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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섭코 May 13. 2020

<2> 나'만' 적응 못한다는 불안감

새로운 곳에서 힘든 이들을 위한 위로가 되길 바라며

*2월 10일의 기록



덴마크에 도착한 이후 처음 몇 주간 내가 적응하지 못하고 있음에서 나오는 불안감은 상당했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따라가는 시기였다. 일상생활의 모든 것들이 낯 와중에,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의 빠른 대화 흐름과 온갖 슬랭들을 눈치로 때려 맞추며 따라가고, 스페인, 인도, 러시아 등 영어가 제2 언어인 친구들이 하는 악센트가 강한 영어를 '알아 들어야' 하고, 파티가 일상인 텐션을 맞추기 위해 하루하루 외향 에너지를 바닥까지 긁어 쓰는 등등등 정신없는 일 투성이었다. 내가 익숙했던 한국어라는 도구와 한국 사회라는 패러다임을 잃은 나는 정말이지 자기표현부터 사교 활동, 일상생활 모두 쪼렙이었다. 와 씨, 나 MBTI 'E'로 시작했는데, 그거 아니었나 봐. 불안함은 이 곳에 있는 다른 교환학생들이 매끄럽게 녹아드는 모습을 지켜보며 쑥쑥 자라났다.


왜 나만 이렇게 경황이 없고, 적응도 못하는 거지?


 바닥난 에너지를 안고 침대에 눕는 밤이면 오만 생각이 다 들곤 했다. 나 여기서 적응이란 걸 할 수는 있는 걸까? 한국에서처럼 혼자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왜 이렇게 자존감이 낮아졌지? 중심이 단단하다면 하지 않았을 비교를 자꾸 해대며 자꾸만 자존감을 갉아내고 있는 스스로가 실망스럽기도 했다. 새로운 환경에 던져지더라도, 설렘과 긴장을 동시에 느끼며 멋지게 적응하고 살아갈 나를 기대했는데, 현실과의 괴리감도 괴로웠다. 교환학생 후기를 보면 모두 행복한 경험이었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하던데, 왜 나는 그렇지 않지? 지금도 비교하고 앉았네 어이구, 하는 악순환을 빙글빙글 밟으며 불안함의 지름을 키워가고 있었다.


 카톡 하나에 집 앞 24시 편의점에서 만나 같이 맥주를 기울일 수 있는 친구, 배민을 주문해놓고 전기장판 위에서 넷플릭스를 보는 시간, 가장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하고 싶은 공부나 작업을 하며 보내던 주말들이 그리웠다. 고작 바다 건너온 지 2주도 되지 않았는데도. 아 한국 최고. 편리함과 가성비와 언어유희의 나라. 한국말로 각종 드립을 치며 시시껄렁한 수다를 떨던 시간들이 그야말로 '사무치게' 그리웠다. 이게 사무친다는 기분이구나 처음 생각했다. 나는 절대 '살던 곳'을 그리워하는 타입의 사람도 아니고, 새로운 것에 환장하는 모험가적 면모가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모험가는 개뿔. 음울한 기분으로 침대에 누워, 유튜브로 한국 예능을 틀어놓고 친구들과 카톡 하는 시간이 참 위로가 되었다.


한국에서 제일 좋아하던 카페.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보고 싶어...


 그럼에도 시간은 꾸역꾸역 흐르고, 흘렀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고 '일상생활을 해나갈 방법들'이 자리잡기 시작하자, 나만의 생활 패턴들이 조금씩 생겨났다. 내 중심을 만들고 또 지킬 수 있는 사이클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몇 시에 일어날지, 언제 씻을지, 무엇을 먹고, 어떤 일에 집중할지, 집중 후엔 어떻게 휴식시간을 보낼지 결정하고 그 사이클을 어느 정도 반복하고 나니, 안정감이 차올랐다. 반복이 주는 안정감은 늘 잔잔하게 불안을 씻겨준다. 후에 지루함 따위를 느낄지라도, 반복은 늘 안정감과 동행한다. 그제야 내가 살고 있는 곳의 하늘이 보이고, 이 곳에서 내가 좋아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가 보이고 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못하고 있던 것들에 대해 조급해하며 스스로를 탓하던 태도도 '지금은 못할 수 있지. 나중에 노력해서 하면 되는데.'로 온화해졌다.


 괜히 잔뜩 끌어안고 있던 불안이 거치고 나니, 보이지 않던 것들도 보이고 나에 대해서도 여유로울  있게  것이다. 그것만으로 행복했다. 비교나 위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온전히 나의 내면에서 우러나온 은은한 행복 말이다.



 '' 적응 못하고 있다는 불안함, 내가 있던 곳에 대한 그리움, 스스로를 보며 느끼는 자괴감, 기대했던 이상과 다른 현실에 대한 괴리감, 빨리 행복해져야지 혹은 적응해야지 하는 조급함, 이런 것들로부터 비롯된 우울감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한 것은 내게는 3주였다. 내게는 3주였지만 누군가에게는  , 1년이  수도 있는 일이다.

 다른 나라에서 살기 시작한 초입에서 불안과 우울을 느끼고 있다면, 주변을 둘러보다 '나만 왜?'라는 생각에 시무룩해하고 있다면, '시간 지나면 괜찮아져' 혹은 '아직 적응 못해서 그래'라는 이야기들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면 소소하고 짧은 사이클이라 할지라도, 내가 안정감을 찾을 수 있는 사이클을 찾는 것이 더 큰 버팀목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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