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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by 오제이

정든 동료를 떠나보내기 전, 맛있는 한 끼라도 함께 한다면 조금이나마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와 동료들은 을지로 맛집을 찾아보기로 했다. 회사 근방에 있는 맛집을 쥐잡듯 찾아봤지만, 점심시간에 많은 인원을 수용하는 곳은 드물었고, 우리의 마지막 식사를 함께하는 메뉴라 하기에도 손색이 많았다.


한참을 맛집 탐색을 이어가던 중, 한 동료가 괜찮은 곳을 발견했다. 얼마 전 오픈했다는 유명 수제버거집. 버거라면 호불호를 거의 가리지 않는 메뉴인데다, 가게 후기까지 좋았기에, 고민은 짧게 결정은 빠르게 마쳤다.


예약을 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점심시간 예약은 받지 않는 곳이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운명의 신을 믿어보기로 했다. 12시가 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신속히 출발, 길눈 좋은 친구들이 앞장섰다. 그들은 범지구위치결정시스템을 이용해 최단거리를 계산했고 빠른 보폭으로 이동했다. 두 친구의 듬직한 리드 덕에 우리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은 채 음식점에 도착했다. 평소라면 두 블록 정도밖에 가지 못했을 시간이었다.


입구가 세 개나 되는, 수요에 비해 불필요하게 복잡한 구조가 아닌가 싶은 햄버거 가게는 이미 만석이었다. 고소한 버터에 패티가 구워지는 냄새를 뒤로하고, 우리는 부랴부랴 대기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우리보다 앞서 등록된 팀은 4팀.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팀 여덟 명은 매장 안쪽 복도에 마련된 노란색 플라스틱 의자에 참새처럼 쪼르르 앉아 조잘거리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마침 우리가 대기석에 앉음과 동시에 한 팀이 들어가는 걸 보았고, 우리는 조금 희망을 품었다. 그것이 굉장한 착각인 줄은 모른 채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50분을 기다린 후 입장했다. 그리고 10분을 더 기다린 뒤에야 음식을 받았다. 버터로 노릇하게 구운 한우 버거가 꽤나 먹음직스러운 비주얼로 나왔다. 풍성한 감자튀김과 트러플 향을 잔뜩 머금은 소스, 주문한 메뉴는 모두 맛이 좋았다. 다음에도 한 시간을 기다려서 먹겠냐 물으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겠지만.


오늘의 기다림은 지루하지 않았다. 기다리는 시간을 활용해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어서 오히려 좋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기다림은 그렇지 않았다. 퇴직일만을 기다리는 퇴사자의 기다림과, 그의 마음이 돌아서길 간절히 바라는 누군가의 기다림은 양팔을 곧게 펴고 쏜 탄환처럼 서로 다른 방향으로 쭉쭉 뻗어 나갔다.


내 손으로 직접 뽑은 사람을 떠나보내는 심정은 유독 고통스럽다. 게다가 그 사람이 끔찍하게 일을 잘하고 싹싹하다면 더욱 그렇다. 보내고 싶지 않지만, 그럴 권한이 없어 끝 모를 무력감을 느낀다. 그렇게 그와의 이별은 현실이 됐다. 언젠가 다시 함께 일할 날을 기다림으로 남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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