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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gang May 23. 2020

삶의 노래

행복

 핸드백 속에는 언제나 책 한 권이 들어 있다.

 책이 없는 외출은 허용되지 않는다. 책을 꺼내 읽을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이 되지 않을 것 같은 날에도 기어코 책을 욱여넣는다. 책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무게를 더해 힘에 겨워지지만 가방 속에는 당연히 책이 있어야 하고, 책이 없는 가방은 용납이 되지 않는다. 어쩌면 이것은 내가 누리는, 아니 포기할 수 없는 지적 허영일 지도 모르겠다.

 압구정로데오역 5번 출구에는 캐논서비스센터가 있다. AS를 받기 위해 렌즈 두어 개를 들고 외출을 한다. 카메라와 렌즈는 그 무게가 상당하다. 그런데 그때도 가방에 책을 챙겨 넣는다. 오가는 전철 안에서의 무료함을 견디는 것보다 가방의 무거움을 견뎌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전철 안에서의 독서는 그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희열이다. 군중 속에서의 집중 속도는 태양의 공전 속도보다 더 파급적이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카메라와 렌즈를 찾아 다시 전철역을 향해 걷는다. 청바지에 린넨 재킷을 입은 젊은 남자가 앞서 걸어간다. 그의 손에는 책 한 권이 들려있다. 읽던 페이지에 손가락 하나를 끼워 넣고 걷다 다음 페이지가 궁금했던지 에스컬레이터가 내려가는 그 짧은 순간에 책을 펼친다. 그가 펼친 인쇄된 글자위에 시선이 꽂힌다. 그의 모습이 어찌나 신선해 보이던지, 순간 말을 걸 뻔했다. 모두가 다 저만큼의 행복을 지키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순간 나는 전철 안에서 읽다 만 소설 속 주인공 ‘정우’를 떠올린다. 그의 불행이 가슴을 옥죈다. 이기적인 ‘곽 교수’의 처사에 화도 나고, 줄도 없고 빽도 없는 ‘정우’의 인생은 어쩜 우리 모두의 저변이 아닌가 싶어 ‘정우’가 잘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그러나 나를 향한 잣대는 정직하고 분명해야 한다는 것,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은 상대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오만일 수 있다는 걸 ‘정우’에게 말해주고 싶다.(김애란, 풍경의 쓸모) 억지로 빼앗고 뺏기지 않는 노력하고 애쓴 만큼의 결과를 기다리며 서로 협력하며 사는 인생 말이다.

 지난 4월 퇴촌에서 분원마을을 지나는 남한강변 길을 드라이브했다. 길가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햇살도 곱고 하늘도 고운 산골짝 마을을 휘돌아 어느 밥집에서 밥을 먹고 차도 마셨다. 벚꽃뿐 아니라 살구꽃 복사꽃도, 온갖 봄꽃들은 다 나와 햇살 속에 서 있었다. 운전을 하다 말고 한숨처럼 토해 낸 시구는 “봄날이 하도 고와 복사꽃 눈멀겠다/ 저러다 저 꽃 지면 산도 골도 몸져눕고/꽃 보다 어여쁜 적막을 누가 지고 갈 건가.” 정완영의 ‘적막한 봄’이었다. 무의식 중에 삐져나온 시 한 구절이 가슴을 후벼 팠다. 이 눈부신 봄날 슬픔도 아닌 것이 슬픔처럼 햇살 속에 흩날리고 있었다. 산골짝에 찾아온 봄이 안쓰럽고 고마워 뭉클했다.

 

 정완영의 ‘적막한 봄’을 읊조릴 수 있는 4월이 좋다. 꽃도 좋지만 무엇보다 이 시가 주는 여운이 너무 좋다. 흙마당 가득 돌배 꽃잎 흩날리던 그날의 봄이 환영처럼 펼쳐진다. 혼자 덩그러니 볕 내리는 마루에 걸터앉아 있노라면 시간은 멈추어버린 듯 고요하고 눈이 부셔 하늘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까마득히 펼쳐지는 빛의 파장 사이로 흐르는 적막과 보일 듯 말 듯 날아다니는 꽃잎의 유희에 그만 눈물이 났다. 그때 쓸쓸하게 읽었던 책이 하필 ‘쌍무지개 뜨는 언덕’이었다. 작가가 누군지도 기억도 없는 오로지 제목과 내용만 남아 있는, 슬픈 봄날의 꽃잎은 오로지 슬픔만이 아닌 내 안의 카타르시스를 보게 했던 것 같다. 어린 내가 보았던 슬픔의 기초와 사랑의 방법은 그 여운이 너무나 깊어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열 살 이전의 정서가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이 퍼즐이 맞춰지듯 절묘하게 맞아간다.

 봄이 지고 여름이 오고 있다. 유월이 오면 풀잎새 함부로 밟으며 강변길을 걷고 싶다. 그때도 나는 무의식 중에 시 한 구절을 읊조리지 않을까. 분명 랭보의 ‘소요’ 일 것이다.

 “여름날 푸른 석양 보리 향기에 취해/풀잎새 함부로 밟고 조롱길을 걸어가면/마음은 꿈을 꾸고 발걸음은 가벼워/들 바람에 맨머리 시원스러이 불리운다/아무 말도, 생각도, 하지 않건만/가슴속에 용솟음치는/아-. 끝없는 사랑”

 이 시는 80년 대 초반 읽었던 최인호의 ‘겨울 나그네’ 소설 본문에서 처음 보았다. 가난한 20대였던 그때 서점 귀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이 책을 읽었다. 이 시를 통해 랭보를 알게 되었고, 또 다른 시가 궁금해져 랭보의 시집을 찾기도 했다. 본격적인 문학에의 목마름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랭보의 삶과 문학에의 사랑에 이입되어 마치 랭보의 열정에 편승된 듯  읽어야 할 것들에 대한 갈증은 더해졌다. 그때 서점에서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책이 있었는데 월간지 ‘現代詩學’ 200호 기념 특대호였다. 당장 현대시학을 정기구독했다.

 독서에 목이 말라 퇴근 후 서점으로 향하던 청춘이 있어 책 한 권의 역사는 시작된 것 같다. 나를 키우고 자라게 했던 책 한 권의 가치는, 내 삶의 노래가 되어 때때로 흥얼거리기도 읊조리기도 한다.

 5월이다. 바람도 달고 신록도 눈부시다. 나도 모르게 노래를 부른다.

 “풀잎은 풀잎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초록의 서정시를 쓰는 5월… (이해인, 오월의 시) 누가 나에게 이런 간곡한 사연을 들으라는 것인가/마르고 뒤틀린 찻잎들이 차나무의 햇잎들로 막 피어나는 것이었다.(문태준, 햇차를 끓이다가) 이등 급행열차를 타고/동해 남부선을 달리는/창밖은 들찔레꽃이었다./내가 보낸 많은 편지들이/하얀 들찔레꽃으로 가득히 피어났다.(박정남, 그리움 현대시학 통권 200호에 수록된 시’)” 


 환경에 깊이 공감할 때 우리는 노래를 부른다. 몸의 노래 마음의 노래 곡조의 노래, 노래가 있어 굽이굽이 살아가고 살아낸다. 나는 거기에도 있고 여기에도 있다. 노래 속에도 있고 노래 밖에도 있다.



#살구나무는잘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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