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란의 <여름의 맛>
“아버지가 플라스틱 바가지로 콩국을 떠 내게 주었다. 짭짜름했다. 목이 타 벌컥벌컥 들이켰다. 국물과 함께 차갑고 미끄러운 것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나는 그것이 작은 물고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웃으면 안 되는데 나는 목구멍이 간지러워서 자꾸 웃음이 났다. 그 무덥고 무덥던 여름날의 콩국 한 그릇.” (하성란, 여름의 맛 P65)
소설 속 이 문장은 신기하게도 나의 ‘여름의 맛’과 동일하다. 섬거장 초입 거대한 버드나무 아래에는 큰 고무통에 얼음 동동 띄워 놓고 콩물을 파는 풍채 좋은 할머니가 있었다. 엄마는 스텐 대접이 넘칠 듯 출렁이는 콩물 한 대접을 떠서 내게 먼저 내밀었다. 목이 타 벌컥벌컥 들이켰다. 콩물과 함께 차갑고 미끄러운 것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그 무덥고 무덥던 여름날의 콩국 한 그릇. 내가 기억하는 가장 따뜻한 여름의 맛이다.
그날 엄마는 어린 나를 두고 집을 나섰다. 몰래 살짝 다녀오려던 엄마의 계획을 그날 나는 산산이 무너뜨렸다. 엄마가 없어졌다는 걸 눈치채고 팬티 차림인 채 그대로 문을 박차고 내달렸다. 엄마의 창피함 정도는 안중에도 없었다. 동구나무 아래를 가로질러 뱀재를 넘어 섬거장 가는 길로 들어섰다. 저만큼 앞서가는 엄마를 발견한 후 고래고래 소릴 지르며 울어댔다. 8월의 신작로는 땡볕과 지열로 후끈했다. 땟국물을 줄줄 흘리며 마셨던 그날의 시원한 콩물 한 그릇.
하성란의 단편 <여름의 맛>에서 잡지 기자인 최는 화보 촬영 차 오사카에 갔다가 스태프와 모델들이 귀국한 뒤 혼자 그곳에 남아 나흘 일정으로 간사이 지방 여행을 계획했다. 택시기사가 금각사를 은각사로 잘못 알아듣고 은각사에 내려주지 않았다면 그녀는 그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나중에야 금과 은이 ‘킨’과 ‘긴’으로 비슷한 발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미묘한 발음의 차이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가끔 금각사인 줄 알고 은각사에 와서 서성댄다고 알려준 것도 그 남자였다. 사진을 공부하러 온 유학생인 그가 건너 준 그날의 복숭아, 일본에서 복숭아는 특산품 중의 특산품이라는 말의 증명이라도 하듯 탄성이 날 만큼 크고 묵직한 복숭아를 함께 먹었다.
“그녀는 다시 입을 벌려 복숭아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복숭아가 어찌나 단지 잇몸이 간지러웠다. 복숭아에서 흘러내린 과즙이 손바닥의 손금을 타고 흐르다가 꺾인 손목 아래로 뚝뚝 떨어졌다. 팔꿈치를 따라 흐른 과즙이 소매 안으로 스며들기도 했다. 과즙이 흘러내리지 못하도록 그녀는 허겁지겁 복숭아를 베어 물었다.”(하성란, 여름의 맛 P47)
어찌나 단지, 흘러내리는 과즙을 쪽쪽 소리 나게 빨아먹을 만큼 게걸스럽게 복숭아를 먹어치운 그녀에게 그 남자는 소리쳤다. “당신은 이제부터 복숭아를 정말 좋아하게 됩니다!”이 이상한 시제를 가진 문장은 의미의 바깥에서 혀를 넘실대며 그녀를 지배하게 된다. 그녀는 남자에게 웃기지 말라고 소리쳤지만, 아마도 그 말을 건네는 그 순간에도 그녀는 웃지 않았을 것이다. 기껏 복숭아 정도에 휘둘릴 자신이 아니라고 그녀는 호언장담했지만, 6월 어느 날 그녀는 불타는 금각사 대신 은각사의 복숭아를 떠올린다. 남자의 말이 생생한 울림으로 되살아난다. 그녀가 다들 꺼려하는 지방 출장을 자원하면서까지 그 복숭아 맛을 찾아다니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구에게도 말은 안 했지만 그해 여름, 그녀가 다들 꺼리는 지방 출장을 자처한 것도 복숭아 때문이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유명한 복숭아 산지에 들러 직접 나무에서 딴 복숭아를 맛보았다. 복숭아 맛은 나무랄 데가 없었다. 하지만 교토에서 맛보았던 그 맛은 아니었다. 잇몸이 간지러울 만큼 달고 물 많은 복숭아. 그해 여름을 그녀는 이곳저곳의 복숭아를 맛보고 기억 속의 복숭아 맛과 비슷한 복숭아가 없는 것에 실망하면서 다 보냈다. 맛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혀였다. 미뢰들이었다. 많은 복숭아를 먹으면서 교토에서 먹은 복숭아 맛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하성란, 여름의 맛 P53)
과즙이 줄줄 흐르는 다디단 복숭아의 맛이 최를 사로잡은 맛이라면, 최가 잡지의 연재물로 의뢰한 ‘여름의 맛’으로 요리 연구가 김 선생이 꼽은 음식은 무더운 여름 그의 어머니를 땅에 묻고 내려오던 길에 먹었던 아버지가 사준 콩국이었다.
김 선생이 추억의 음식으로 백 명이 짜장면을 꼽는다 해도 그 이유가 백 가지로 다 다를 거라고 했던 것처럼 똑같은 콩물이지만 그녀와 내가 기억하는 콩물의 추억은 온도가 다르다. 그녀가 맛 기행 연재를 하면서도 레시피보다 음식에 깃든 한 개인의 추억을 재현하는 데 공을 들인 이유도 맛은 맛이기 이전에 한 개인의 추억이라는 데 있었다. 김이 인터뷰했던 출세 가도를 달리고 있던 젊은 여자 연예인이 꼽은 음식은 헤어진 연인과 먹었던 포장마차의 오뎅 꼬치였다. 극단의 막내였던 그녀가 단원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몰래 연인과 눈짓을 주고받으며 먹었던 오뎅 꼬치 맛을 최고로 쳤다.
맛은 맛이 아니라 추억이라고. 그럼 최가 그날 교토에서 먹은 복숭아는 그 남자와의 반나절 추억의 맛이라고 해야 할까. 당신은 이제부터 복숭아를 좋아하게 됩니다. 이미 희미해질 대로 희미해져 이목구비조차 분간이 되지 않는 그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우리가 휘둘리는 것은 기껏 복숭아 한 알처럼 사소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 그리움의 맛이 섬거장의 콩물이라면, 나의 몸과 마음과 영혼의 중심까지 흔든 여름의 맛은 매운탕이다. 둘째를 가지고 지독한 입덧에 시달릴 때 평소 비린 것을 싫어하던 나는 갑자기 매운탕이 먹고 싶어 졌다. 그걸 먹고 나면 막힌 속이 뻥 뚫릴 것 같았다. 보다 못한 남편이 급하게 매운탕 재료를 구해서 근처 큰언니 집으로 갖고 갔다. 그날 나는 허겁지겁 매운탕을 먹어치웠다. 천지를 흔들 것 같은 매운탕 국물 맛은 물론 그날의 밤공기와 미동도 없이 흔들렸던 노란 금계국, 금곡동 어느 골목길에 키를 한자나 세우던 접시꽃 꽃망울의 자태까지도 선연하다. 몇 날을 굶고 토하기를 반복하던 내가 그 매운 국물 맛에 빠져들 수 있었던 것도 지극히 사소하고 우연한 일이었을까.
복숭아를 베어 물 때마다 하성란의 단편 <여름의 맛>이 생각난다. 복숭아를 베어 물 때마다 최가 도쿄에서 맛보았던 다디단 국물이 팔꿈치를 흘러내렸다는 그 복숭아 맛을 상상한다. 책 속의 여름의 맛에 기대어 추억의 이름으로 걸어 나올 또 다른 여름의 맛 이야기가 듣고 싶어 진다. 당신에게는 어떤 여름 이야기가 흐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