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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홍 Aug 20. 2024

시어머니의 촌스러운 가정식 <클라스가 다른 깻잎무침>


여름엔 참 먹을만한 반찬거리가 없습니다. 솔직 말하자면 너무 더워서 장보기도 어렵고, 만들기도 귀찮습니다.


식재료를 보기만 해도 만들 요리가 딱딱 떠오르는 사람들이 참 부러워요. 평범한 재료들로 풍부한 맛을 창조해 내니까요.


저 같은 '요알못'은 시장엘 가도 살게 뻔합니다.

만들 수 있는 게 한정되어 있으니 요리 상상력도 한정돼 있거든요.


저는 깻잎은 삼겹살용 쌈재료로 사지 반찬용으로 사진  않아요.

멸치고추무침, 오이지처럼 짜고 오래 먹을 수 있는 반찬은 반찬가게에서 사면되니까 재료로 구입해 본 적이 없고요.

짜게 먹지 않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더욱 안 사게 되네요.



시어머니는 제가 사지 않는 식재료들로 반찬을 뚝딱뚝딱 만들어내세요.


깻잎무침은 통조림으로도 나올 만큼 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어서 가끔 사 먹는데요, 어머님이 만드신 깻잎무침을 먹어보고 만든 게 훨씬 신선하고, 덜 짜고, 맛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무장아찌처럼 짠 반찬들은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깻잎 한 장을 밥에 싸서 먹으니 톡 하고  향이 퍼지면서 매콤 달달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웁니다.


깻잎향을 가득 머금고 있으니 경남 김해의 여름 외갓집이 떠올라요. 어릴 적 맨발로 여름 풀밭을 온통 헤집고 뛰어다니던 말괄량이 시절 말이죠.

얼굴이 볕에 벌겋게 익은 채 엄마를 따라 텃밭에 가서 고추, 가지랑 깻잎을 바구니 한가득 따던 한여름의 추억입니다.


색감이 화려하지 않아 투박하고 촌스러워 보이는 시어머니의 반찬에는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깊은 맛이 있습니다. 



집에 갈 때 싸주신 음식들을 무겁게 들고 오니 일주일 반찬 걱정은 없을 것 같아요.


처음엔 안 맞았는데, 해가 갈수록 어머님 음식이 맛있어지니 큰일입니다. 배운다고 어머님 손맛이 재현되지도 않고 말이죠.


친정엄마가 아프신 이후로 요리를 놓아버린 것처럼 시어머니도 그러실까 봐 걱정이에요.  


그 음식을 못 먹게 되는 어쉬움보다 '밥 먹는 일'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그 일을 못하게 됐을 때 어떤 심정일까요. 내려놓게 되어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하실까요.


감히 헤아릴 순 없지만 '덜컥'하는 느낌이 들고 제 속이 아립니다. 어머님이 오래도록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님이 싸주신 반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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