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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안 하면 누가 해?”

존 윌리엄스 <스토너>

by leegang


4학년이 거의 중반에 이른 어느 날 아처 슬론이 수업 뒤에 그를 불러 세우더니 자기 연구실에 들러 이야기나 나누다 가라고 권유했다.


“내가 자네를 만나자고 한 공식적인 이유는 자네에게 처음의 학과를 버리고 다른 학과를 선택하겠다는 의도를 밝히고 정식으로 수속을 밟아야 한다고 알려주는 것일세. 학생과에 가면 대략 5분 만에 처리될 일이지. 자네가 알아서 처리하게, 알았나?”

“알겠습니다.”

“하지만 자네도 짐작했다시피, 내가 자네더러 여기에 들르라고 한 진짜 이유는 그것이 아냐. 내가 자네에게 장래 계획을 좀 더 자세히 물어봐도 괜찮겠지?”

“괜찮습니다, 교수님.”


슬론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높고 어둑한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불쑥 질문을 던졌다.

“그럼 지금은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스토너는 침묵했다. 이것은 그가 생각해본 적도 없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던 문제였다. 마침내 그가 약간 분개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모르겠습니다.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럼 자네는 여기서 학위를 받은 뒤 집으로 돌아갈 생각인가?”

“아닙니다, 선생님.”

그 단호한 목소리에 스토너 자신도 깜짝 놀랐다. 자신이 갑자기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슬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지한 문학도라면 자신의 지식이 흙을 다루는 데 딱히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저는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정확히 무엇을 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자네는 학부 성적은 아주 뛰어나네. 다만…….”

그가 눈썹을 치뜨며 빙긋 웃었다.

“다만 2학년 때의 영문학 개론 강의만 빼고. 나머지 영문학 강의에서는 모두 A학점을 받았지. 어디서도 B학점 이하의 점수를 찾아볼 수 없네. 졸업 후 1년 정도만 버틸 수 있다면, 자네는 틀림없이 성공적으로 석사과정을 마칠 수 있을 거야. 그러고 나면 십중팔구 강의를 하면서 박사과정을 밟을 수 있겠지. 자네가 관심을 갖고 있다면 그렇다는 말이지만.”

스토너는 뒤로 물러났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모르겠나, 스토너 군? 아직도 자신을 모르겠어? 자네는 교육자가 될 사람일세.”

“정말이십니까?”

“정말이지.” 슬론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런 걸 어떻게 아시죠?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이건 사랑일세, 스토너 군.” 슬론이 유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는 사랑에 빠졌어. 아주 간단한 이유지.”


그렇게 간단한 일이라니, 그는 자신이 슬론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인식했다. 그리고는 일어나서 연구실을 나왔다. 입술이 근질거리고 손끝에는 감각이 없었다, 그는 잠든 사람처럼 몽롱한 기분으로 복도를 걸었지만, 주위의 것들을 똑똑히 인식하고 있었다. 복도의 광택이 나는 나무 벽들을 스치듯이 지나갈 때는 나무의 온기와 유구한 세월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천천히 계단을 내려갈 때는 자기 발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것만 같은 차가운 대리석 계단에 감탄했다. 홀에서는 작게 웅성거리는 소리들 속에서 학생들 각자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구분되고, 그들의 얼굴이 친밀하면서 동시에 낯설게 느껴졌다. 그는 제시 홀에서 오전 풍경 속으로 나갔다. 이제는 캠퍼스가 회색 풍경에 짓눌려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캠퍼스가 그의 시선을 밖으로, 위로 이끌어 하늘을 향하게 했다. 그는 아직 이름을 알 수 없는 가능성을 바라보듯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존 윌리엄스 <스토너> 중. (p27-32)




존 윌리엄스 <스토너>를 읽었다. 전반적인 책 내용을 배제하고 이 한 부분만을 두고 나는 잠시 이야기를 하고 싶다. 교수로서 묵묵히 본분을 다한 스토너에게 한없는 연민을 느낀다. 조만간 스토너에게 반드시 편지를 쓸 것이다. 묻고 싶은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스토너는 미주리 주 중부 분빌 마을 근처의 작은 농가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의 농사일을 여섯 살 때부터 도왔다. '앙상하게 마른 암소들의 젖을 짜고, 집에서 몇 야드 떨어진 우리로 가서 돼지들에게 먹이를 주고, 껑충한 닭들이 낳은 작은 달걀을 가져오는 일을 맡았다. 집에서 8마일 떨어진 시골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그의 하루는 새벽부터 밤까지 이런저런 일들로 채워져 있었다. 이런 일들의 무게 때문에 그는 열일곱 살 때부터 어깨가 구부정해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마쳤을 때 군청 직원으로부터 농과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받고, 타의 반 대학 진학을 했다. 대학을 가지 않았다면 평생 분빌 마을 작은 농가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으로 늙지 않았을까. 또 그에게 슬론 교수가 없었다면 그는 교수로 평생을 살 수 있었을까.


스토너에게 슬론 교수가 있었다면 나에게는 s교수가 있었다.

나는 보건행정을 전공했고, 오랜 기간 병원에서 일을 했다. 큰애가 여섯 살 때 둘째가 태어났다. 둘째를 임신하기 전 병원일은 프리를 선언하고 한 달이면 2주 정도만 출근을 했다. 그때 나는 독서지도 공부를 시작했다. 내 아이 눈높이에 맞는 독서지도 어떻게 해야 할까 물음이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다. 순전히 내 아이의 독서교육을 위한 방안으로 시작한 공부였다.

독서지도 공부를 하며 나는 점차 눈이 밝아졌다. 병원 행정업무가 나의 천직이라 여겼던 것은 그저 성실하게 일했던 이유였고, 나의 본연의 관심은 독서에 있었던 것이었다. 내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했지만 현실은 책을 멀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랬으니 책을 접하며 나는 눈이 반짝일 수밖에. 스터디를 연장하며 독서모임을 이어갔다.


어느 날 담당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수업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 했다. ‘나는 아니다 나는 능력이 없다’ 그리 생각했고 말했다. 그저 좋아한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저 내 아이를 위한 공부였던 것인데. 용기를 내지 못하고 미적미적 미루고만 있었다. 어느 날 교수님이 또 물었다. 수업 잘하고 있느냐고. 아니오, 아직요. 저는 아닌 것 같아요~ 늘어지듯 어색하게 얼버무리며 대답을 했다. 그때 선생님은 내게 냅다 소리를 질렀다.


“네가 안 하면 누가 해?”


그렇게 나는 수업을 시작했다. 교수님이 추천해 준 j도서관을 시작으로 2학년이 된 큰아이 친구들을 모아 수업한 것이 그 시초가 되어 공식 12년, 그 외 약간 더? 했다. 초등 독서지도를 시작으로 중딩 고딩 독서논술까지. 큰애가 성장하는 속도에 따라 고3 입시 논술까지 했다. 나의 첫 직업 의무기록과 보험청구심사일을 까마득히 잊고, 아니 내가 그런 일을 하긴 했었던가, 할 정도로 잊고 살았다. 그 일이 가난한 신혼 초 나의 비빌 언덕이 되어주었음에도 말이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인덕이 많은 것 같다. 병원 근무 할 때 만났던 이0오 선생님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신앙. 일. 그 외. s교수님은 이름을 밝힐 수 없지만 이0오 선생님은 괜찮을 것 같아 밝힌다. 선생님의 저서 <복음 의사의 행복한 동행, 이끌림>을 추천한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결코 나의 자랑이 될까 염려스럽긴 하다. 하긴 이게 자랑이라 할 만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선생이란? 물음에 초점을 맞추고 싶은 것. 소설은 더 깊은 스토리로 연결되고 이어지지만 나는 이 부분에서 느낀 선생 역할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우연이었을까. 어느 날 보니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 있었다. 스토너에게 슬론 교수가 없었다면? 나에게 S교수가 없었다면? 길은 달라졌을까. 나는 감히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선생이기 때문이다.

진짜 우연한 일이었을까. 네가 안 하면 누가 하느냐고 소리친 것이.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그 말이었다. 그런 일이 없었다면 마흔 살까지 병원에 근무했었을까. (그때 계획은 마흔까지 일할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어쩜 글을 쓰는 일도 더 늦춰졌을지도 모른다. 도서관 수업을 할 때 강사들에게 준 혜택은 듣고 싶은 타 강좌 하나씩 들어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p수필가의 수필 강좌를 잠깐 들었다. 그게 또 글을 쓰게 된 동기가 되었다.


교수님이 나를 이끌어주고 추천해준 이유는 내가 특별하다거나 월등하게 잘해서가 아니라 좋아하니까, 진짜 좋아하니까 그리 말해 주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 나도 되는구나, 나도 가능하구나, 착각하며 시작할 수 있었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수업을 이어갔다. 특별한 재능이 없으니 몇 배로 노력했고 수업이 있는 날은 외출도 삼가며 수업 준비에 매진했다. 그렇게 나는 12년 동안 수업에 임했다. 가장 큰 이유는 학부모의 피 같은 돈을 축내지 않으려고. 교육비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길이 나의 본분이라 여기며 최선을 다해 그 일을 했다. 열정적으로 했다. 두려운 마음으로 임했고, 기도했고, 노력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지치지 않고 독서논술지도를 하며 지낼 수 있도록 함께 수업안을 공유하며 서로 힘이 되어 준 '옥탑방' 여러 선생님들이 있어서 가능했다. 지금 수업은 하지 않지만 여전히 그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는 캠퍼스가 회색 풍경에 짓눌려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캠퍼스가 그의 시선을 밖으로, 위로 이끌어 하늘을 향하게 했다. 그는 아직 이름을 알 수 없는 가능성을 바라보듯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정확히 무엇을 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할지, 하게 될지, 막막했을 스토너, 회색 풍경에 짓눌려 있던, 아직은 이름을 알 수 없는 가능성을 바라보며 희망에 부풀었을, 그의 마음을 생각해본다.

‘네가 안 하면 누가?’ 이 말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지극히 아마추어적이고 소극적인 독서지도를 내 아이에게만 하면서 살고 있지 않았을까. 그 우연한 일이 나의 인생행로를 바꿀 수 있었다니! 그것 또한 나의 운명이었을까.






“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 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대학에 입학했다. 8년 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강사가 되어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다.” 스토너, 첫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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