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십넘으면 대학졸업장보다 기술

by 선홍


단골 미용실에 갔습니다.

예쁘게 보이려고 머리카락을 지지고 볶고, 염색하면서 난리 치던 시절은 지났습니다.


이제는 목표가 소중한 머리카락 더 상하지 않게 영양 주는 것과 흰머리 염색하는 게 전부예요. 그마저도 두피에 스트레스를 줄까 봐 자제하려고 합니다.


한번 단골이면 끝까지 가는 편이라 미용실 원장님을 알게 된 지도 10년을 훌쩍 넘었어요.

나이대도 비슷하니 자연스럽게 서로의 가족문제, 육아, 직업 스트레스를 나눴습니다.


미용실의 흥망성세를 지켜보면서 느낀 점이 있어요.

한때 여직원들이 계속 바뀔 때가 있었는데,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근태문제, '싸가지'라는 단어 등이 터져 나오며 한숨을 푹푹 쉬시더라고요. 자영업은 역시 쉽지 않구나, 공감했더랬죠.


지금은 속 터지느니 혼자 하고 만다며 본의 아니게 1인 미용실이 됐어요.

원장님은 악바리 근성으로 어렵지만 코로나까지 잘 버텨냈고, 이젠 안정기에 접어들었답니다.


"부러워요, 기술하나로 먹고사는 거."


원장님에게 체력만 받쳐준다면 계속할 수 있지 않느냐, 좋은 대학들 나오면 뭘 하냐, 4,50대만 되면 갈 데가 없더라, 고 푸념했죠.


그랬더니 요즘 미용실 손님들 다섯 중 서너 명은 그런 소릴 한다며 놀라더라고요. 젊을 땐 미용일로 인정받지 못했는데 요즘 들어 인식이 바뀐 것 같다고도 했어요.


대학 졸업장에만 목매던 시대는 끝났다


요즘 50대들 참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백세시대, 부모님이 아프면서 오래 사시니 부양할 기간이 늘었고, 자식들은 취업이 힘드니 오래 붙어삽니다.

그런 판에 정년보장해 주는 시대도 아니니

일찍 회사 나오면 갈 데가 없어요.

그러니 우후죽순 편의점, 치킨집, 카페가 늘어나고, 경쟁이 치열해 망하는 수순으로 가는 거겠죠.


대학 졸업장에만 목을 매는 기존 문법으론 답이 안 보이네요. 오늘도 세상은 휙휙 눈 돌아가도록 빠르게 변하는 중입니다.


대기업, 중소기업이든 회사 나오면 할 일 없는 중년들은 생각하죠. 차라리 지게차운전, 전기, 배관 등 기술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물론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기술을 배우진 않을 것 같네요.

큰 회사 다니면 주위에서 인정해 줘. 은행대출 잘돼, 회사복지 좋지, '개꿀'이잖아요.

남일이니까 쉬워 보이지 기술 하나로 혼자 버티는 게 훨씬 어렵습니다


후회는 우리의 몫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회사 다닐 때 지게차 운전을 미리 배워두면 되지 않을까요?

당신처럼 게으르고 비실비실한 여자가 무슨, 말이 되는 소릴 해라! 고 하겠지만 예를 든 거잖아요. 예를.


좋은 생각 아닙니까. 평일에는 만원 지하철 시달리면서 회사에서 밤늦도록 일하고, 주말엔 운전까지 배우고.

워라밸이 대체 뭐란 말이냐, 울고 소리치면서 말이죠.


그래서 당신은 뭘 준비했냐고 묻진 마세요.

제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 이 글을 쓰지 않겠죠. 커튼 뒤에서 혼자 음흉한 미소나 짓고 있겠지요.

저처럼 후회하지 마시라고 이 글을 쓰는 겁니다.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면 기술이 된다


달리 보면 무엇이라도 자기 기술이 있고 큰 욕심부리지 않으면 삶을 잘 꾸려나갈 수 있단 얘기 아닐까요.

미용실 원장님이 느꼈듯이 직업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

더 이상 한 가지 직업만 갖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누구나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으면 기술이 되어 언젠간 통하는 세상,

그런 세상을 꿈꾸며 오늘도 제 드로잉 노트를 펼칩니다.


카페 <케이드>에서
드로잉 일기







keyword
이전 11화근육이 재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