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산소에 다녀왔다. 유년을 보냈던 집터도 둘러보았다. 작은오빠를 하늘나라로 보낸 후 줄곧 고향과 부모님 산소에 한번 다녀오고픈 생각을 했던 터였다. 집터에는 유년의 시간이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골목도 바위도 도랑도 세월의 더께만 앉았을 뿐 그대로였다.
쉰 중반을 넘어선 내게도 문득 뒤를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 왔다. 숨가쁘게 달려온 인생, 이 정도로 됐다 이 정도도 충분하다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불안을 눈덩이처럼 굴리며 지낼 때도 많았다. 어쩜 지금 나는 불안한지도 모르겠다. 그러하니 근원을 찾았을 수도 있다.
“여인이 밭을 매다가 허리를 펴고 문득 머리를 들었을 때 그곳에 노을이 있습니다. 그 여인은 노을에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함께 슬픔을 느낍니다.” <박경리, Q 씨에게 >
어머니 묘소에서 무릎을 꿇었다. 지난했던 인생길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보았을 아름다운 노을과 그립고 외로웠을 마음 한 자락이 내게 전해졌다.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엄마가 뭘 알아 그랬던 딸에게도무한정 사랑을 붓고 헌신했던 고단한 시간, 문득 밀려든 회한의 순간 느꼈을 인생의 흔적은 노을처럼 아름답기만 했을까. 엄마의 시간으로 돌아가서야 박경리의 문장 행간을 비로소 이해했다.
나이가 드니 내 안과 내 밖에 온통 엄마가 들어 있다. 닮고 싶지 않았던 것도 닮아 있고, 전혀 닮지 않았다 생각했던 것도 닮아 있다. 두텁고 뭉툭한 손과 발은 아버지를 닮았다 여겼는데, 산소에 돋아난 풀을 뽑는데 엄마 손이 거기 있다. 바삐 움직이는 엄마의 손놀림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풀을 매던 손, 나물을 무치던 손, 걸레를 빨던 손, 기도하던 손, 쌍가락지에 무명실을 칭칭 감아 끼고 있던 손톱 밑이 늘 까맣던 엄마의 손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았던 특유의 습관까지도 천형처럼 내가 갖고 있다.
사소한 일상에 반영된 삶이 그대로 자식에게 대물림된다면 어떤 하루를 보내야 할까. 겉도 속도 다 닮아버린 엄마와 나의 시간 속에 내 아이들의 시간도 맞물려 있다. 근원을 찾는다는 건 낮아지고 작아지려는 고요로의 몸짓이었을 것. 고요가 평화고 질서고 리듬이라면 나의 밑바닥에 가라앉은 내적 고요를 끌어올려 다시 걸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