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토피아> 토끼 주디와 여우 닉
꾸며낸 성격도 진짜일까?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내향적이기는 해도 자유로운 성격이었다. 좋아하는 공부나 취미 활동은 곧잘 찾아서 집중 있게 했지만, 성격에 맞지 않는 것은 회피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게 20대 초·중반을 보내며 자연스럽게 취업할 시기가 찾아왔고, 전부터 관심을 가졌던 문화·예술 분야 공공기관 채용에 여러 차례 지원을 했다. 그런데 서류전형 심사는 종종 통과했지만, 면접에서 번번히 탈락했다. 대여섯번 탈락을 하고 나니 자신감이 떨어졌고 ‘첫인상이 안 좋나?’ ‘목소리가 작나?’ ‘내게 큰 문제가 있나?’라는 부정적인 생각만 떠올랐다.
그렇게 자신감을 잃어가던 중 대학 선배에게 조언을 구했고, 선배가 건넨 한 마디가 큰 울림을 주었다. “도전적이고 씩씩한 인상으로 바꿔 보는 것이 어떻겠니?” 이전부터 ‘서글서글하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그 이상으로 ‘남자답고 씩씩한 모습을 보여주자.’고 결심했다. 그 모습은 바로 ‘군인’이었다. 면접 답변을 연습하며 일부러 목소리를 더 크게 내보거나 방문 뒤에서 의자까지 빠르게 착석하는 연습을 했고, 흔히 말하는 ‘각 잡힌 자세’를 오랫동안 유지했다. 그런 연습이 효과가 있었는지, 계속 떨어지기만 하던 채용에 처음으로 합격을 했다.
그런데 근무를 시작하고 몇 개월이 지나자 한 직장 선배가 ‘부드럽고 섬세한 성격 같다’고 말했다. 수습 기간에도 면접 때 결심한 그대로 씩씩하게 행동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는데도 말이다.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의 말을 들은 당시에는 ‘내가 너무 과장되어 보였을까?’ ‘겉과 속이 다른 사람처럼 비추어졌을까?’라는 고민과 걱정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행동 또한 ‘나’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연기가 아니며 거짓도 아니고, 나 자신임을 받아들였다. 때로는 부자연스러워 보여 포기하기도 하며, ‘이 모습이 진짜 나인가?’라는 의문을 걷어내기까지 2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사회적 인격, 페르소나
지나고 보니 2년의 시간동안 내가 겪은 자기 경험과 고민은 페르소나였다. 이는 고대 로마 시대 연극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 당시는 현재처럼 배우가 분장을 하고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배역에 맞는 가면을 쓰고 연기를 했다.’고 한다. 그 가면을 통해 배우는 인물의 표정과 감정을 드러낸 것이고, 현재 인성(Persona-lity)의 어원이 되었다. ‘배우 송강호는 서민 아버지의 페르소나이다‘라는 말도 송강호가 연기하는 배역들이 현대 한국사회 아버지를 표상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페르소나는 단순한 가면을 넘어 무언가를 상징한다. 심리학자 칼 융은 페르소나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사람들은 보통 타인의 기대치에 민감해서 가족, 학교, 직장에서 특별한 태도를 취한다. 태도란 잠재적이고 무의식적이지만, 사람으로 하여금 상황이나 환경에 지속적으로 적응하게 한다. 즉, 이쪽이나 저쪽으로 분명한 행동을 취하도록 결정할 정신 요소나 내용의 결합이다. 따라서 태도란 인격의 특색이고 습관이며 그것이 페르소나로 표현된다.”
[ 인용 ] 머리 스타인 지음, 김창한 옮김,『융의 영혼의 지도』, 문예 출판사, 2015
칼 융이 말한 것처럼 페르소나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환경에 적응하면서 만들어진다. 당시 나는 직장에서 부서 막내이자, 후배였고 동료였다. 그리고 집에서는 부모님의 아들이자, 형의 동생이었다. 그러한 다양한 역할을 제대로 인지하고 환경에 맞게 유연하게 행동을 했다면, 직장에서 그리고 인생에서 어려움이 덜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이 어려웠다. 누군가 내게 “원래 사람은 성격이 다중적이고 페르소나가 여러 가지야.”라고 조언을 해주었다면 더 원활하게 직장에 적응하고, 흔히 말하는 ‘사회생활 잘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또한 직장은 생계를 위해 노동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곳으로, 부여받은 역할에서 비롯된 업무가 있으며 그 이상의 것을 지시받기도 한다. 그래서 업무를 수행하며 사내 동료와 경쟁 또는 협력업체 직원과 갈등이 존재한다. 직급이나 직위가 더 낮거나 수주업체 소속일수록 자신을 낮추는 것이 업무적으로 유리하다. 그런데 자신을 낮춘다고 해서 ‘굴복하는 것’이 아니며,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가면(페르소나)이고, 가면은 마음의 긍정성에서 시작한다. 바로 영화 <주토피아>에서 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닉은 정말 교활한 여우인가?
<주토피아>는 2016년 개봉한 픽사(pixar)의 애니메이션으로, 우리나라에서 470여만명이 관람했다. 주인공인 토끼 ‘주디’와 여우 ‘닉’이 모험을 통해 포식동물 연쇄 실종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렸다. 여성이 사회적으로 받는 차별(유리천장 등)과 다수자가 소수자에게 가하는 폭력(역차별)을 그려내, 재미와 감동을 두루 갖춘 영화로 평가받았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어린 주디와 닉이 어떻게 페르소나를 형성해 왔는가’이다.
어린 주디는 부모님께 ‘경찰이 되겠다’고 말하지만, 부모님은 ‘토끼는 당근 농장을 일구며 사는 것이 어울린다’며 만류한다. 주디는 이에 기죽지 않고 학예회에서도 ‘경찰이 되겠다’고 선언하지만, 어떤 친구나 이웃 어른도 ‘작고 약한 토끼가 경찰이 될 수 있다’는 것에 공감하지 않는다. 그러나 주디는 당찬 토끼였다. 동네에서 불량한 여우가 친구들의 공연 티켓을 빼앗자 용감하게 맞선다. 그 과정에서 여우가 뺨을 할퀴어 봉변을 당하지만, 결국 티켓을 되찾아 건네준다. 그 후 경찰이 되기 위해 고향을 떠나 사관학교에 입학하지만, 학교에서도 토끼라는 편견에 놀림을 받게 된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노력한 끝에, 수석으로 졸업하고 당당하게 경찰이 된다.
어린 닉은 힘든 가정 형편에도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서 ‘주토피아 주니어 레인저스’에 입단한다. 또래 친구들이 반겨주지만, 밤이 되자 포식 동물이라는 이유로 재갈 물림을 당한다. 닉은 초식동물이 주류인 곳에서 ‘여우는 믿지 못할 동물이라는 편견’에 소수자로 역차별을 받고 왕따를 당한다. 불행히도 닉은 “여우이기 때문에 이런 대우를 받는다면, 차라리 ‘교활한 여우’로 살아가자”며 뒤틀린 다짐을 해버리고, 커서 사기꾼이 된다.
주디와 닉의 차이는 바로 ‘긍정성’에 있다. 어린 주디와 닉은 둘 다 심한 편견에 놓였지만, 주디는 토끼가 주는 인상과 신체 조건에 굴하지 않고 노력한 끝에 경찰이 되었고, 닉은 여우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사기꾼이 돼버렸다. 사람이 주어진 여건이나 사회 환경을 극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다 해도 잘못은 아니다.
그런데 주디가 ‘여태까지 경찰이 된 토끼는 없었다’는 편견을 의지와 노력으로 이겨낸 것처럼, 닉도 ‘여우는 약삭빠르고 믿지 못할 동물이다’는 편견을 이겨냈거나 그저 무시해버렸다면 사기꾼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닉은 사건 해결을 위해 주디를 돕고, 나무늘보와 친구를 할 정도로 넓은 마음씨를 가졌지만, ‘교활한 여우’라는 페르소나를 벗어나지 못한 꼴이다. 그렇게 뒤틀린 가면을 쓴 채 사기꾼이 돼버렸다.
긍정의 마음 키우기 - 긍정 인식과 감사 일기
우리는 본인의 성격이나 취향과 다른 태도로 사회생활을 한다. 기질적으로 내향적인 사람이 연습을 해서 학습된 외향형으로 보일 수 있고, 유쾌해 보였던 동료가 심한 우울증을 앓은 경우도 있다. 또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내성적인 사람이 관리자 위치에 서면, 되려 아랫사람을 더 엄격하게 대하거나 업무 실적을 다그치는 경우도 있다. 관리자로서 ‘사람을 다루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자기 성격과 너무 동떨어지게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런 행동은 여우 닉처럼 스스로를 지치게 하고 인간관계에 문제를 일으킨다. 낙담하지 않고 나를 지키며 원만한 직장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긍정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여기 두 가지 실행 방안이 있다.
첫째, 타인의 말과 행동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것.
우리는 바쁘게 생활하다 보면 순간 인상을 찌푸리거나 부정적인 속마음을 드러낼 수 있다. 그럴 때, 동료에게 나쁜 인상을 심어줄 수 있고, 동료는 그 짧은 순간에 내 언행을 오해하거나 심지어 마음에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동료의 언행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게 하다 보면 성격이 다르거나 이해 못 할 행동을 하는 동료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어느새 주변인들의 지지를 받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둘째, 감사 일기를 쓰는 것.
책상 앞에 자리 잡고 앉아 일기를 쓰는 것도 좋지만, 휴대전화 메모장에 그 날의 감사한 일을 기록하는 것도 방법이다. 업무에 많이 지쳤거나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 실천하면 좋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기에 분명 감사한 일은 있다. 기록한 것을 일주일이나 한 달, 두 달 뒤에 펼쳐 보면 깨닫지 못했던 감정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AI 면접 프로그램을 개발한 강소기업(고용노동부가 인증한 알짜배기 소기업) ‘마이다스 아이티’의 인사 최고 책임자는 직원이 갖춰야 할 4가지 덕목(긍정, 전략, 기술, 지식) 중에 긍정을 첫 번째로 꼽았다. 지식과 기술만을 가진 기능적인 직원보다 ‘스스로 할 일을 찾아 과정을 만들어 가는’ 직원이 되기를 바란 것이다.
회사에 입사하면 낯선 동료와 환경, 구조적인 조직 생활, 계속해서 밀려드는 질문과 확인 요청,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업무에 둘러싸인다. 하지만 ‘이 시간을 견뎌내면 잘 될 것이다’라고 긍정하며 생활하면 시간 문제일 뿐, 분명 의미있는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