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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음악

내가 목말라왔던 게 무엇일까

by 마음은 줄리어드

바이올린을 배우는 딸이 바이올린을 처음 시작할 때 요청했다.


"엄마는 첼로하고 나는 바이올린하면 좋겠다."


성격이 급하고 섬세하지 못해서 현악기와 나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짝이라 여겼다. 그래서 딸의 요청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런데 어느 날, 딸이 바이올린을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 스케일을 스스로 터득하게 되었다. 나도 현악기를 배울 수 있겠다 자신감이 붙어 첼로 레슨을 충동적으로 등록했다.


그리고 레슨 7회차가 되던 날 첼로 선생님이 "첼로에 목말랐던 분 같습니다."라고 했다.


내가 진정 목말라왔던 게 첼로였을까? 나는 그 동안 무엇에 목말라왔을까.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의 저자, 에릭 와이너처럼 나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닌 우울 때문에 늘 무언가를 성취해도 나는 늘 배가 고팠다. 성취의 끝에는 허무함이 도사리며 나를 괴롭혔다.


"나도 거의 언제나 배가 고프다. 내 생각엔, 기억 내내 나를 끈질기게 따라다닌 우울 때문인 것 같다. 지난 몇 년간 다양한 방법으로 그 허기를 채워보려 했다. 종교, 심리상담, 자기계발서, 여행,.. 전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지만 배고픔이 완전히 해소되지도, 효과가 오래 지속되지도 않았다." 에릭 와이너,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한동안 미쳐 있었던 운동을 너머, 집착에 가까웠던 책의 세계를 지나, 이제는 악기의 차례인가? 음악도 어느 정도 목표한 바를 이룬 다음에는 허무함이 찾아오려나? 음악에 대한 나의 강렬한 스파크 같은 사랑도 유효 기간이 있는 걸까? 갑작스레 찾아온 음악을 향한 사랑에 일말의 의구심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무엇에 목말라왔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나는 늘 인정에 목말라왔던 것 같다.


무엇에 목말라왔던지 간에 첼로를 만나고 난 후 죽어있던 나의 음악적 신경들을 깨우고 있다. 나의 과거를 회상한다. 내가 어렸을 적, 가장 행복했던 때는 음악을 할 때였다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노래와 피아노를 좋아했던 두 죽마고우와 함께 우리 크면 대학가요제 나가자며 "빠~빠빠빠~" 로 시작하는 '숨바꼭질'에 화음을 넣어 불렀던 시절. '개똥벌레'를 피아노 치며 부르며 모든 걸 잊었던 순수한 충만과 기쁨의 순간들. 집안의 분위기는 늘 우중충했지만 음악할 때만큼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그 시절, 오늘도 첼로를 켜며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간다.


이 순간만큼은 저녁 메뉴 걱정과 아이들 챙길 소소한 스케줄에 대한 걱정은 모두 다 잊은 채.


음악이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아주 오래된 친구처럼 음악이 내게 다가온다.


용기만 있다면 정말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단다. 낯선 곳도 오랜 친구처럼 느껴지지.
<토토와 오토바이> 중, 케이트 호플러 글, 사라 저코비 그림, 북극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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