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nding Machine Coffee Romance
자판기 커피 가격이 500원인 거 알아? 내가 기억하는 자판기 커피 가격은 200원인데, 학교 앞 학원이 즐비하던 아파트 상가 입구에 커피 자판기가 있었어. 학교는 3시 10분에 정확히 끝나고 3시 30분부터 수학학원이 시작이니까 커피를 뽑아 마시고 가는 게 낙이었어. 나 100원 너 100원 해서 200원에 나눠먹고, 여름에는 더위사냥을 사다가 반으로 쪼개서 나눠먹었어. 500원을 쪼개 잔돈 만드는 게 싫어서 자판기 밑에 슬리퍼를 넣어서 바닥을 쓸다가 바퀴벌레가 나와서 소리 질렀던 게 기억나.
더 최초의 기억은 아마도 학교에 가기 전이었던 것 같아. 가산디지털단지역이 가리봉역이던 시절이었을 거야. 내 기억에 가리봉역은 동굴 같았어. 진짜로 동굴 같은 황토색 구조물로 벽을 꾸몄다니까. 1호선에서 7호선으로 갈아타는 가리봉역의 환승길은 계단도 많고 거리도 꽤 됐는데, 추운 겨울날이라면, 전철을 기다리면서 엄마가 코코아를 뽑아줬던 것 같아. 커피 자판기에 커피뿐만 아니라 코코아랑 율무차도 팔았던 거 알아? 미취학 아동한테 커피를 허락할 정도로 불량엄마는 아니었어. 한 번은 율무차를 뽑아 먹었는데, 아무도 율무차를 마시지 않는지 맹물만 나와서 배신감에 치를 떨기도 했어. 그날을 기억하며 가리봉역 커피 자판기에서는 무조건 코코아만 뽑아먹은 것 같아. 자판기 코코아 하나를 동생이랑 둘이서 나눠먹는데, 처음에는 뜨거워서 입에 대지도 못하다가, 어느 정도 식고 나서는 서로 더 많이 마시려고 다투듯 들이켰지.
이제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먹은 게 언젠지 기억도 안 나. 언젠가 음료를 시키면 와이파이와 편히 앉아 있다 갈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카페들이 우후죽순 생겼어. 갈 때마다 콜드브루를 시켰더니, 요즘은 카페 대문을 열기도 전에 알바생이 알아보고 신나서 내 음료를 이미 만들고 있어. 조금 더 규모가 큰 카페는 휴대폰으로 미리 커피를 주문해서 찾아가고, 차량번호에 연동된 카드로 결제하고 개인컵에 커피를 받으면서 자판기는 자연스럽게 사라졌지.
뭐? 식당 카운터 옆에 있는 자판기 커피는 논외로 하자. 그건 식사값에 포함된 거잖아. 고깃집과 국밥집에 자판기 커피 없으면 식당이라고 할 수 없지. 볶음밥이 없는 숯불구이집과 국밥집이라면 더더욱 인정할 수 없어. 다이아몬드모양 박하사탕이라도 있든지, 자판기 커피가 있든지, 둘 다 있어야 한다고. 만약에 100원 넣고 커피를 뽑아야 하는 자판기다? 그러면 쓰으읍- 하는 거야. 기분은 살짝 상했는데, 그렇다고 안 먹을 순 없어.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배불러도 식사를 마친 것 같지 않고 그래.
어느 날, 커피 자판기를 발견했는데 너무 반가운 거야. 공장에서 뽑은 음료 그대로 캔과 플라스틱병에 담아서 파는 자판기가 아니라 언제 관리하는지도 모를 싸구려 커피. 세월이 흐르면서 자판기 커피도 발전했어. 카드리더기가 있는 거 있지. 아니 근데, 동전을 넣는 것부터 자판기 커피의 시작이잖아. 동전이 덜그럭 덜그럭하고 들어가는 것부터 자판기 커피 로맨스의 시작인데, IC카드를 읽힌다면 그건 모욕이지.
동전을 넣고 낡은 버튼을 누르면, 기계가 종이컵을 먼저 퉤 하고 뱉고, 커피가루 탄 물과 프림이 섞인 뜨거운 물이 따로 나와. 다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도 못하고 손 먼저 넣고 종이컵을 잡은 채로 기다리잖아. 정작 다 나왔다고 삐- 소리가 나도 한 방울이라도 더 떨어질까 싶어서 좀 더 기다렸다가 소중하게 꺼내 마시잖아. 오늘도 흔한 커피전문점 커피를 마시겠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자판기 커피를 사랑하고 그리워하지? 다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