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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달리는 서울다방

by 선홍
카페드로잉
비엔나커피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혜화동의 다방을 찾아갔습니다. 평소에는 혼자 보내는 시간을 위해 카페가 존재했다면, 가끔 카페 그 자체가 목적인 경우도 있어요.


그런 경우엔 짧은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정신에 활기가 돕니다. 가끔은 일상을 흐트러트려야 사는 재미가 나지요.

변화속도가 빠르고 '빨리빨리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생긴 지 70년이나 되는 카페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기적인 카페, 학림다방이 목적지였습니다. 딸과 예전에 다녀온 기록을 남겼었지만 여전히 선명한 추억으로 남은 공간이에요.


1956년 서울대학교 문리대가 동숭동에 있던 시절 오픈해 지금까지 영업 중인 박물관 급의 카페입니다.

서울대 문리대에 24 강의실까지 있었는데, 학림다방은 ‘제25 강의실’로 불릴 만큼 대학생들이 들락거리며 지성과 시대의 울분을 토하던 곳이라고 해요.

지금도 웨이팅을 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은 것도 신기했고,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어두운 색의 원목가구들이 신선했습니다.


벽에 조르륵 진열된 커피잔들과 레코드판들을 구경하며 낡고 좁은 계단으로 올라갔어요.

머리를 숙인 채 어두컴컴하고 낮은 공간을 지나니 맨 끝에 자리가 남아있었어요.


룸카페처럼 분리된 자리에 앉으니 시간여행을 온 듯 90년대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습니다. 지금의 딸과 같은 나이였을 때죠.


여대생으로 돌아간 기분으로 수다를 떠는 동안 다방의 명물인 '비엔나커피'가 나왔습니다.

쫀득하고 풍부한 크림을 스푼으로 떠먹은 뒤 따뜻한 커피를 동시에 목으로 넘깁니다. 아, 따뜻한 동시에 시원한 커피아이스크림맛!

고풍스러운 예쁜 커피잔도 맛을 상승시켜 주네요.

신기한 복층 구조라 아래를 내려다보며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이 앉았던 자리를 찾아보는 재미까지 있습니다.


엄마세대에게는 '추억이 방울방울', 딸 세대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신기해 보이는 공간 속으로 같이 떠나보세요.

짧은 시간이지만 시공간을 초월하는 여행을 다녀올 수 있으니까요.


이런 공간을 오래 보존할 수 있는 도시가 품격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커피 한잔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하루가 되시길 빌며 이만 줄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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