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그림자를 본다. 불빛이 망령처럼 흔들리는 긴 터널의 벽에 매달린 앞장선 그림자를 따라 실체가 달려간다. 어둠 속에 숨겨져서 어둠의 배면을 수맥처럼 흐르는 것은 시간이다. 꽃이 피기 전, 단단히 뭉쳐진 망울 속의 숨겨진 미지, 어느 승이 말했다지. 시간은 미처 피어나지 않은 꽃의 망울이라고. 그 승이 입고 있던 회색의 승복, 그것이 바로 시간이 아닐까.
그의 적막한 은거지를 뒤덮은 담쟁이의 마른 줄기들이 벽에 수없는 균열을 만들고 있었지.
오옳지, 뽕잎을 먹은 누에가 곱디고운 비단실을 잣기까지의 그것. 또한 압지가 잉크를 빨아들이듯, 떠도는 먼지에도 사물에도 형태 없이 축축하게 스며들어 전혀 다른 물질로 변질시키는 그것. 그것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감지될 뿐이다. 저물녘에 전등의 스위치를 더듬는 손길에 문득 만져지는 선뜩한 느낌. 또는 다탁을 마주하고 앉아 지치도록 지껄이고 난 후 미지근한 찻잔을 들어 올리는 상대방의 겨드랑이에서 후끈 끼쳐오는 냄새 속에서도 시간은 존재한다. 기억해 낼 수 있는 최초의 병명, 미열의 나른한 행복감, 은밀한 죄의 쾌락, 최초의 성교, 입맞춤들이 시간 속에 침몰하여 용해되고 다시 결합하고 마침내 제가끔의 소리, 빛깔, 음영으로 교묘히 직조되어 시간의 늪에서 천천히 떠오를 때 그것은 실제와는 얼마나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가.
무엇인가를 규명해 내려는 노력으로 낡은 사진첩을 뒤지듯 과거의 망령을 불러내오고 추적하려는 행위란 얼마나 어리석은 도로(徒勞)인가. 마치 정밀한 양탄자의 올을 뜯어내려는 것처럼.
오정희 단편소설 <봄날>
그림자, 빛이 없으면 그림자도 없다는 것. 그렇다면 그림자는 곧 빛이 아닌가. 보이지 않는 그림자 그 수없는 그림자가 시간이라는 어둠 속에서 빛날 것이 아닌가. 그러니 어둠도 빛이라는 것. 흙 속에서 냉이가 쏙 올라오는 시간, 시멘트 바닥에서 제비꽃이 툭 봉오리를 터뜨리는 시간, 어둠이라는 땅 속에서 등불을 켜고 쑥 올라온 그 무엇들. 봄빛들 새싹들의 시간. 이 얼마나 정직한 시간인가. 봄 봄 봄 봄빛! 봄꽃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제비꽃을 만났다. 능내리 고급 주택이 모여 있는 마을, 높은 담장이 있는 집 앞 골목에서였다. 집의 위력에, 집의 구조에, 집의 특별함에 빠져 나의 시선은 오로지 위에 있었다. 건물 사진 몇 컷을 찍었고 건물로만 향해 있던 시선은 발밑을 미처 보지 못했다. 큰 것에 매여서 작은 것을 돌아볼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건물에 집착한 나머지 발밑을 놓치고 말았다.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발밑!! 제비꽃!!!
‘너 여기까지 날아온 거니?’
작년이었다. 양평 산수유마을 어느 폐가 토담 아래 무더기로 피어있던 제비꽃이 있었다. 며칠 전 그 제비꽃을 보기 위해 달려갔다. 그런데 그 자리 제비꽃이 없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차마 발길을 돌릴 수 없을 정도로 허망했다. 처마 밑 제비꽃 하나 보러 장장 48km를 달려갔는데 말이다. 뿌리나 씨 중 한 가지로만으로 번식을 한다 해도 거기 그 자리에 제비꽃은 더 무성하게 피어있어야 맞는 거였다. 처마 밑 시멘트 틈에는 그 어떤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개망초만 실하게 돋아나 그 자리를 점령하고 있었다. 제비꽃 군락지를 잃어버리고 돌아와 어딘가 담장 밑이나 처마 밑에 촘촘히 박힌 제비꽃 군락지가 있을 거라 믿었다. 시련당한 사람처럼 제비꽃에 대한 허기가 밀려왔다.
오정희의 <봄날>을 떠올렸다. 골목길 제비꽃의 시간을 생각했다. 그때 나는 왜 이 문장에 그토록 선명하게 밑줄을 그어 놓은 것인지. 나는 지금 제비꽃에 왜 이토록 마음을 빼앗긴 것인지. 이 순간도 시간 속에 존재한다는 것. 그때 그 순간 오정희의 문장에 밑줄을 그었던 행위와 같은 맥락이라는 것. 이 시간도 훗날 특별한 시간으로 기억될 수 있다는 믿음. 쓸데없이 멍 때리는 시간조차도 제비꽃을 바라보는 시간조차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팔자 좋은 시간이라고 누군가 야유할지라도 이 순간의 생각과 감성은 정직하다는 것. 진심이라는 것.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 쓸모없음조차도 지금 흐르는 이 순간에 머물렀던 일이고 사건이고 이야기였었노라고 그때 그 순간 그곳에서 제비꽃 보았노라고. 2022년 4월 어느 시간을 더듬어볼 날이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내년 이맘때쯤 다시 꽃 앞에 쭈그리고 앉아 그날 찰나의 조각까지도 소중하게 기억해 낼 것이라고. 그게 곧 시간이라는 이름 속에서 아름답게 윤색되어 또 다른 제비꽃으로 피어날 것이라고. 나를 위해 축적된 시간의 힘일것이라고, 믿고 또 믿고 싶은 것이다.
오늘, 약속된 스터디 날인데 나는 집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시간이란 언제나 온전한 내 것이 아님을 내 뜻과 생각을 벗어나고 어긋날 때가 많다는 걸 절감하는 날이기도 하다. 단수가 된다는 걸 며칠 전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목요일 8시 30분부터 17시까지 단수라고, 몇 차례 방송을 했고 엘베 중앙 안내판에 붙은 안내문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수차례 보았다. 그런데 나는 이아침 ‘단수’를 까맣게 잊고 말았다. 특새 기간에 밀린 책 읽기에 어머님 일에 정신없이 보낸 탓이라고 자위한다. 오늘 나의 시간은 이렇게 흘러간다. 계획된 시간을 벗어난 하루. 씻지 못했지만 뭐 괜찮다. 어제 머리를 감았다면 분명 모자를 쓰고서라고 달려갔을 텐데. 도무지 이 몰골로 나설 수가 없다. 이런 날도 좋다. 진심이다.
‘꽃이 피기 전, 단단히 뭉쳐진 망울 속의 숨겨진 미지’ 오정희의 문장 속 이 말이 내 속에서 웅웅거린다. 지금 이 순간, 예상치 못한 시간이 펼쳐지는 이 순간도 망울 속의 숨겨진 미지였다는 것. 내일은 언제나 꽃이 피기 전 단단히 뭉쳐진 망울 속의 숨겨진 미지. 기대할 수 있는 날이라는 것. 그래서 시간은 빛이고 그림자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