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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Mar 14. 2018

빌뉴스 KGB 박물관과 댄스파티

2017년 10월 7일

추석 연휴를 이용해서 사촌동생이 방문했다. 렌터카를 빌려서 이곳저곳 구경을 다니다가 마지막 하루는 빌뉴스로 옮겨서 구시가에서 보내기로 했다. 구시가 입구 '새벽의 문' 옆에 붙어있는 '도무스 마리아' 호텔에서 묵었다. 이름과 위치로 미루어보건대 새벽의 문에 딸린 성당과 연계된 수도원이나 순례자용 게스트하우스를 개조한 호텔이었다. 오랜만에 관광객이 되어 빌뉴스에 렌터카로 진입했다. 보통 기차를 타고 와서 걸어서 들어가던 것과 달리 빌뉴스 구시가의 일방통행 도로들을 빙빙 도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걸어 다니면 보행자 중심으로 연결되는 구시가의 주요 골목을 단거리로 통과하게 되지만, 차를 몰면 좁은 옛길들 사이로 계속 에둘러 가게 된다. 걸어서 관광할 때는 골목도 잘 정비되어 있고 구글맵이 친절하게 안내해 주기에, 중세 미로 같은 도시라는 감상문들이 별로 와 닿지 않았었다. 차를 몰고 가니 오히려 그 느낌이 확 다가왔다. 똑같은 구글맵을 운전으로 설정하니 경로가 미로처럼 얽혀 방향감각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건축을 공부한 사촌동생이 오랜 중세 도시들이 이렇다고 설명해 주었다. 도시가 점차 확장하면서 미로처럼 겹겹이 감싸는 형태로 길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세 미로 같은 구시가지가 자리한 곳은 네리스 강이 동서로 굽어 흐르는 강변의 남쪽이다. 유리로 된 고층빌딩과 큰 쇼핑몰들이 있는 현대식 신시가지는 강 건너 북쪽에 펼쳐진다. 강의 남쪽, 구시가 골목 끝에 있는 대성당 광장을 기점으로 서쪽으로는 고개를 돌리면 근대에 확장된 직선적인 거리가 나온다. 중세의 구시가 골목과 달리 서쪽의 근대적인 시가지는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러시아 제국 시기에 조성되어 소련 시기까지 공공기관이 집중된 지역이었다. 직선으로 쭉 뻗은 대로는 지금 이름은 게디미나스(Gediminas) 거리이다. 대성당 광장에 이순신 장군 동상처럼 서있는, 빌뉴스의 창건자 게디미나스 대공의 이름을 딴 것이다. 러시아 제국 치하에서 처음 조성될 때는 성 조지 거리였다고 한다. 찾아보니 1차 대전 이후 폴란드가 차지했을 때는 유명 시인이 이름을 따서 미츠키에비츠 거리, 독일 나치 점령 때는 히틀러 거리, 소련 치하에서는 처음에 스탈린 거리였다가 레닌 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거리 이름 하나도 참 부침이 많았다. 그 거리를 중심으로 관공서와 호텔, 상업시설이 들어찬 잘 구획된 거리와 골목들이 나온다. 

현대식 고층빌딩이 있는 빌뉴스 신시가지는 네리스 강 건너 북쪽에 조성되었다. 구시가지의 대성당 광장은 강 바로 남쪽이다.
대성당 광장에서 서쪽으로 뻗은 근대식의 게디미나스 대로 끝에 KGB박물관이 있다. 입구가 골목 안쪽에 따로 있다.

그 직선 대로를 따라 서쪽으로 쭉 가면, 우리나라 군사독재 때 남산 중앙정보부가 악명 높았듯이 여기서 악명이 높았던 소련 국가보안부(KGB) 빌뉴스 본부였던 건물이 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다. 외곽에 있는 큰 감옥 시설이나 학살 유적과 달리 겉에서 보면 그저 빌딩이지만, 리투아니아의 반소련 인사들과 수많은 사람들을 감금, 고문하고 죽이기도 한 살벌한 현장이다. 소련의 억압적인 지배와 잔인성을 고발하는 곳이기에, 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나치가 잠시 빌뉴스를 점령하고 자행했던 만행은 다루지 않는다. 전쟁 전부터 이미 소련의 영향권에 있었고, 2차 대전 이후 줄곧 소련이 지배했으니 나치보다도 소련에 대한 끔찍한 기억들이 끝이 없었다.

지상 1층과 2층은 설명글과 영상, 사진이 많고 이곳을 거쳐간 사람들 이야기를 포함해서 전반적인 소련의 만행을 보여주는 전시관이다. 학살과 더불어 시베리아 곳곳으로 강제 이주당한 인구가 많았다. 강제 이주당할 때의 경험이나 유배지의 생활상, 그 유품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이 박물관이 살벌한 진짜 이유는 지하의 감옥과 고문 공간, 불법적인 사형 집행 공간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원래는 다른 감옥으로 이송하기 전에 잠시 두거나 재판받는 동안 머무는 감옥이었다는데, 그런 명분으로 여기 갇혔다가 사라진 사람이 많다. 칸마다 시기별 감옥 방의 형태나 용도, 갇혔던 사람들의 면면을 알아보기 쉽게 재현해 놓거나 설명을 해 놓았다. 사진도 큼지막하게 붙어 있다. 생각보다 지하공간이 대단히 길어서, 중간에 나오는 총살 집행 공간까지만 보고는 숨이 막힐 듯해서 돌아서 나왔다. 감옥일 때도 당연히 환기가 잘 안되었겠지만, 음침한 공간들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답답한 느낌이 죄어 왔다. 

길게 이어지는 감금실과 고문실 중간 즈음에 수감자들이 가끔 운동을 하도록 좁은 마당으로 나가는 길이 있는데, 그 길로 나가다가 방향을 반대로 틀면 지하의 총살 집행 공간으로 이어진다. 도심의 빌딩 지하에서 어떻게 흔적 없이 쏴 죽이고 시체를 옮겨내고 바닥의 피를 씻어냈는지까지 화면으로 친절하게 설명해주는데, 진짜 그 공간 안에 서서 보고 있자니 소름이 끼쳤다. 학생, 학자, 정치인, 종교인 할 것 없이 반소련 성향이 있거나 활동에 연계된 사람들이 수도 없이 죽거나 유배를 당했다. 대단하게도 참으로 이길 가능성 없어 보였던 그 저항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끈질기게 계속하였다. 저항하거나 안 하거나 어차피 죽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었다는 설명이다. 

소련과 나치 지배 하의 희생자 통계를 간단히 정리해서 비치한 자료

소련 지배 시기에 대한 리투아니아 사람들의 기억은 끔찍함 그 자체이다. 간혹 한국에서 구소련 체제전환국들의 오늘을 평가하면서 소련 시절에 대한 향수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마치 부작용 많은 자본주의보다 차라리 공산주의 치하가 좋았을지 모른다는 식으로 쉽게 말할 때가 있다. 경험해보지 않은 입장에서 그렇다 아니다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리투아니아에서는 그 누구도 그 끔찍한 시기에 대한 향수 같은 건 내비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정말 반공정신이 투철한 나라이다. 발트 국가들은 체제 전환 후의 상황이 안정적이고 유럽연합에도 가입하며 성공적인 발전을 하고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지금도 러시아의 안보위협이 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체제 전환이 성공적이지 않고 러시아의 위협이 없었더라도, 리투아니아 사람들에게 소련 시절은 예외 없이 압제와 수탈로 기억될 뿐이다. 아무리 빈부격차나 불평등 문제가 심각해도 그 시절로의 회귀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거의 세 시간에 걸쳐 KGB 박물관을 보고 나오니 기분이 땅 밑으로 가라앉은 듯했다. 중세풍 골목들을 산책하면서 끌어올리려고 노력을 했다. 빌뉴스 대학 내 채플을 구경하러 갔다가 합창 공연 리허설 중이어서 음악 치료받듯 위로를 받았다. 별로 실력 있는 합창단은 아니었지만, 뭔가 현대적인 성가를 즐겁게 부르는 모습에서 오늘의 리투아니아가 누리는 자유로움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노래하기 좋아하고, 생활 속에서 문화를 향유하는 수준이 높은 나라이다. 억눌린 긴 세월을 날려 보내기라도 하듯, 카우나스도 빌뉴스도 꼭 전문가의 공연이 아니더라도 교회마다, 학교마다, 거리마다 음악과 미술을 즐기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오늘날 젊은 리투아니아의 에너지는 그날 밤에 찾아간 클럽에서 제대로 구경했다. 사촌동생은 한국에서도 스윙댄스를 꽤 오래 해서, 빌뉴스에서 열리는 스윙 파티를 미리 검색해 왔다. 한국의 클럽을 몰라서 비교가 안되지만, 스윙 특유의 근대적인 모던함을 내는 분위기로 밴드와 함께 가수가 노래도 하는, 복층 공간을 전부 활용하는 큰 파티였다. 사촌동생 말로는 이만한 규모, 이만한 춤 수준, 이만한 분위기를 내는 파티는 한국에서 보기 드물다고 한다. 클럽 바깥 골목은 쥐 죽은 듯한 한밤의 중세 미로 그 자체였는데,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영화에서나 보는 열기 가득한 클럽이 눈앞에 있었다. 외국인 손님이 많고 외국의 프로 강사들도 많이 오는 행사라 진행도 영어로 했다. 사촌동생이 헬싱키의 클럽에서 봤다는 사람도 있었으니 꽤 유명한 파티였던 모양이다. 국제적인 파티를 열고 떠들며 춤추는 리투아니아 젊은 세대의 모습은 과거 억압받던 약소국의 이미지를 어느 정도 덮어주었다.

클럽에서 한두 시간 머물다가 나와서 빌뉴스의 밤거리 구경도 다녔다. 비가 그치고 날씨가 온화해진 금요일 밤의 빌뉴스 구시가 거리는 맥주펍이나 와인바를 즐기러 나온 젊은이들로 넘쳐났다. 조금 인기가 있어 보이는 와인바나 맥주펍들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한 잔 사서 들고 오래오래 떠들며 즐기는 펍 문화가 골목마다 다른 색깔로 서늘한 가을(초겨울) 밤 빌뉴스 거리의 온도를 높이고 있었다. 빌뉴스가 나름대로 큰 도시이다 보니 음식점부터 펍, 와인바 등 즐기는 문화는 카우나스보다 훨씬 폭이 넓고 다양하다. 외국인 비율도 확연히 높아서, 떠들다 보면 여기가 리투아니아인지 영미권이나 서유럽의 관광지인지 헷갈릴 정도다. 사촌동생 덕으로 빌뉴스의 밤거리까지 즐기고 다시 수도원 호텔로 돌아오자니 몇 걸음마다 분위기가 바뀌는 것 같았다. 돌아보는 데 한나절도 안 걸리는 아담하고 오래된 도시에 중첩된 역사적 기억이 참으로 다양하다. 날마다 새로운 역사를 겹쳐가는 모습은 관찰할수록 흥미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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