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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gang Jan 08. 2019

사랑의 힘 믿음의 힘

김애란의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를 읽고

 

 용대는 어려서부터 주위의 홀대를 받으며 자랐다. ‘가족의 수치, 가계의 바보, 가문의 왕따’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천덕꾸러기였다. 중국집 배달, 이발소 보조, 술집 웨이터, 아파트 경비 일을 전전했다. 꾸준하게 하는 일이 없었다. 툭하면 말도 없이 결근했고 주인이 한 마디 하면 열 마디 대꾸한 뒤 가계 문을 박차고 나왔다. 눈치 없고, 게을렀고, 책임감 없고, 불성실하고. 용대에게 어울리는 낱말이었다. 


 용대가 집안에서 천덕꾸러기가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처음 색시라고 소개한 여자는 깡촌까지 내려온 다방 아가씨였고, 그녀는 용대의 오토바이 사고 보험금을 갖고 사라져 버렸다. 서울로 올라온 건 7년 전이었는데 그때 용대는 중요한 부동산 계약 하나를 망쳤다. 가계를 정리하고 텃밭이나 가꾸고 사는 어머니의 집을 날려버린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어스름한 새벽 불길한 개 울음을 멀리한 채 용대는 도망쳤다. 일종의 가출이었다. 그때 용대 나이 서른일곱이었다. 그런 그가 성북동 기사식당에서 ‘명화’를 만났다. 도시의 속도에 여전히 어리둥절해하는 철딱서니 없는 노총각이, 눈 깊은 조선족 여자의 친절에 홀딱 빠져버린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형의 곤혹, 형수의 경멸, 조카의 무시, 사촌들의 냉소, 햇살 등진 구경꾼들의 눈부신 멸시’를 온몸으로 받고 떠나온 용대가 명화에게 마음이 이끌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누구에게도 사람대접을 받은 적이 없던 용대에게 명화는 유일하게 따뜻했고 친절했고 진지한 사람이었다. 용대는 명화를 보기 위해 성북동 기사식당을 거의 매일 들렸다. 부평이나 구리에 있다가도 끼니때면 꼭 차를 몰고 성북동에 갔다. 명화의 마음을 사기 위해 5년간 택시 운전을 하면서 알아낸 서울의 맛 집을 명화와 함께 찾아 다녔다. 

     

 이는 김애란의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의 일부분의 내용요약이다.

 무능력한 용대가 변했다. 용대가 가슴을 열고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한다. 천덕꾸러기 용대가 변하다니, 천지가 개벽할 일이다. 용대가 변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를 인정해준 한 사람 때문이다. 명화의 상냥함에서부터 모든 것은 시작됐다.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천덕꾸러기가 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를 신뢰하고 인정해준 한 사람 앞이었고, 따뜻한 말 한마디였다. 사랑의 힘이고 믿음의 힘이었다. ‘이 여자 언제나 내겐 좀 과분하다’는 느낌이 그를 변하게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명화는 용대의 에너지였다. 가족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던 천덕꾸러기 용대는 명화에게 최고의 사람이 되어갔다. 천대받던 용대가 명화를 위해 맛있는 음식점을 찾고 카페 나들이를 하고 오로지 명화를 위해 살아갔다.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홍대 카페에서 명화와 차를 마셨고 종로타워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었다. 

 상대를 인정해 준다는 것은 일종의 사랑의 완성이다. 용대를 변화시킨 것은 훈계도 강요도 아닌 오로지 관심과 사랑이었다. 용대는 인정받음으로서 초반에 보였던 천덕꾸러기 이미지를 지우고 성숙한 자아로 나아간다. 명화와의 사랑이 용대의 성숙함을 이끌어내는데 작용했다는 걸 이 소설은 말하고 있다. 

    



 불안전한 그, C는 용대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었다. 그를 완성시킨 것은 부모도 형제도 아니었다. 그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수없는 일터를 전전한, 그러면서 부모와 형제에게 못할 짓을 하며 민폐를 끼친 인생낙오자였다. 그런데 C가 변했다. C에게 열세 살 연하의 여자가 생겼다. 무엇이 그들 둘을 묶어 놓았는지 알 수 없지만 헌신적인 그녀 덕분에 C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장가를 들었다. 직장에 정착했고, 아들 둘도 낳았다. 그를 움직이게 한 것은 아내의 헌신과 사랑이었고, 그를 인정해 주는 아내의 끝없는 믿음이었다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 그들의 삶을 비로소 나는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게 괜찮은 여자가 왜 용대 같은 남자랑 살겠어? 사람들은 그렇게 야유한다. 그럼에도 끄떡하지 않고 괜찮은 여자의 품격에 도달하려는, 자신을 인정해주는 그 수준의 경지까지 도달하려는 의지와 욕망,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스스로 새로워지고 변화를 실천하고 있다.      


 결혼이란, 미완성인 서로가 부족함을 보완하며 완성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는 부족함도 못남도 없다. 끊임없이 서로를 보완해 나가는데 있다. 서로의 감정에 작은 믿음과 신뢰가 맞물릴 때 걷게 되고 뛰게 되고 날게 된다. 그건 자연스럽고 멈춤이 없다. 마치 과학의 원리처럼 맞물려 작용하는 것이다. 인정받는 그만큼 성숙이 발동되는 것이다. 한 존재가 다른 한 존재를 책임진다는 것이 얼마나 뿌듯한 기쁨인지를 알아가는 것이다. 더 이상 밤은 없다. 밤은 그곳에 있고, 여기에는 노래만 있을 뿐이다.   

  

 “결혼식은 없었다. 기사식당 아주머니와 H운수 정비부장을 보증인으로 세우고 혼인 신고를 했다. 용대와 명화는 돈이 떨어질 때까지, 한 달간 아무것도 안하고 반지하의 방에서 살을 섞었다. 용대에게 그 시기는 자기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으며, 명화 또한 오랜만에 한국에 와 처음으로 쉬는 느낌을 받았다. 가족에게 피해만 주던 용대와,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채 가족을 위해 살던 명화가 결합하는 순간이었다.” -본문 중-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는 김애란 소설집 ‘비행운’(문학과지성사)에 수록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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