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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점 Sep 26. 2021

어린 시절의꿈



만나서 반가워요, 여러분.


보잘것없는 내 소개를 하려니 쑥스럽네. 아니 글쎄 우리 딸이 자서전을 써준다잖아. 여성의 목소리는 자주 지워져왔으니, ‘구술사' 방식으로 나를 기록할 거라나 뭐라나. 근데 말야. 내가 퀴리부인처럼 최초로 방사능 원소를 찾아내기라도 했어, 아니면 유관순 선생님처럼 독립만세운동을 했어?  


나같은 사람이 역사를 밝혀도 되냐는 말이야. 게다가, 내 기억력이 형편없어 어디까지가 진짠지 알 수가 없거든. 역사 왜곡이라고 질타를 받으면 어쩌지? 그래. 누구도 관심 없는 ‘엄마의 역사’니까 책임도 내가 질게.



보통 자서전은 어린 시절로 시작하잖아. 달걀이 부화될 때까지 한참을 품을 정도로 호기심이 많거나, 세 살부터 천자문을 읊고 다섯 살에는 공자왈 맹자왈 외칠 정도라야 사람들이 눈을 반짝일 텐데. 난 그런 게 없었어. 지극히 평범하거든. 언니 오빠들 따라 노는 게 그저 좋았지. 들로 산으로 버찌 따먹으러 다닌다고 입 주위가 매일같이 불그스름했어. 언니들이 얼마나 깔깔댔는지 몰라.



공부도 그냥저냥, 키도 고만저만이었어. 꿈도, 목표도 없었지. 부모님 도와 논일하고, 말썽  피우는  자랑이었지. 나에 대한 기대? 딱히 없었어. 엄마는 오빠 대학 보낸다며 쌀을 팔고,  팔아  돈을 예금했지만 나를 위한  아니었어. 나는 고등학교까지만 마치면 되거든. 그게 게 주어진 역할이자, 소임이었어. , 영화 기생충 보면 집주인이 고급차 뒷좌석에 앉아 미간을 찌푸리잖아. ‘  넘는  제일 싫어’.  또한 어린 시절부터  넘지 않는 법을 익혀온 셈이지. 그러니 어떤 꿈을   있었을까?


-


나를 이만치 키운 건 꿈보다는 사랑이야.


엄마 아빠 돕는다고 낫질을 하다가 한 번은 손을 벴어. 피가 흥건하게 손을 적시고는  밑으로 뚜욱뚜욱 떨어졌어. 너무 놀라서 눈물도 안나오고 돌처럼 굳어버렸지. 아버지는 나를 얼른 들쳐매고 병원까지 뛰어. 아버지의 가쁜 숨소리와 펄떡거리는 심장박동이 지척을 울렸어. 두려움에 몸이 떨렸지만 묘하게도   같아. 아버지 등이 따뜻했거든. 처음으로 업힌 기억이야. 그날 이후 등하굣길을 아버지한테 업혀 다녔어. 아이들 업고 다니면 큰일 나는  아는 영감님들은 상상도   일이지.



유난히 따뜻했던 그날을 잊지 못해. 아이들은 어릴  기억으로 평생을 살아가잖아. 박완서 작가님이 그러시더라고. 어린 시절 물질적으로 넉넉하진 않았지만 풍족한  오직 사랑이었고,  기억으로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간다고.


아이들은 그래. 깜빡 잠들었는데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넘겨질 , 서러워 펑펑 우는데  안아줄 , 아이는  촉감을 기억하거든.  힘으로 남은 인생을 버티는지도 몰라. 내가 처음으로 꿈을  것도 그때야. ‘따뜻한 엄마가  거야. 아이를 사랑으로 보듬어주는 엄마가.’ 그땐 몰랐지.  소임을 위해서 내가 무엇을 놓아야만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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