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상담사에게 고백한 가장 어두운 기억
416 세월호 참사 11주기를 추모합니다.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 잔의 자유>라는 에세이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내가 배운 회복이란 결코 상처 받기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난 그걸 삶을 할퀴고 지나가는 사건들은 원치 않는 변화를 동반하며, 그걸 안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게 회복이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내 사전에는 거기에 한 줄이 더 붙어 있다. '추신: 그 변화가 단 하나라도 발전을 동반해야 함.' 한 마디로 긍정적인 영향이 있어야만 회복이라 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난데없이 정신에 싱크홀이 생겼을 때, 구멍을 메우는 건 물론이고 그 위로 더 반듯하고 탄탄한 도로가 생겨야 한다는 소리다. (여담이지만 이 잘못된 신념체계 때문에 내가 갑상선암 진단 당시 패닉에 빠진 거였다. 질병의 후유증은 '회복'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렇기에 상담이 끝나고 며칠 간 기분이 심란했다. 나는 내가 진작 '그 시기'로부터 회복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헌데 상담사에게 그때를 토로했다는 게 못마땅하고 불안했다. 처음 만난 타인에게, 채신없이 울면서. 포크레인으로 문제 없는 도로를 마구 파헤친 기분이었다. 생각이 지나가는 길마다 자갈이 튀고 흙먼지가 날렸다. 입 밖에 내는 말에까지 진흙이 묻은 것 같아서 주춤거리게 됐다.
그래서 대체 '그 시기'가 뭐냐면,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던 중학교 시절이다.
모든 이야기는 도식화 하면 뻔해진다. 특히 이런 이야기는 그렇다. 조용한 아이가 같은 학년의 불량한 패거리에 찍혀 1년 간 괴롭힘을 당했다는 이야기. 나는 그 서사의 납작함이 마음에 들었고 그때를 그렇게 기억해 왔다. 조롱하는 눈, 담배 냄새를 풍기는 거무튀튀한 입술, 변성기로 탁한 목소리, 쉰 웃음소리, 뒤통수로 집어던지는 우유곽에서 튀는 희멀건 액체 같은 것들은 싹 도려내버리면 그만이다. 그런 건 독이 들어 있는 껍데기였다. 어쨌든 알맹이라도 기억하는 게 어딘가. 어쩔 수 없이 창고에 폭탄을 보관해야 한다면 뇌관을 제거해야 하는 법이었다.
더불어 나는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으로 얻어낸 성취를 스스로에게 각인시켰다. 봐, 너는 이제 당당하게 네 의견을 표현할 수 있어. 말을 재밌게 잘해. 아는 것도 많아. 매력을 어필해서 타인에게 호감을 살 수 있는 사람이야. 이렇게 '발전'했어. 그 능력들을 활용할 때마다 나는 내가 좋아졌고 그게 바로 자기애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 어딨어? 근데 왜 자존감이 낮을 때의 증상이 나타나지?
여기까지 읽었을 때 탄식하는 당신께 존경을 바친다. 당신은 현자다. 그리고 만약 '음? 맞는 말이잖아요?'하고 의아하시다면, 잠시 글을 내려놓고 자기 자신을 꼭 끌어안아주시면 좋겠다. 고생하셨습니다. 애쓰셨습니다. 당신이 이룬 업적과 능력은 당신이 원한다면 영원할 겁니다. 그러니 행여 그것들이 연기처럼 사라질까봐 마음에 걸어둔 빗장을 풀고, 거기서 무슨 소리가 들리진 않는지 귀 기울여보세요.
나의 경우에는, 첫 번째 상담만으로는 깨닫지 못했지만, 겁에 질린 아이 목소리가 빗장 사이로 새어나오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야. 사람 자주 만나는 거 불편해. 부담스러워. 혼자 조용히 공상하고 싶어. 그냥 중학생 때 교실 커튼 뒤에서 하늘 보던 것처럼 쉬면 안 될까?
내가 버린 디테일 속에는 타자의 악의 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들어 있었다. 고통의 핵심이 거기 있듯이, 나의 근본을 이루는 어떤 요소들도 거기 있었다. 나는 나의 일부를 진실로 사랑했지만, 그것들은 오직 노력해서 만든 부분 뿐이었다. 그 외에 선천적으로 타고난 일부는 모두 부정했다. 가해의 증거이자 원인이자 공범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다.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건 또 다른 방식의 가해다!) 그리고 부정 당한 것들이야말로 나를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자연스럽고 안락한 생활의 밑천이었기에 나는 줄곧 불편한 삶 속에서 뒤척였던 것이다.
그럼 편해야만 올바른 삶인가? 그것도 아니다. 단지 두 가지 사실을 알고 있기만 하면 된다. '내가 이걸 하는 이유'와 '내가 지금 불편을 견디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뭘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하지만 나는 내 자신이 불평할라치면 윽박질러왔다. 넌 바뀌었어! 넌 이런 사람이 아니야! 본인과 소통하지 않은 결과는 성격기질 검사에서 참담히 드러났다. 이는 2회기 상담 내용과 함께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아무튼 이 모든 걸 당시에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내 생각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상담사의 기대를 맞춰주려고 엄살 떤 거야. 원래 상담은 이렇다 할 마음의 상처가 있어야 하는 거잖아. 내가 갖고 있는 기억 중에 그래도 그게 제일 그럴 듯하니까......'
위 생각은 '주지화'가 잘 드러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사전에 정의된 주지화(intellectualization)는 '무의식적 갈등과 그와 관련된 정서적 스트레스(경험 또는 생각)을 회피하는 과정에서 대립을 막기 위해 이성적 사고 또는 추론이 사용되는 방어 메커니즘'이다. 내가 이해한 의미로 다시 말하면 궤변을 무한 소환하는 회피 스킬이다. 내가 오늘 집 밖에 나가지 못하는 핑계를 찾기 위해 기후 위기까지 끌어오는 격이랄까.
주지화건 뭐건 나는 심각했고, 그 얘기로 상대에게 관심을 구걸한 자신에게 환멸마저 느꼈다. 잠시였지만 상담을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 나를 잡아준 건 a였다. a는 번민하고 좌절하고 기대하는 내 옆에서 심리학적 지식과 오랜 내담 경험을 들려주며 나를 진정시켜 주었다. 상담사의 연락이 늦어 사소한 오해가 생겼을 때는 먼저 전화해보라며 용기를 북돋기도 했다. 덕분에 나는 2차 상담을 잡을 수 있었다.
사랑하는 나의 벗, 나의 자매. a는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고 그 역시 날 그렇게 의지했다.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는 서로에 대한 친애로 인해 뒤틀렸고, 그 일그러짐은 이번 장기 상담을 통해 드러나게 된다. 조금 먼 이야기지만 말이다.
이번 글에서 한 가지 더 얘기하고 싶은 게 있다. 과거를 재검토한 나는 할아버지에 대한 반감을 일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유는 매우 단순했다. 할아버지가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학교 폭력 가해자들과 같은 성별이다.
그 전부터도 나는 일정 반경 안에 남자가 접근하면 심장이 짓눌리는 감각을 경험해왔다. 그런데도 그걸 스트레스와 연관 짓지 못했으니, 중학교 때의 기억을 얼마나 억제해왔는지를 방증한다고 볼 수 있다. 회사 동료는 괜찮았다. '회사'라는 집단에 묶인 공적 관계였고, 능숙한 소통 능력을 활용해 정서적 거리를 조절할 수 있었다. 간혹 실패하기도 했지만 그때는 우리의 만능 친구 '반동형성'으로 그만큼 친한 거라고 믿어버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내가 극도로 사적으로 여기는 공간에서 내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았다. '가족'이라는 사적 관계는 우리 사이에 울타리를 세워주기는커녕 있던 울타리도 앗아가버렸다. 본의 아니게 반동형성으로 해소되지 않을 만한 위협을 가한 셈이다. 혼란에 빠진 자아가 '제발 이것 좀 치워줘!'하고 비명을 지른 덕분에 상담을 받을 수 있었으니 전화위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혹시나 걱정하실 분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완쾌하신 할아버지는 본인의 시골집으로 돌아가 자유로운 생활을 영위하고 계신다.
그것으로 나는 내 문제의 모든 전말이 풀렸다고 생각했다. '난 이걸 말하고 싶어서 상담을 받은 거였어!' 소설의 결말에서 추리에 성공한 탐정처럼 의기양양해서 말이다.
하지만 책은 이제 막 펼쳐졌을 뿐이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경험한 상담은 반전 넘치는 서스펜스 같았다. 가령 이런 식이다. 어느 날 당신은 처음 보는 호텔 방에서 눈을 뜬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고 손에는 열쇠 하나가 쥐여져 있다. 그 열쇠로 옆방 객실의 문을 열자 방 안 가득 사진과 핏자국이 뿌려져 있고, 당신의 필체로 적힌 편지가 웬 시체의 입에 물려 있다.
그러므로 내가 완성된 그림이라 생각했던 이 사건은 사실 베틀에 걸려 계속 짜여지고 있는 베일이었으며, 천의 패턴을 구성하는 씨줄과 날줄을 들여다봐야 하는 과정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작업은 지나치게 빨리 진행되었다. 상담사가 '너무 빠르다'고 말할 정도로, 스스로 느끼기에 삶이 붕괴되고 있다고 느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걱정은 않으셨으면 좋겠다. 무너져도 별 일 안 생기더라. 굉장히 엄청나게 아프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