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면에 무례하시네요(아니 근데 이게 뭐야)
상담에서 다루고 싶은 내용이 뭔가요?
성별, 나이, 가족 관계. 거침없이 빈칸을 채워가던 손이 멈췄다. 첫 상담을 앞둔 주말, 상담사가 보낸 신청서를 작성하던 나는 고민에 잠겼다. 뭐라고 적지? 지금 당장은 별 거 없는데.
앞서 3화를 읽은 분은 황당할 것이다. '저기요. 암이랑 스트레스랑 방어기제는요?' 하지만 회피력 만렙을 찍은 인간의 사고 패턴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방어기제 검사 직후의 충격은 컸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내 무의식은 신속하게 축소와 은폐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부모님이 오기 전에 세간살이를 옷장에 쑤셔넣는 자취생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걸 해본 사람은 안다. 옷장 속 난장판은 의외로 쉽게 잊힌다.
만약 a가 독서모임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거기서 만난 사람에게 상담사를 추천받지 않았다면 나는 일상의 안정적인 물살에 몸을 맡겼을 것이다. a는 '섬세한 내담자에게 잘 맞는 타입'이라며 그를 소개했고 나는 그가 궁금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상대가 날 어떻게 대할지가 궁금했다.
누구나 본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주특기가 있다. 나의 경우는 타인이 갖고 있는 '이상적 자아상'을 알아차리는 능력이다. 한 마디로 그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보이고 싶어하는지를 눈치채고, 그 모습으로 대하는데 능숙하다. 이 스킬은 회의나 외부 미팅에서 유용하게 쓰였다. 그렇기 때문에 부작용도 있었는데, 바로 상담에서 주객전도를 불러온다는 점이었다. 정신을 차리면 내가 상담사의 자존감을 채워주다가 시간이 끝나버렸다. 2화에서 적은 세 번째 상담이 비슷한 사례였다.
그래서 나는 a가 추천한 상담사에게 기대를 걸었다. 섬세한 사람도 잘 맞춰준다면 나한테도 그렇게 해주지 않을까? 지금 생각하면 상담을 받는다기보다 용한 신점을 보러 가는 기분이었던 것 같다. 상대를 만나보고, 기대에 부합하지 못하면 그대로 끝낼 생각이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신청서의 마지막을 어떻게 채울지 고민하던 나는 최근에 조각조각 알아낸 내 상태를 짜맞춰 적었다. 그 결과물이 아래 내용이다.
전문 방어기제 검사에서 회피성과 신체화가 높게 나타나 경각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런 성향 때문에 업무상 문제가 생긴 적은 없지만 스트레스가 커서 암 진단을 받았으며, (....) 반감이 있는 사람에게 잘해주려 애쓰느라 자괴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주변에 성격 좋고 유능한 사람으로 신뢰받는 건 행복하지만, 마음과 몸이 상하지 않는 선을 정하고 싶습니다. 자기방어기제의 패턴을 바꾸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꼭 방어기제가 아니더라도, 타인에 대한 긴장도를 낮추고 관계를 편하게 이어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 명확한 문제 의식과 발전 방향성을 보라. 이성적인 분석과 감성적인 호소가 조화를 이룬 역작이었다. 나는 킥오프 미팅에 꼭 맞는 자료를 찾은 듯이 설레며 신청서를 보냈다. 상담사와 나눌 교양 있고 세련된 대화가 기대됐다. 분명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될 터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첫 상담은 기대를 와장창 박살냈다. 상담사와의 대화는 불편하고 때로 불쾌했다. 그가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다행이었다. 나와 대화하는 모든 상대에게 '즐거운 시간'을 제공해야 한다는 집착을 벗어던질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건 좀 슬픈 말이네요.
상담사가 한 말 중 내가 첫 번째로 충격을 받은 말이다. 예상 밖의 발언에 멈칫했다. 내가 방금 무슨 말을 했지?
첫 인사를 나누고, 무난하게 각자 살아온 삶을 소개하던 중이었다. 상담사는 본인이 천주교를 믿게 된 계기에 대해 조금 길게 얘기했고, 내게 상담을 희망하게 된 배경을 말해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종교 얘기가 지루했던 나는 돌려진 화제에 살짝 웃으며 말했다.
나: 지금의 제가 좋아요. 그런데 이걸 유지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오래된 홈페이지의 기능은 유지하면서 코드만 바꿔 리뉴얼하는 것처럼, 그렇게 저를 바꾸고 싶어요.
그러자 상담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문했다. 안경도 얼굴도 동글동글한, 선이 부드럽고 존재감이 매우 옅은 사람이었기에 반감은 들지 않았다.
상담사: 그 모습이 아니면 안 되나요?
나: (....?) 저는 지금의 제가 맘에 드는데요?
상담사: 그럼 다른 모습이었던 적은 없었어요?
물론 태어나면서부터 이 모습이었겠는가. 나는 인격 설계자로서의 자부심을 담아 답했다.
나: 노력해서 여기까지 온 거죠. 중학생 때는 내성적이고 사람하고 잘 어울리지도 못했어요.
그리고 별 생각없이 덧붙였다.
나: 그땐 제가 저를 안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러자 갑자기 상대가 인상을 찌푸리더니 말한 것이다. '그건 좀 슬픈 말이네요'라고. 참고로 나는 커뮤니케이션 도중에 상대를 정색하게 만든 적이 극히 드물었다. 내 안에서 보라색 비상등이 켜졌다. '뭐지? 뭐가 잘못된 거지?'
나는 어리둥절하고 약간 경직된 채로 고민하다가 말했다.
나: 제가 쌍둥이인데, 어렸을 때 a가 저보다 잘하는 게 많았거든요. 근데 저는 그러지 못했어서 스스로가 좀 부족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그러자 상담사는 또 한 번 담담하게 킥을 날렸다.
상담사: 언니가 미웠겠네요.
이건 또 무슨 비약이람. 자꾸만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튀는 대화에 아찔해졌다. 나는 황급히 주섬주섬 해명을 꺼냈다.
나: 그렇지 않아요. 걔가 어려서부터 절 엄청 도와줬고 가르쳐줬는데요. 수혜 많이 받았어요. 지금은 제일 친한 친구이기도 하고, 하여튼 아니에요.
그러자 상담사는 예의 순한 미소를 유지하며 아주 작게 속삭였다. 지금 생각하면 들리게 말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지만, 어감이 낯설고 심지어 섬뜩해서 뇌리에 박혀버렸다.
상담사: 분리도 덜 됐고.....
수술실에 환부를 열어본 외과의사가 쓸 법한 어조였다. 잠깐 얼어붙었던 나는 화가 치솟는 걸 느꼈다. 분리? 나랑 a 사이를 이간질하는 거야 뭐야. 아니, 다른 걸 다 떠나서, 누군가가 날 두고 '덜 됐다'고 평가하는 상황을 참을 수 없었다. 그게 뭐가 됐든 말이다.
노파심에 말씀드리자면 상담사가 무조건 옳았다는 건 아니다. '결과적으로 도움이 되었다'와 '상대가 도움을 줬다' 사이에는 무수한 바리에이션이 있다. 그러니 만약 상담을 받던 중 모욕감을 느낀다면, 즉시 불쾌함을 표하시길 바란다. 만약 그가 진정한 프로라면 당신의 반응까지 데이터베이스에 넣어서 당신을 분석해줄 것이다.(그가 맞받아 화를 내거나 당신을 폄하하거든 상담을 재고하시길 추천드린다. 경험상 당신의 감정을 존중하는 편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하지만 당시 내 사회적 인격은 너무 경직되어 있었다. 초면인 사람에게 성을 내는 건 매뉴얼에 없었다는 소리다. 내게 로딩이 걸린 사이, 상담사는 야무지게 자기 할 말을 다 했다.
상담사: 저도 자매가 많았는데 너무 힘들었거든요. 언니들이 미웠어요. 근데 그때는 뭐라고 하지도 못하고 가만 있었어요. 살아남아야 했거든요.
사람이 그렇게 된다고, 살아남기 위해 삶의 어느 시기에 표층 의식 밑에 떨구고 오는 아이가 생긴다고 그는 설명했다.
상담사: '이대로면 우리 다 죽으니까, 넌 여기서 기다려.' 그렇게 두고 나는 위로 올라가는 거예요. 그럼 그 아이는 착하게 기다리고 있어요. 다시 불러줄 때까지. 근데 우리는 그 아이를 잊어버려요.
이젠 거기 숨어 있을 필요가 없는데. 충분히 뭐든 할 수 있는 어른인데도. 상담사는 말했다. 거기까지 들었을 때 더 이상 화가 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대신 이상한 반발심이 들끓었다. 이게 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잠자코 입을 다물고 있다가, 그가 다른 화제를 꺼냈을 때 불쑥 말했다. 어떤 화제였는지 떠오르지 않는 걸로 보아 내겐 그저 구실이 필요했던 것 같다.
나: 하지만 사람 간에 지켜야 할 선은 있는 거 아닌가요? 뭐든 할 수 있다기에는.....
그때였다. 갑자기 목이 메이더니 눈물이 고였다. 맹세컨대 슬프지도 화가 나지도 않았는데, 수도꼭지가 고장난 것마냥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소매부리로 눈물 콧물을 찍어가며(집에서 화상 앱으로 진행하고 있었기에 근처에 휴지가 없었다) 내 과거사 중 가장 트라우마에 가까운 기억을 털어놓았다. 그게 무슨 사건이었는지는 다음 글에서 설명하겠다. 상담사는 눈물에 놀라지 않고 경청해주었다. 얘기가 끝날 즘 그는 물었다.
상담사: 지금 기분은 어떠세요?
어떻긴....젖은 휴지마냥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그래도 이상하게 이런 상태를 감출 생각은 들지 않았다. 상담사에게 시위 하고 싶은 마음 반, 기대고 싶은 마음 반으로 입을 열었다.
나: 수치스럽죠. 거의 십 년만에 꺼낸 얘기니까.
그는 웃더니 말했다.
상담사: 고마워요. 솔직해줘서. 앞으로 함께 과거를 잘 탐색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상담사는 내게 몇 가지 검사지를 보내주겠다고 말하고 작별인사를 했다. 첫 상담은 그렇게 끝났다. 혼자 남은 나는 허무함과 찜찜함, 그리고 안도감을 느꼈다. 아무튼 상담은 끝났으니까.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상담 자체보다 상담 후 혼자 사색하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걸. 근원적 감정을 깊게 건드린 상담일수록 소위 '내상'이 점점 깊어진다는 걸 말이다. 그리하여 이어진 일주일은 혼란의 카오스로 지나가게 된다. 쓰다보니 어쩐지 모든 글이 내가 뭔가를 몰랐다는 말로 끝나게 되는구나. 깨지면서 배워나가야지 별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