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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smupet Dec 20. 2020

마음의 깁스를 풀어야 한다면

이런 날에는 이런 향기

"스윗 마조람은 부교감신경을 항진시켜서 빠르고 깊은 이완을 가져옵니다."


스윗 마조람의 향기를 설명하는 문구. 

하지만 나에게 스윗 마조람은 그렇지 않았다. 


집에서 스윗 마조람을 처음 쓰던 날, 내가 경험한 건 깊은 이완이 아닌 숨 막히는 공포였다.

깊은 이완으로 이끌어주는 오일이라니 잠자리에 들기 전에 쓰면 좋을 것 같았다. 침대에 쏙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으로 깊은 잠에 빠져들고 싶었다. 그 느낌이 많이 그리웠던 터라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공황장애로 질병 휴직을 했다가 사표까지 내고 강릉에 내려와 살게 되면서 몇 년 동안 하던 운동도 중단하게 되었다. 퇴근을 하면 운동을 하고 뻐근해진 몸을 씻어낸 후 잠드는 게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운동을 한 날은 침대에 눕자마자 매트리스 속으로 쏙 빨려 들어가는 느낌 속에서 잠들었다. 그건 쾌감이었다. 바뀐 생활 속에서 사라져 버린 쾌감. 


기대와 다르게 마조람 오일을 바르고 나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천장을 보고 누워있는데 갑자기 숨이 막혀왔다. 공황발작. 그대로 숨이 멈춰 죽을 것 같은 공포가 밀려왔다. 벌떡 일어나서 깊은 숨을 몰아쉬었다. 그래도 답답해서 거실로 나가 서성였다. 바깥바람을 쐬고 나서야 숨이 편안해졌다. 잠귀가 밝은 그가 일어나 한참을 등을 두드려주고 손발을 주물러주고 나서야 겨우 잘 수 있었다.


무슨 일이지? 

스윗 마조람, 너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왜 나한테는 깊은 이완을 가져다주지 않는 거야? 

사실 이건 자연스러운 몸의 반응이었다. 우리 몸의 가장 중요한 미션은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저런 상황과 환경 속에서 설정된 세팅값을 유지하는 게 몸의 일이다 보니 갑자기 그 상태를 깨뜨리는 일이 벌어지면 몸이 격렬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나 다시 돌아갈래!"


스윗 마조람의 향기가 가져다주는 깊은 이완, 나의 몸에게 그건 세팅값에 벗어나는 일이었다. 


'기본 세팅값이 긴장 상태인데 이완이라니, 이제 내가 죽는 건가? 안돼~ 이렇게 죽을 순 없어!' 


한밤중의 공황장애는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몸의 격렬한 저항이었다. 깊은 이완을 경험해본 게 언제였지? 언제부터 이렇게 경직된 채 살아온 거지? 도대체 얼마나 오래되었길래 스윗마조람의 향기가 가져다주는 깊은 이완을 죽음으로 착각하는 거니? 평소에 긴장도가 높다는 건 알고 있었다. 넋 놓고 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주먹을 쥐고 있었다. 그냥 편히 힘을 빼고 있어도 될 것을. 무언가에 열중해 있다가 또 정신을 차려보면 이를 앙 물고 있었다.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있었다. 무언가를 할 때, 그 일에 내 온 힘을 쏟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 몸에 온 힘을 쏟고 있었다. 내 온몸을 꽉 쥐고 있었다. 아주 오래된 몸의 습관, 긴장된 마음이 몸을 긴장시키고, 긴장된 몸이 마음을 더 긴장시키는 악순환. 해야만 하는 것, 거기까지는 꼭 하고 싶은 것들이 내 몸을 꽉 조이고 있었다. 


골절이나 염좌로 얼마간 깁스를 하게 되면 깁스를 풀고 나서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스윗마조람의 향기가 선사한 경험도 이런 것 같다. 마음의 깁스를 풀고 나서도 한동안은 넘어질까 봐 발걸음을 떼지 않았다. 마조람 오일을 쓰지 않았다. 그러다 오늘 다시 마조람 오일을 써봤다. 한밤중이 아닌 한낮에.


지금 내 몸과 마음의 균형을 맞추는데 필요한 오일이 뭘까?

이 질문에 대한 아로마 인사이트 카드의 답이 마조람이어서, 한밤중이 아닌 한낮이어서 써볼 용기가 났다. 깁스를 푼 마음이 세팅값을 다시 설정하는 중이었던 걸까? 한낮의 스윗 마조람은 기분 좋은 나른함을 가져다주었다. 딱딱하던 몸이 말캉말캉해졌다. 

내 몸은 원래 딱딱한 돌덩어리가 아니라 말랑말랑한 젤리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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