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봄바람을 타고 한강진역에 갔습니다.
한때 트렌디한 감성을 느끼고 싶을 때 자주 갔었던 곳이죠.
이제 너무 유명해진 '부자피자'의 1인 1 피자를 먹으면 이태리에 온 기분이 들었고,
꼼데가르송 매장 구경, 초창기 리움 미술관에 들르고 나면 힙한 사람이 된 것 같았죠.
겉모습만큼이나 빵 종류도 화려한 '패션 5'에 들러 맛있는 빵도 사 먹어야죠.
요즘엔 '꼼데길'이라고 불리는 길을 따라 걸으면 옷집, 세련된 카페, 소품샵 같은 곳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요.
혼자 집중하고 싶을 땐 '맥심플랜트'에 갑니다.
여러 층이 카페라 원하는 장소에서 혼자 노는 즐거움이 있거든요.
걷다 보면 이태원까지 금방이고, 외쿡사람, 이색적인 식당을 보는 재미에 해외여행이라도 온 것 같죠.
삼십 대 때는 성수동보다 이 동네가 더 트렌디했기에 나름 차려입고 갔었고,
이 동네에 파는 저걸 사서 입으면 더 힙해 보일 것 같은 착각에 항상 뭔가를 사서 돌아오곤 했습니다.
빵조차 힙해 보였다니까요.
즐겼던 동선을 따라 오랜만에 길을 걸어봅니다. 사라진 곳도 많고, 새로 생긴 곳도 많네요.
신기한 점이 예전과 달리 어떤 감각적인 옷도 카페도 마음을 유혹하지 못합니다.
유명한 카페를 경험상 가야 한다는 의무감(?),
그런 장소에 갔을 때 느껴지는 묘한 불편함,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 꾸미고 가서 편안하지 않은 마음 같은 게 이제 없어서 그런가 봐요.
예쁘지만 조이는 치마, 각선미를 살려주나 도가니에 치명적인 하이힐을 던져버려서 그럴지도 모르고요.
그렇다고 살맛 없고 의욕 없는 느낌 하곤 다릅니다. 초연해졌다는 것에 더 가깝겠네요.
나이 드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습니다. 자존감이 예전보다 조금 올라간 것도 나이 들어 얻은 장점이고요.
나를 포장할 필요가 없으니 자유로운 느낌, 어딜 가도 동네 산책 나온 기분을 즐길 수 있게 됐습니다.
걷다가 다리 아파 눈에 보이는 '타르틴'이라는 카페에 들어갔습니다.
계획하지 않고 들르는 재미, 빵이 맛있는 곳에서 크로와상과 커피를 혼자 즐겼어요.
트렌드니 힙이니 뒤처질까 봐 두려워하던 시기가 아이러니하게도 그 중심에 있던 나이였다는 걸 깨닫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내려놓게 돼서 그런지 오히려 따라가는데 애쓰지 않게 되네요.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꾸준히 애쓰는 내가 힙하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더듬이를 바깥에 뻗치고 일희일비하지 말고,
드로잉 일기를 통해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되새기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