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을 했습니다.
이런 날일수록 운동 겸 산책은 필수입니다.
걸으면서 우린 왜 20년이 되도록 비슷한 문제로 싸우는지 생각합니다.
마음에 불편한 게 있으면 먼저 말하라고 해도 항상 제가 포문을 열고, 그제야 남편이 불만을 얘기합니다.
혼자 씩씩거리면서 대체 남편은 왜 안 바뀌는지, 내 문제는 뭔지 생각하다가 둘이 똑같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상대를 비난하는 것에 몰두해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는 새겨듣지 못하는 겁니다.
애초에 싸우자, 가 목적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문제점을 알고 개선하자, 잘 맞춰가며 오래오래 잘살자, 가 목적이었거든요.
부부싸움을 하면 좋은 점도 있습니다.
바로 나 자신에 대해 알게 되는 금쪽같은 순간이죠. 이번엔 여자로 살기에 가면을 쓰고 사는 걸 깨닫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 가능한 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 애쓰는 당신, 그렇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어떻게 대하는 것이 옳은지를 완전히 잊어버린 당신.
- 우리는 반항적이며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던 호의와 인정, 사랑을 잃을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워한다.
<나는 내가 제일 어렵다> 우르술라 누버 지음
관계중심적인 한국사회에서 사는 여자라면 어떤 성격을 가졌든지 간에 위의 말에 동의하실 겁니다.
작가가 한국사람이 아니라 독일 사람인 점이 놀라운 포인트죠. 여성이라면 다 비슷한 걸 느끼는 모양입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가 목표치를 달성합니다.
애초에 목표가 높지 않아 5000보만 넘으면 성공입니다.
아직 겨울바람이 코끝을 시원하게 스치는 밤,
산책을 하면 다리에 힘이 붙고 어지러운 마음도 정리되니 일석이조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