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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Nov 12. 2019

해방 30주년, 대소련 투쟁의 현장 TV타워

2018년 8월 5일

리투아니아 체류가 2주 정도밖에 남지 않은 주말 오후, 렌터카를 빌려서 돌아다니는 마지막 나들이의 마지막 코스는 빌뉴스의 TV타워로 잡았다. 체류가 더 길어질 줄 알고 미뤄 놓았던 곳 중 하나인데, 빌뉴스 시내와 좀 떨어져 있어서 차가 없으면 접근성이 좋지 않다. 마침 빌뉴스에 렌터카를 반납해야 했기에 잠시 들르기로 했다. 일요일이라 혹시 문이 닫혀있으면 어쩌나 걱정도 되었다. 박물관이나 관광지마다 쉬는 날과 개방 시간이 다르고 자주 바뀌어서 방문 전에 꼭 체크를 해야 한다. 다행히 빌뉴스 TV타워는 단지 TV송신탑이 아니라 전망대이자 기념관이기도 해서 주말에도 저녁 늦게까지 방문이 가능했다. 

빌뉴스 TV타워는 서울 남산타워와 비슷하다.

빌뉴스의 TV타워는 서울의 남산타워(N서울타워)와 비슷하게 생겼다. 기능적으로 TV송신탑이고 빌뉴스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전망대이며, 레스토랑이 딸린 데이트 장소인 점도 남산타워와 비슷하다. 굳이 따지자면 남산타워보다 더 높고(첨탑 포함 320미터가 좀 넘는다), 완공이 1980년이니 더 나중에 세워졌다. 워낙 산이 없는 리투아니아에서 조금 높은 지대 위에 세워진 320미터짜리 타워는 지금도 전국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다. 홀로 우뚝 서있어서 엄청나게 높아 보인다. 남산타워와 달리 시내 중심에 있는 게 아니라 멀찍이 떨어져 있어서 시내를 멀찌감치 조망하게 된다. 주변 공원도 별로 크지 않고 부대시설이 많지도 않아서 주말 오후에도 매우 한산했다. 이 한산한 전망대를 꼭 와보고 싶었던 이유는 단지 전망을 한번 보자는 게 아니었다. 1991년 1월에 있었던 소련군의 진주로 촉발된 마지막 독립항쟁 때 여러 시민들이 목숨을 잃은 장소로, 대소련 투쟁사를 이야기할 때마다 반드시 언급되는 상징적인 곳이다. 


1980년에 완공했으니 소련 치하인 1970년대에 공사를 한 것이고, 찾아보니 소련 시기 '11차 5개년 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빌뉴스 TV타워를 인터넷에 검색하면 소련에서 지은 타워 자체에 대한 내용보다는 온통 1991년 1월 사태, 리투아니아판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 사건 설명으로 연결된다. 공식 홈페이지 소개글도 TV타워의 규격과 시설 소개를 제외하면 주로 1991년 1월 사건과 이곳을 지키던 '자유 투사들(Freedom Fighters)'을 기리며 추모하는 내용이다. 당시 리투아니아에 진주한 소련군이 주요 시설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TV송신탑을 지키려던 시민들이 희생된 사건이다. 소련군의 탱크와 기관총에 맞서다 이곳에서 목숨을 잃은 14명의 이름과 함께 추모시설, 기념관을 설명하고 있다. 1층에 작은 기념관이 있고, 주변 정원에는 당시 희생자들이 쓰러졌던 자리마다 추모비를 세웠다고 한다. 하필 렌터카 반납 시간 때문에 기념관과 개인별 추모비까지 다 둘러보지는 못하고 전망대와 추모 조형물만 보고 나와야 했다.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둘러보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전망대에는 레스토랑이 운영 중이다. 맑은 날은 빌뉴스 전체는 물론이고 훨씬 멀리까지 보인다.

1991년에 소련군의 진주와 유혈사태가 있었다니 처음에는 좀 의아했다. 발트 3국의 노래 혁명(인간띠 평화시위)이 1988년이었다. 이 시위로 리투아니아를 포함한 발트 국가들의 독립의지를 세계에 알렸다.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리투아니아는 1990년에 독립선언을 했다. 당연히 1990년의 독립으로 해피엔딩이었을 것 같았다. 1991년이면 한반도에서는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고, 남북 기본합의서(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체결된 해다. 이미 냉전은 자유진영의 승리로 끝났다고 생각했고, 세계의 이목은 걸프전에 쏠려 있을 때다. 그 1991년에 이곳에서는 소련이 다시 국가를 장악하고 '질서 회복'을 명분으로 시계를 뒤로 돌리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이다. 비교적 평화롭게 독립하고 체제 전환도 성공적이었던 편이라고 하지만, 그 과정에서 독립을 지키려다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었다. 한국에서 냉전은 갑자기 끝난 것처럼 보였으나 여기서는 극심한 혼란과 세력다툼을 거치며 그 꼬리가 길었다.


1990년에 독립선언을 했지만 리투아니아는 1991년이 되도록 국제사회 어느 나라로부터도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소련이 진짜 물러난 것인지 확실치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대학교 입학식이나 졸업식에 축사하러 오시는 Landsbergis 옹이 이때 리투아니아 임시의회(과도정부) 의장이었다. 임시의회가 독립국가 수립을 위해 애쓰고 있었지만 정치와 경제가 모두 불안정했다. 여전히 소련과 연계하고 있던 리투아니아 공산당의 방해 공작도 있었고, 소련 치하에서 이주해 와서 소련의 지원을 받았던 러시아 인구도 반정부 시위를 하고 있었다. 혼란이 계속되던 중에 신생 리투아니아 정부의 탄압으로부터 러시아계 반정부 시위대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소련군대가 진주했다고 한다. 최후통첩을 날리고 빌뉴스와 몇몇 도시의 주요 거점들을 장악한 소련 군대는 정말 신속했다. 그런데 임시의회의 호소를 듣고 곧바로 주요 거점에 인간 바리케이드를 치고 저항한 리투아니아 국민들도 그에 못지않게 신속했던 것 같다. 1월 11일에 소련군이 진주했고, TV타워를 지키며 대치하던 사람들이 탱크와 기관총 공격을 받은 것이 1월 13일이었다. 소련군으로서는 방송을 장악해서 세계로 소식을 전하는 것을 막아야 했을 것이다. 

TV타워 아래에 희생자들을 기리는 십자가 조형물도 여럿 있다. 종 모양 추모기념비는 2005년에 세웠다고 한다. 

TV송신탑을 지키다가 14명이 죽었다기에 방송 관련 직원들이 살해당한 것인 줄 알았었는데, 대부분 바리케이드를 치고 지키러 나온 시민들이었다. 탱크에 깔려 사망했다는 세 명 중에는 방직공장 직공이었던 20대 초반의 아가씨도 있었다. 총에 맞아 사망한 사람 중에는 18살(73년생) 고등학생도 두 명이나 되었다. 사망자가 14명, 그 외에도 수백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TV타워도 결국 소련군이 장악을 했다. 방송이 전부 차단된 상태에서 카우나스의 한 지방 라디오 방송이 국외로 소식을 전하는 데 성공해서 이 사태가 서방에 알려졌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이 사태 이후로 리투아니아 국민들의 반소련 시위가 훨씬 커지고, 서방세계의 비난과 함께 소련 군대가 철수한 후 리투아니아는 독립을 굳히게 된다. 


빌뉴스 구시가의 대성당 광장에서 서쪽을 향해 일직선으로 뻗은 게디미나스(Gediminas) 거리는 예전 러시아 제국 치하였던 때에 만든 주작대로 같은 길이다. 그 끝에 악명 높은 KGB 박물관(소련 시기 KGB 빌뉴스 본부)이 있는데, 현재 리투아니아 법원 건물로 쓰이고 있고 그 일부가 KGB 박물관이자 희생자들을 기념하는 장소다. 소련 점령기부터 냉전 시기 내내 저항하다가 희생된 사람들, 유형을 가거나 사라진 사람들을 추모하는데, 그 명단 마지막에는 꼭 TV타워의 희생자들이 나온다. 대소련 저항 운동의 마지막 투사들로서 상징과 추모의 대상이 되었다. 법원 외벽에는 희생자들 이름과 생몰 연도가 벽돌마다 새겨져 있고,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비와 성황당을 닮은 조형물도 있다. 러시아가 책임을 부정하고 학살 현장에 추모비를 건립하는 데에도 협조적이지 않기 때문에 국내에서의 추모에 더 열심이다. 

빌뉴스 KGB박물관 근처에 있는 추모탑들과 법원 외벽의 이름들

KGB 박물관 건물(법원 건물) 앞의 광장(Lukiskiu Square)은 법원을 비롯해 현재 리투아니아의 외교부, 재무부 등 관공서로 둘러싸여 있다. 상당히 큰 광장인데, 당연하게도 소련 치하에서는 레닌 광장으로 이름이 바뀌고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큰 레닌 동상이 서있었다. 지금은 그 레닌도 그루토 조각공원에 드라마틱한 철거 사진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소련 시기 이전에도 그 광장은 그다지 기분 좋은 곳이 아니었다. 19세기 러시아 제국 지배 시기에는 공개 처형장으로 자주 쓰였다고 한다. 지금은 커다란 리투아니아 국기가 펄럭이고 사람들이 햇볕을 쬐는 광장인데, 리모델링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긴 투쟁과 저항을 거쳐 1990년에서야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서 독립을 맞이한 30년 된 지금의 리투아니아는 지금도 러시아에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기억과 추모, 회복과 재건을 지속하면서 오랜 기간 꿈꾸던 독립국가로서 발전하는 모습을 보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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