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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느 예술가의 일지 Nov 25. 2023

어느 예술가의 일지8

망각

채워지지 않는 사랑이 있다.

아무리 채우려고 해도 채워지지 않는.


빠져나가지 않는 슬픔이 있다.

아무리 비워내려해도 빠지지 않는.


정신 없이 산다. 채워지지 않는 사랑과

빠져나가지 않는 슬픔이 있다는 것을 잊기 위해.

그런데 그런 것들을 잊다보면

나 자신도 잊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잊는 게 나쁜 건 아닐지도 몰라.

왜냐하면 빠져나가지 않는 슬픔과

채워지지 않는 사랑은

자꾸 커져서 꼭 날 집어삼킬 것만 같거든.

꼭 슬픔 속에 풍덩 빠져버리거나

사랑이라는 빈 구멍에 들어가

다시는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아서

그래서 그냥 겉에 있는 나만 붙잡고 산다.


 내 형태만이라도 남겨놓기 위해.


나의 형태를 마음껏 뽐내지. 하지만 다들 아는 걸까?

내 이 겉모습 속에는 거대한 구멍들만

그저 숭숭 뚫려있다는 걸?

이따금 바람이 불어올 때면

 난 내 몸 속에 뚫린 구멍 사이로 시림을 느낀다.

나는 그렇게 내 흉한,

온몸에 구멍이 뚫려버린 모습이 들킨 것 같아

사람들이 구멍들 사이로 날 구석구석 구경했지만

마치 투명인간이었던 것처럼

지나치는 이유에 수긍하게 되고,

지나칠때마다 그냥 모른 척한다.

그때 생기는 적막,

누군가 지나쳤으면서, 날 봤으면서,

모른 척 했을 때 생기는 그 바람소리가 무섭다.

잊고 지냈던 내 구멍들의 존재감.  

쓸 데 없는 바람들이 무섭다.


차라리 숭숭숭 계속 뚫려서

정말 내가 아무것도 아닌게 되었으면,

내가 내 자신이라는 것도 잊고 지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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