읽으면 어떤 도구와 수납장을 이용해서 물건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 많았고, 거기에 따라서 나도 이것저것 샀다. 그러던 어느 날, 물건을 줄이고 정리하기 위해 정리 도구를 산다는 것은 모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수납장과 정리 도구를 포함한 물건에 돈을 쓰지 않게 되었다. 인테리어 대신 베란다에서 보이는 풍경과 채광, 그리고 주변의 자연을 방 안에 담는다. 나는 이제 어딜 가도 그 집에 존재하는 작은 서랍이나 찬장 몇 개로도 충분하다. 




물건을 늘리는 건 '불안과 걱정'이다


나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알게 되니 불안이 줄어들고 확신이 생겼다. 그 덕분에 다소 과감한 결정을 하기도 하고, 거절을 잘하게 되었고, 훨씬 결단력 있는 나를 만나게 되었다. 스티븐 잡스가 검은색 터틀넥을 고집하듯, 새로운 옷이 없어도 나는 내가 늘 멋있다고 생각한다. 옷은 종류별로 하나씩만 가지고 있고, 이젠 양말과 속옷 이외에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서, 또는 어떻게 보이기 위해 사는 옷은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물건을 늘린다는 걸 깨달았다. 이게 여행을 갈 때 우리의 짐이 무거워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혹시' 그 나라에 이 물건이 없으면 어떡하지?, '혹시' 보조배터리를 가져가도 배터리가 부족한 상황이 오면 어떡하지? 등등. 어쩌면 그런 불안과 걱정의 무게가 곧 우리의 여행 짐 무게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나의 짐은 5년 전에 비하면 많이 가벼워졌지만, 아직 더 줄일 수 있는 여지는 있다.


작년에 2주간 해외여행을 갔을 때, 백팩 하나만 들고 간 적이 있다. 수화물로 부칠 짐이 없어서, 공항 도착 후 30분 만에 비행기 탑승구 앞 카페에 도착한 적이 있다. 그리고 도착한 후에도 짐을 찾지 않고 바로 나갈 수 있었다. 짐이 적고, 항상 가지고 다니는 물건은 정해져 있으니 잃어버릴 일이 없어서 좋다. 앞으로도 물건에 신경을 쓰는 시간과 에너지를 줄이고, 그만큼 더 나은 삶을 위한 결정에 쓰면서 살아가고 싶다. 




물건은 사지 않는 게 아니라, 순환하는 것


나는 물건에 생명력이 있다고 믿는다. 잘 관리하면서 오래 쓸수록 그 물건의 생명력은 살아나지만, 어딘가 어둡고 통풍이 안 되는 곳에 계속 방치되어 있을수록 그 생명력은 사라진다. 한 계절동안 손대지 않은 물건을 중고로 팔거나, 기부하는 것은, 물건의 생명력을 지키고 순환시키기 위함이다. 물건은, 돌아오는 거니까. 


만약 어쩌다 가끔 물건이 필요할 때에는, 물건을 새로 사기보다는 중고 거래 어플을 먼저 찾아본다. 호주에서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중고 물건을 파는 가게를 먼저 찾아보고, 반대로 내가 쓰지 않는 물건이 없으면 기부하는 습관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니까 미니멀리즘은 물건을 무조건 사지 않고, 필요 없으면 바로 버린다기보다는, 물건의 쓸모를 지키며 순환시키는 삶이 아닐까 싶다. 사람이 그렇듯, 물건도 자기 쓸모와 목적이 있어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면 쉽게 사거나 버릴 수 없다. 


그렇게 물건이 사라진 곳에는 사소하지만 좋은 습관을 들였다. 자기 전에 책상 위에 아무것도 없도록 전부 정리해 두고, 아침에 일어나면 책상을 전체적으로 한 번 닦고 일을 시작하고 밥을 먹는다. 현관에는 신발 하나만 두고 매일 청소하고, 현관 옆 신발장 위에 손소독제 이외에 아무것도 두지 않고 깔끔하게 닦아두면, 왠지 좋은 기운이 들어올 것만 같은 느낌마저도 든다. 






곧 내일이라도 이사 갈 것 같이 텅 빈 우리 집의 가장 큰 인테리어는 계절마다 바뀌는 햇빛의 각도와 색이다. 




어떤 원칙을 가지고 있는지 자랑하지 말고, 그 원칙을 따르며 사는 모습을 보여 주자

<심플하게 산다>, 도미니크 로로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변화를 만드는 방법은, 우리가 그렇게 사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며 생활방식과 가치관을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것이다. 물건이 엄청 적다는 칭찬을 받기 위해 미니멀리즘을 하는 것도 아니고, 지구에 되게 좋은 일을 한다는 말을 듣기 위해 제로 웨이스트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나를 위해 하나씩 차곡차곡해왔던 일들이 '선한 영향력'이 된다면, 그걸로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시트콤의 시즌 6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최대 2개의 작은 캐리어만을 가지고 북미로 이민을 가는 게 가장 최근의 목표이다. 시행착오를 거쳐 내 취향과 생활에 딱 맞는 물건들을 같이 데리고 갈 수 없다는 생각에 슬펐지만, 그건 또 잠깐이다. 걱정과 불안을 내려놓고, 다시 0부터 시작하는 확신 가득한 삶을 꿈꾸고 있다. 


마지막으로, 좀 더 심플하게 글쓰기. 이렇게 물건이 적으면서 할 말은 왜 그렇게 많은지, 글자수만큼은 맥시멀리스트였다는 걸 최근 깨달았다. 앞으로는 심플하고 더 지속가능한 글쓰기를 이어 나가보고 싶다. 워크북이나 뉴스레터 같은 조금 다른 형태의 콘텐츠들도 생각하고 있다. 활자로 더 좋은 영향력을 넓게 펼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며, 이 매거진은 마치고 새로운 매거진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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