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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의 촌스러운 가정식 <부대찌개>

by 선홍 Apr 23. 2024


시간이 참 빨리도 흐릅니다.

매주 시어머니와 만날 때마다 서로 놀랄 지경입니다.

나이 들수록 빨리 흐른다더니 정.


이번주에는 부대찌개를 먹었습니다.

친척분이 종종 '땅 X'부대찌개를 9900원에 포장해 주시는데, 양이 푸짐해서 온 가족이 배불리 먹지요.


솔직히 부대찌개는 의정부까지 가서 먹나  조리식품으로 사서 먹나 맛에 별 차이가 없는 유일한 음식 같습니다.

네 혀가 구려서 그렇다면 할 말 없습니다만.


라면과 떡사리를 추가해서 주면 애들은 고것만 후루룩 먹을 정도로 좋아하는데, 그럴 거면 떡라면을 먹는 게 낫지 않나요? 


찌개인지 전골인지 라면인지 모를 모호한 정체성, 동서양이 짬뽕되고, 남은 재료를 다 때려 넣어도 맛이 변하지 않는 포용성을 가진 희한한 음식입니다. 질리지 않기도 하고요.


한솥을 다 비우고 나니 아이들 그릇에 국물만 남았는데요, 시어머니는 그 국물을 한데 모으라고 하십니다. 내일 한 끼 먹을 수 있다면서.


어르신들은 한국이 가난했던 세월을 살아오셔서 그런지 알뜰하게 살았던 습관이 몸에 밴 것 같아요.

부모님도 쓰레기봉투 하나 버릴 때도 봉지가 숨 쉴 틈 없이 꽉 채워 서 버리시죠. 봉지가 저렇게 뚱뚱해질 수가 있나 싶게. 따라 해보려다 얼마나 눌러 담아야 저 경지가 가능한 건지 감탄스럽기만 했습니다.  


시어머니의 한 친구분은 집에 놀러 갔더니 화장실 쓴 후 변기물 내리는 것도 못하게 잔소리를 하셨다고 해요.

다른 건 얼마나 아껴 쓸지 상상이 되고도 남죠.


그렇게 알뜰살뜰했던 친구분은 몇 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누구 좋으라고 그렇게 열심히 사셨던 걸까요.


동시에 나는 소중한 자원을 너무 함부로 쓰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도 합니다.

샤워할 때 물낭비, 충전할 물건이 많아 전기낭비, 등등 습관성 낭비를 하죠. 오래 샤워하지 않기, 안 쓰는 전기코드는 바로바로 차단하려고 노력합니다.


한때는 어르신들의 절약이 궁상맞다고 생각했지만 지구가 자꾸 아픈 걸 보면 펑펑 써도 되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요.


부대찌개 하나 먹다 생각이 많아진 주말입니다.  

입맛 없으면 부대찌개에 라면사리. 떡사리 추가해서  보글보글 끓여 드셔보세요. 또 뵐게요.


시어머니의 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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