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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조각글 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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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라 Aug 29. 2023

오이와 민트초코 그리고 파인애플

Cucumber, Mint Chocolate, and Pineapple

혹시 오이를 좋아해요? 싫어하는 사람이 꽤 많던데. 오이 싫어하면 당근도 싫어하고 가지 싫어하면 보통 버섯도 싫어하고. 나는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냥 잘라다가 얼굴 위에 붙여두기도 하고, 저렴할 때 오이를 박스로 구매해서 피클을 담가서 일 년 내내 먹기도 해요. 우리 집은 김장하는 느낌으로 피클을 만들어요. 오이랑 양파랑 고추랑 브로콜리 넣고. 달짝지근하고 시원하니 맛있어요.

오이가 사실 고급 음식이었다는 거 알고 계신가요? 오이를 좋아한다면 당신이 전생에 귀족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오이는 사실 수분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막 영양가 있는 음식은 아니에요. 농경사회에 우리는 다들 먹고 일해야 하는데, 먹어도 힘나지 않는 음식을 소비하는 건 귀족들 아니겠어요?

그 당시에는 오이의 소박함이 진정한 미학이라고 칭찬하고 노래하는 시가 많았어요. 오이소박이가 그래서 오이소박이라고 생각했죠? 오이소박이는 오이 안에 양념소를 박아 만들어서 오이소박이예요. 그래도 꽤 좋은 추론이었어요. 오이를 훔치는 고슴도치의 모습을 담은 민화를 본 적 있나요? 고슴도치는 밭에서 굴러서 과일이나 야채를 가시에 박아서 그렇게 훔쳐가거든요. 당시에 고슴도치가 오이를 훔쳐가는 걸 실제로 봤다면 달려가서 오이를 뺏었을 거예요. 글이나 쓰고 그림이나 그리며 유유자적하는 이들이 영양가 없는 오이를 먹고, 그 소박함을 칭찬하는 건 사실은 나 그 고급 음식을 먹어본 적 있어 라면서 자랑하는 거죠. ‘고슴도치가 가져가는 오이 하나쯤이야 하하, 귀엽게 봐줄 수 있지.’ 같은 느낌인 거죠. 나 방금 어디 가서 아는 체하기 좋은 걸 알려준 것 같아요. 다음에 누군가를 처음 만나서 어색한 분위기를 깨야 하거든, 꼭 써먹으세요.


민트초코에 대한 논쟁은 하지 말죠. 민트나 초콜릿으로 따로 먹는 건 좋아해요? 민트껌이나 민트차는 좋아해요? 민트우유는 꽤 별로예요. 민트시럽을 선물 받아서 우유에 타서 먹은 적 있었는데 정말 깜짝 놀랐어요. 언젠간, 내게 물어본 적이 있잖아요. 너는 아메리카노 말고 또 뭘 좋아해?라고. 아메리카노에 민트 시럽은 나쁘지 않았어요. 씁쓸하고 상쾌하니 꽤 괜찮아요. 알바생 표정이 꽤 볼만했어요. 몇 번이고 "헤이즐넛 시럽도, 바닐라 시럽도 아니고 민트 시럽이요? 라떼 아니고 아메리카노 맞으세요?"하고 확인하던걸요? 그러고 얼마 있다가 아이스티에 샷을 추가해 마시는 아샷추가 유행하더라고요. 저는 아샷추도 좋아해요. 너무 달지 않아서 꽤 괜찮아요. 그냥 아메리카노만 마시기도 해요. 튜닝의 끝은 순정이잖아요.

달달한데 상쾌한 게 민트초코의 매력 아닐까요? 치약을 왜 초콜릿이랑 먹냐고요? 말 정말 심하게 하시네... 요즘 치약은 캐러멜 맛, 푸딩 맛으로 다양하게 나오는 거 아세요? 사람들이 민트를 좋아해서 치약을 민트 맛으로 만든 게 아닐까요? 매일 양치해도 질리지 않는 맛~

민트랑 초콜릿을 합칠 생각을 누가 했는지 나도 궁금하긴 해요. 영국 여왕의 디저트를 만들기 위한 요리대회에서 수상한 게 민트 초콜릿 아이스크림이라던데. 왕실 디저트를 먹는 나, 다른 건 몰라도 음식 취향은 귀족일지도 모르겠어요. 맞아요. 영국 요리가 맛없는 걸로 유명하죠. 청어파이 같은 거나 만드는 곳이라서 민트초코를 맛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어요. 날카로운 지적이네요.

그래도 영국이 디저트는 꽤 잘해요. 본 식사가 얼마나 맛이 없었으면 디저트가..! 안쓰럽네요. 그래도 지금 우리나라 디저트 카페에 영향을 준 음식이 상당해요. 스콘이나 빅토리아 케이크(스펀지케이크 사이에 잼과 생크림을 바르고 아이싱은 안 한 케이크), 크림도넛 같은 거요. 벌써 몇몇 연남동 핫플이 머릿속을 지나갔죠? 모르겠어요? 그럼 다음에 나랑 같이 가면 되겠네요. 너무 달지 않은 디저트들 대부분은 다 영국발인 것 같아요. 차랑 정말 잘 어울려요. 물론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랑 마실 테지만. 영국은 티타임도 있고, 어쩌면 저녁 먹을래?라는 말 보다 차 마실래?라는 말을 더 많이 한대요. 영국인 친구가 차 마실래?라고 한다면, 사실 밥 먹을래? 일 수 있으니까 잘 알아둬요. 식사가 맛이 없으니까 티푸드를 갖춘 티타임으로 식사를 거르는 걸 수도 있겠지 싶어요.

아무튼, 초콜릿만 먹으면 텁텁한데 민트가 섞이면 깔끔하지 않아요? 아니 민트초코만 그렇게 박해하는 거예요? 초코바나나나 스모어 같은 건 좋아해요? 여기저기 초콜릿 섞잖아요. 하다못해 음료에도 휘핑크림 올려서 거기에 초코시럽 뿌려달라고 하지 않아요? 그냥 순수한 초콜릿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우유에 섞어 먹고, 바나나에 찍어 먹고, 음료 위에 올려 먹고 하잖아요. 예상했겠지만 저는 민트초코를 막 싫어하지 않아요. 상쾌하니 제법 괜찮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허용하는 민트초코는 아이스크림에만 한정되어 있어요. 과자까지는 흠. 어떤 과자냐에 따라서 달라요. 민트초코쿠키? 나쁘지 않을 지도요. 그런데 민트초코 소주는 아닌 것 같아요.


피자 위에 올라가는 파인애플은 어때요? 배척하지는 않지만 굳이 뜨거운 과일을 먹어야 할까 싶긴 해요. 과일은 익혀 먹는 거지, 덥혀 먹는 게 아니잖아요. 유독 파인애플에 열을 가해 조리하는 방식이 많은 것 같아요. 파인애플탕수육도 그렇고. 종종 바비큐 할 때 파인애플을 같이 굽기도 하고요. 그냥 파인애플만 구워서 먹자면 나쁘지 않을지도? 싶다가도, 햄과 파인애플 그리고 토마토소스의 달짝지근한 조합이 썩 유쾌하지는 않아요.

파인애플은요, 술에 취해서 먹을 때 제일 맛있어요. 술에 취하면, 몸에서 당을 원하는 거 알아요? 술집 옆에 빵집이 잘 될 수밖에 없어요. 취해서 정신없지, 탄수화물은 곧 당이 될 거니까. 취해서는 빵을 그냥 다 휩쓰는 거예요. 나는 빵집에 갈 필요도 없었어요. 술기가 올라서 달짝지근한 걸 먹고 싶을 때쯤 파인애플 아저씨가 등장했어요. 어디 숨어 있다가 그렇게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맛보기로 주는 건 그렇게 달고 맛있는데, 정작 사서 먹으면 시고, 혀가 아리고 그랬어요. 요즘은 아예 술집에서 파인애플을 팔아요. 파인애플의 속을 파서 아예 슬러시처럼 갈아 얼린 과육을 퍼먹는 거예요. 새콤달콤하고 시원하니 술자리의 마무리에서 시키면 이게 또 계속 들어가요. 술도 깨는 것 같고. 그럼 2차전이 시작돼요.

파인애플 하면 다들 하와이를 생각하나 봐요. 하와이가 전 세계 수확량의 ⅓을 차지하니까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르겠어요. 누가 하와이에 가도 올 때 기념품으로 파인애플모양 쿠키를 사 오더라고요. 다크 초코 코나 커피나 화이트 초코 코코넛이 제일 맛있어요. 파인애플 조각이 박힌 파인애플 쿠키는 붕어빵에 진짜 붕어가 들어간 느낌이라 나 혼자 웃겼고요. 


파인애플피자를 흔히 하와이안 피자라고 하잖아요. 원래 캐나다에서 처음 만든 거 알고 있나요? 진짠데. 나도 옛날에 하와이 사람들은 하와이안 피자를 맨날 먹을까? 같은 생각을 한 적 있어요. 내가 잘 아는 하와이안이 있는데, “아니야! 그거 캐나다 놈이 만든 거야!”하더라고요. 캐나다에서 왜 파인애플을 피자 위에 올릴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어요. 근데 우리도 말을 얹을 수는 없는 것 같아요. 피자 위에 고구마, 감자, 치킨, 파스타, 또띠아까지 다 올리는 곳이라. 나는 감자피자 좋아해~라고 했더니 그는 피자 위에 감자도 진짜 이상하다고 했어요. 감자가 이상한 건지 감자 위에 올라가는 마요네즈가 이상하다고 했는지 정확히 기억 안 나요. ‘우리는 피자에 막국수랑 치킨을 올려서 먹기도 하는데?’라고 덧붙이려다 말았죠, 뭐. 피막치도 정말 충격적인 조합이긴 했어요. 피자 위에 과일을 안 올리니까 파인애플 피자보다는 훨씬 낫지 않나 싶다가도, 탐라국에서 피자에 감귤을 올리는 거 알아요? 감귤피자 만들기 체험 상품이 있어서 진짜 깜짝 놀랐어요. 흑돼지 같은 거라면 맛있고 제주도 특색음식일 것 같은데 감귤...은... 꼭 그랬어야 했니? 하고 물어보고 싶어요. 한국의 피자이야기를 들으면, 미국인이 더 기함을 토할지, 이탈리아인이 더 기함을 토할지 궁금하긴 해요. 피막치랑 감귤피자 중에 뭐가 더 충격적일지도요. 캐나다에서 피자 위에 파인애플 올린 건 귀여운 수준이에요. 물론 세계 최초의 하와이안 피자를 만들었다고 하는 캐나다의 한 식당에서 파인애플 피자를 먹을 생각은 없어요.


파인애플이 왜 파인애플인지 생각해 본 적 있어요? 솔(pine)과 사과(apple)이잖아요. 솔은 알겠어요. 솔방울처럼 생겼잖아요. 그런데 왜 사과일까요? 사과는 나무에서 열리는데 파인애플은 나무에서 안 열리거든요. 오히려 알로에처럼 생긴 풀더미에서 열매가 나요. 무처럼 땅에서 뽑을 줄 알았는데 꽤 신기했어요. 아무튼 파인애플이라는 이름보다는 파인프루츠(pinefruit)가 적당하지 않았을까, 아직도 의문이에요. 영어권을 제외하고는 파인애플을 모두 ananas 혹은 anana와 비슷한 이름으로 불러요. 학명조차 Ananas Comosus인 걸요? 거북열매라는 뜻이래요. 터틀프루츠도 꽤 괜찮았겠는데요? 거북이와 솔방울, 꽤 재밌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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