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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코스로 즐기는 카페드로잉 일기

by 선홍
카페 '더텐'


3월의 마지막 날, 자주 들르는 성북동의 한 동네 카페에 앉아 있습니다.


성북동, 부암동 같은 곳은 프레임만 갖다 대면 거리 자체가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위치가 외져서 시끌벅적한 관광지가 아닌 점도 마음에 들어요.


마음이 심란하거나 의욕상실일 때 혼자 좋아하는 동네에 갑니다.

동네카페에서 드로잉일기를 쓴 후 산책하면 어두운 마음속 안개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하니까요.


근사한 카페만 목적한 경우, 그곳까지 갔다가 걷고 싶지 않은 소란스러움에 질려 바로 귀가해야 할 · 땐 먹어도 배고픈 것처럼 허전함을 느꼈어요.

목적한 공간이 생각보다 별로였을 땐 허전함과 황망함이 거의 두 배 가까이였고.


봄이 오는 성북천을 걸어 카페에 왔습니다. 버스를 타고 부러 먼 곳에 내려 걷기도 해요.

카페 가려고 걷는 이 시간이 마치 애피타이저를 먹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입맛을 돋우는 애피타이저처럼 슬렁슬렁 가볍게 걸으면 운동도 되고, 아이디어도 떠오르니까요.


카페에 도착해 드로잉 일기를 쓰거나 글 쓰고 독서하는 시간이 바로 '본식'이 되겠습니다.

가져온 책 <훔쳐라, 아티스트처럼>을 펼칩니다. 이런 책은 아무 곳이나 펼친 후 한두 챕터씩만 읽으면 창조적 생활에 영감을 줍니다.


당신이 아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을 써라,

어딜 가든 노트, 펜을 갖고 다니며 기록, 나만의 도둑질 파일을 만들라는 조언이 오늘은 마음에 듭니다.



몇 시간 집중 후 가열된 머리를 달달하게 마무리해 줄 디저트 같은 시간까지 있으면 비로소 제대로 한 끼 먹은 것 같은 정신의 포만감이 들어요.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는 별명을 가진 성북동에서는 언제나 정신의 풀코스 만찬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골목골목 후비고 다닐 만한 곳이 너무도 많으니까요.


카페 '더 텐'은 한성성곽길이 바로 옆에 있어 자주 가게 됩니다.

몇 백 년 된 성곽과 마을이 조화를 이루는 풍경이 너무 정겹고 아름답지요. 봄꽃까지 어우러지니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입니다.


오늘 하루 디저트까지 잘 먹고 돌아갑니다.

고즈넉한 봄과 행복했던 순간을 마음에, 드로잉 노트에 담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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