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비서 앤디와 선배 비서 에밀리
신입답게 행동하고, 셔츠는 넣어 입어
첫 회사에 입사했을 때, 부장님께 “더 신입답게 행동하라”고 지적받은 적이 있다. 사회 초년생으로서 직장생활이 낯설고, 관공서 조직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었다. 그 말을 ‘퇴근할 때까지 긴장 늦추지 말고, 더 발 빠르게 행동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한번은 부서 내 농담하는 자리에서 같이 웃으니, 부장님께서 “선배들 말하는데 웃어”라며 말씀하신 적이 있다.
농담 반, 진담 반의 느낌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분은 마초(macho)적인 성향이 다분한 성격이었고, 돌이켜보니 나를 ‘정신교육’하려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신입사원에게는 다양한 상황에서 신입다운 자세로 업무를 배우고 생활할 것을 요구한다. 이후에 경력을 쌓고 다른 기관으로 이직을 했지만 경력 직원에게도 신입사원다운 자세를 기대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첫 회사는 평상복 차림으로 근무하는 곳으로 특별한 행사가 아니면 격식 차린 정장을 입지는 않았다. 그래서 셔츠 모양에 따라 밖으로 내어 입은 적이 있었는데 다른 부장님께서 그 모습을 보더니 바로 “넣어 입으라”고 지시하셨다. ‘네가 그렇게 입으면 되겠어?’라는 눈빛과 함께 말이다. 선배들은 셔츠를 밖으로 내어 입은 것 이상으로 자유롭게 입고 다녔지만, 신입사원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입어야 할 옷이 마땅치 않고, 옷값을 충당할 만큼 월급이 넉넉하지도 않은 사회 초년생에게는 복장마저도 고민이다. 그래서 옷을 살 때마다 조직 문화와 개인 스타일 사이에 갈등이 생긴다.
앞에서 언급한 자세와 복장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로 개인의 이미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이미지는 얼굴에서 드러나는 인상, 회사 업무와 직장생활을 대하는 자세, 그리고 복장 등으로 이뤄진다. 그리고 이 요인들로 일상에서 평가를 받기도 한다. 어떤 상사들은 아래 직원을 평가할 때, 식사하는 모습이나 외부인을 대하는 태도 등의 비중을 높게 둔다. 그래서 탕비실이나 복도에서 이를 닦는 행동, 슬리퍼를 신고 회사 로비에 내려가거나 바깥으로 물품을 사러 가는 행동 등은 가급적 삼가는 것이 좋다. 자신의 이미지에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직급이나 직위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한번 만들어진 이미지는 바꾸기 힘들다. 우리도 협력사 직원이나 고객을 대할 때, 한번 남겨진 첫인상으로 상대방을 인지하고 판단하는 경우를 떠올려 보면, 회사 안에서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이미지는 평가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평판과도 직결이 된다. 회사의 홍보 업무는 결론적으로 회사의 평판을 관리하는 것으로, 회사를 향한 여론이 잘못된 방향으로 진입하지 않도록 늘 주시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개인의 이미지는 현재 인상을 넘어 향후 경력을 쌓아가는데 평판의 근거로 작용한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이미지(자세와 복장)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다.
너처럼 뚱뚱한 비서는 처음이야!
주인공 앤디는 대학을 졸업하고 시사 기자가 되기 위해 뉴욕에 온다. 그러나 취업이 만만치 않아, 기자직 대신 패션잡지 ‘런어웨이’ 편집장 비서직에 지원을 한다. 편집장인 미란다는 그녀가 패션에 무지하며 뚱뚱하다고 판단했지만, 그녀의 학력을 보고 채용을 한다. 그러나 앤디는 조직 문화(패션업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기만 하고 결국 사고를 치고 만다. 그렇게 앤디는 회사를 그만두려고 결심한 순간에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으며 과감하게 메이크 오버를 실행해, 바뀐 자세를 보여주고 업무 성과를 내기 시작한다.
앤디는 패션보다는 사회와 노동 문제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입사해서 부여받은 구두(하이힐)를 신지 않는다. 런어웨이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남녀 가리지 않고 구두를 신어야 하는데 그를 따르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델이 아니지만, 몸매 관리를 위해 늘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
그녀에게 그런 모습들은 우스울 뿐이고, 미란다와 각 분야의 팀원들이 모여 표지 의상을 논의하는 컨셉 회의에서 코웃음을 치는 실례를 범한다.
미란다 : “벨트는 어디 있는 거야? 왜 아무도 찾지 않지?”
팀원 : “여기요, 둘 중 선택하기 너무 어려워요”
미란다 : 으음
앤디 : (코웃음)
미란다 : “뭐가 웃기지?”
앤디 : “아니요. 제 눈에는 두 벨트가 똑같아 보여서요”
그녀를 앞에 두고 미란다는 이렇게 꾸짖었다. “네가 비웃는 이 색깔이 지난 몇 년간 수백만 달러의 재화와 일자리를 창출했는데 무엇이 우습지? 넌 수수하고 지성미 있는 척 서 있지만, 패션계를 비웃고 있지?” 그녀가 패션을 대하는 기본 자세를 지적한 것이다.
앤디는 여러 직원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자, 그간 쌓아온 설움이 폭발하며 선배 직원인 나이젤에게 가서 하소연을 하며 ‘그만하고 싶다’고 말한다. 나이젤은 그녀에게 “네 자리에 들어오기 위해 살인도 마다하지 않을 여성이 수백 명인데, 네가 정말 노력한 것이 뭐야?”라며 묻는다. 그녀는 그제야 깨닫는다. 친구들이 말한 것처럼 비서 자리를 그저 서류 정리나 식사 준비를 하는 정도로 생각한 것은 아닌지 그리고 자신이 몸담은 회사 문화에 공감하기 위해, 무슨 노력을 해봤는지 반성을 한다.
그리고 그에게 메이크 오버를 간절히 요청하고 다이어트까지 하며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선배 비서인 에밀리가 놀랄 정도로 태도와 자세의 변화를 보여준다.그리고 변화를 알아차린 미란다는 그녀에게 여러 미션을 부여하고 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신뢰를 얻어, 결국 선배를 제치고 파리 패션쇼 수행까지 도맡게 된다.
인상 변화를 쉬운 도구 - 대답과 웃음
직장에서는 각자 위치에 따라 부여되는 인상(image)이 있다. 일반적으로 직장은 업종과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직원을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의 단계로 직위를 정해놓는다. 그에 따라 각 직위에서 수행해야 할 역할이 있다. 부서 막내로 업무를 열심히 배우고 익히며 궂은 일을 맡는 ‘사원’, 부서의 갖은 실무와 운영을 맡는 ‘대리’, 업무와 후배 지도에 있어 중간 관리 역할을 하는 ‘과장’, 부서의 차상위자로서 부서원의 실적과 부서 성과를 관리하는 ‘차장’, 부서 관리자로서 업무 분장권과 재량권을 가지는 ‘부장’이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 위치에 따라 부여받는 역할이 있고 그에 어울리는 인상이 있다.
따라서 그 인상에 적합한 행동을 해야 한다. ‘선배의 지시를 잘 따르며 후배를 잘 인솔하고, 동기들과 잘 어울리며, 일도 소통도 원활한 사람’을 원한다. 신경 써야 할 점이 정말 많은 것이다.
하루 아침에 좋은 인상을 보여주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업무뿐 아니라 일상에서 좋은 인상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대답’과 ‘웃음’이다.
첫째, 직장에서 일을 잘하는 것 이상으로 호감을 줄 수 있는 것은 바로 대답이다. 상대방의 의사를 제대로 파악하고 대답하는 것, 그리고 실시간 응답으로 서로의 피로도를 줄이고 실없는 농담이지만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고 반응해주는 것들이 쌓여 호감을 이룬다.
직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같은 공간에 있는 팀원들끼리 대답을 잘 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것을 ‘무기’라고 생각하면 소통은 거기에서 멈춘다.
대화 시간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업무나 회의 시간보다 식사나 간식 시간에서 자기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거나 동료의 어려운 점을 풀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중요한 것이 바로 대답이다. 대답이나 응답을 하면 서로 간에 유대감이 생기고 안 풀리는 업무도 해결할 자리를 만들 수 있다. 무엇보다 적절한 대답은 대화나 회의에서 서서히 주도권을 가져올 수도 있다. ‘프로 리액션러(Pro Reaction-er)’라는 신조어도 있지 않은가.
둘째, 인상 변화를 위한 또 하나의 도구는 바로 ‘웃음’이다. 감정에 반해서 억지로 웃을 필요는 없지만, 웃음은 스스로를 보호하는 막 같은 것이다. 웃는 사람에게 근거 없이 화를 내거나, 터무니없는 요구를 할 순 없다.
만약 그렇게 했다고 해도 그 상황을 바라보는 동료들은 나를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웃음에는 이유가 없다. 해가 떠서 해가 질 때까지 직장에서 보내는데, 그 하루를 즐겁고 재밌게 보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보람된 하루이고 만족스런 직장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앤디는 끝내 패션계에 머무르지 않고 그토록 원하던 시사 기자로 전직에 성공한다. 그녀가 보여준 자세에 감동 받은 미란다가 그녀에 대한 평판 조회에 자필로 회신함으로써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비서로서의 자세가 그녀에게 새로운 길의 시작을 선사한 셈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전문 직장인은 선배 비서 에밀리도 마찬가지다.
에밀리는 영화 초반 앤디의 몸매와 옷차림을 비웃었기에 악역으로 보일 수 있으나, 1년 중 최대 파티인 파리 패션쇼에 가기 위해 지독한 감기에 걸려서도 ‘나는 일을 사랑한다, 사랑한다’ 주문을 외운 채, 부들부들 떨며 자리를 지킨다. 파리에서 그녀에게 쏟아질 관심과 화려한 옷들을 위해 하루에 치즈 한 조각으로 버틸 만큼 집념이 대단하다. 누구에게는 허세나 허황으로 보이는 패션이 그녀에게는 목숨만큼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미란다가 일하는 방식, 음식과 커피 취향까지 대부분의 것을 꿰뚫고 있다. 대답은 말하는 것에 대한 답변만이 아니다. 말하지 않아도 손발이 맞는 것이 호흡에 기반한 대답이고 응답이다. 또한 그녀는 친절하지 않았지만, 앤디에게 업무별 주의사항을 꼭 인계했다. 주인공 앤디에게 가려졌지만, 그녀는 이미 직장인으로서 자세를 도도하게 갖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