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선수가 꿈인 둘째 아들을 위해 어제 온 가족이 공주에 위치한 박찬호 기념관에 출동했다. 박찬호 선수가 유년 시절을 보낸 실제의 집을 리모델링해서 공주시에서 만들어준 기념관이다.
둘째가 이 곳에 꼭 데려가 주라고 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갔지만 아이보다 더 큰 감동은 아마도 엄마인 내 마음속에 담아오지 않았을까.
박찬호 선수는 아시아 출신 메이저리그 투수로서 가장 많은 승리, 124승을 거둔 투수이다. 그의 실제 방, 락커룸, 그를 승리로 이끌었던 숱한 공들, 그의 유니폼과 닳고 닳은 오른발 야구화, 모든 게 인상적이었지만 내 마음에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박찬호 선수가 그의 모자 속에 새긴 글귀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브라운관 속 박찬호 선수는 긴장이 될 때마다 투구 전에 모자를 벗어 다시 쓰곤 했다. 그렇게 모자를 벗고 다시 쓰면서 그는 이 글귀를 수천 번도 더 자신의 마음에 새겼을 거다. 직접 네임펜으로 꾹꾹 눌러 쓴 자신의 글씨를보면서 말이다.
모자 속 글귀 사진 @박찬호 기념관
그저 마음 가는 대로 당당하게 가자. -야구 선수 박찬호의 모자 속 글귀-
모자 속 글귀 사진 @박찬호 기념관
처음과 끝이 한결 같이! -야구 선수 박찬호의 모자 속 글귀-
두 글귀 속 마침표와 느낌표가 그의 글귀대로 당당하게 느껴진다. 박찬호 선수는 일기를 많이 썼다고 한다. 그의 모자 속 글귀들을 직접 읽으니 끊임없이 자기 성찰을 하고 일기를 쓴 힘이 운동 실력으로 나온 게 아닐까 싶다.
재현된 락커룸 전시 공간을 바라볼 때 나는 그의 외로움을 읽었다. 나도 30대에 적지 않은 세월, 7년이라는 나날들을 미국에서 살았지만 배우자와 함께 하는 유학생활이었음에도 외로운 순간들은 적지 않았다. 파란 눈과 노란 머리, 새하얗거나 새까만 피부, 그리고 커다란 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둘러싸인 공간에 혼자 낯선 외양의 모습으로 있는 것 자체가 얼마나 아득한 고독감을 주는지... 박찬호 선수는 저 락커룸에서 얼마나 마음속에 사투를 벌였을까. 좌절감과 자신감의 대립, 절망감과 희망의 교차, 실망과 자만심 사이의 싸움, 수많은 감정들이 그의 마음속에 소용돌이쳤을 거다.
특히 그의 두 까만 색 캐리어 가방을 볼 때는 우리 부부가 미국에서 보냈던, 고생이라면 고생했던 시절들까지 떠올라 마음이 울컥했다. 함께 관람하던 가족들에게 내가 느낀 감정을 나눴다.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신랑이 내 감정이입의 순간을 확 깬다. 박찬호 선수는 백억 대 연봉으로 스카우트됐을 때 퍼스트 클래스 타고 미국 편하게 갔을 거니 걱정 말라고. 그래, 신랑 말대로 기준을 돈에 두면 성공에 두면 그는 성공한 사람이다. 메이저리그에 역사적인 기록을 세웠고 감히 일반인으로서는 엄두도 못 낼 어마어마한 연봉을 거머쥐었으니까.
그런데 나는 그의 마음이 보인다. 몇 백억 대 연봉도 채워줄 수 없었을 그의 외로움, 고독감, 그리고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했을 때 역대급 연봉을 받고도 부상 때문에 지지부진했던 기록들, 그로 인해 얻은 씻을 수 없는 오명들.
박찬호 기념관을 나오며 그의 방과 공, 유니폼 들을 보고 뭘 느꼈냐고 둘째 아이에게 물었다. 자기도 박찬호 선수처럼 훌륭한 투수가 되고 싶다고. 김광현 선수처럼 타자 능력까지 겸비한 투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아이 꿈이 바뀌지 않는다면 운동하는 사람의 길은 험난하겠지. 하지만 아이가 무엇을 하든, 어떤 사람이 되든, 처음과 끝이 한결같은 사람으로 자라길, 그리고 그저 마음 가는 대로 당당하게 가길 바란다.
그리고 '기승전야구'인 둘째에 반해 '기승전글'인 나 자신에게 말을 건넨다. 책과 글에 대한 사랑, 이 마음 한결같길, 그리고 앞으로도 숱하게 좌절하겠지만 마음 가는 대로 당당하게 써 나가길.
그나저나 아이가 이현세 야구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 읽어보고 싶대서 잊지 말고 어서 주문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