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간을 걷는다
그는 엔지니어를 꿈꾸는 남자였고, 나는 작가를 꿈꾸는 여자였다. 그는 나라면 절대 보지 않을 액션 영화를 주로 보았고, 나는 그라면 절대 보지 않을 문학성이 다분한 예술영화를 주로 보았다. 그는 수학과 물리 문제를 풀며 희열을 느끼는 남자였고, 나는 상징성이 농후한 시를 읽거나 소설을 읽으며 희열을 느끼는 여자였다.
우리는 취향이 달랐다. 그는 한 번 갔던 곳은 다시 또 가고 싶어 하지 않는, 똑같은 장소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려 하기보다 낯선 곳을 향한 탐구와 직진을 선호했고, 나는 똑같은 장소에서 매번 새로움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충분히 빈둥거려야 느낄 수 있는 순환을 선호했다. 하지만 저녁이면 함께 차를 마시며 나라면 절대 풀지 않거나 그라면 절대 읽지 않을, 화학적 물리학적 원리나 문학적 예술적 미학에 대하여 서로에게 얘기해주기를 좋아했다. 알아듣든 알아듣지 못하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고, 가장 중요한 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가 먹었던 길거리 국수가 맛있었다는 것이고, 도서관 벤치에서 마셨던 자판기 커피가 달콤했다는 것이다.
돈독한 바탕이란 시간이 구부러지거나 접힌다거나 평행우주 같은 다른 형태로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가정 하에 있다. 그건 틀린 거야. 그것도 몰라? 너는 왜 그래? 라고 말하지 않고 그냥 믿고 바라봐 준다는 것. 중요한 건 이론이 아니라 실제였고, 원리가 아니라 행위였다. 사소함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서로의 다름을 존중했던 까닭이다. 그는 여전히 커피를 숭늉처럼 후루룩 마시는 급한 남자이고, 나는 여전히 커피가 있는 풍경이고 그 조그마한 세계를 음미하는 느긋한 여자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한 마음을 품고 같은 시간을 걷는다.
* 앞부분, 백영옥 에세이 패러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