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발자국을 따라간 숲

귀로 듣는 컬러, 올리브 그린과 핑크

by Redsmupet

오늘 아침 눈길을 잡아끄는 바틀이 나를 작년 꿈으로 데리고 간다. 바틀 이름 때문이다.

"우주 토끼 Cosmic Rabbit"

오라소마 바틀 이름 중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것들이 몇 개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99번 바틀 '우주토끼'다. 옅은 올리브 그린과 핑크색이 함께 들어있는 이 바틀의 또 다른 이름은 '자프키엘 대천사 Archangel Zaphkiel'이기도 하다. '대천사'라는 이름도 낯설기는 매한가지이다. 서양에서 자프키엘 대천사는 용서와 기억의 천사라고 한다. 자프키엘 천사에게 하는 기도 중에 이런 기도문이 있다.


"자프키엘 대천사여 감사합니다.

당신은 제가 아름다운 기억에 집중하고 나머지 기억들은 흘려보내도록 도와주십니다."


- Doreen Virtue, <Archangels 101>, Hay House, Inc.


기억할 것은 기억하고, 흘려보낼 것은 흘려보내며 사는 것처럼 평온한 삶이 있을까? 그런데 도대체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흘려보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저마다의 신성한 삶의 목적이며, 흘려보내야 할 것은 오래된 분노, 희생자가 된 것 같은 억울함이라고 자프키엘은 말한다. 우리에게는 낯선 존재인 대천사, 하지만 천사가 전하는 메시지는 그리 낯설지 않다.

런데 대체 이 대천사와 토끼는 무슨 관계인 거지?

인류의 보편적 상징에서 토끼는 달에 속하는 동물이다. 그리고 달이 상징하는 것은 여성적인 힘, 태모신太母神과 같은 여신의 힘이다. 생명을 잉태하여 세상으로 내보내고 죽음을 통해 다시 그 생명을 거둬들이는 생과 사의 순환을 관장하는 힘. 세상에 생과 사의 순환에 속하는 게 생명뿐이겠는가? 우리의 기억, 상처들도 그 순환 속에서 태어나고 죽고, 다시 태어나고 죽지 않는가. 그 순환이 똑 떨어지는 원을 그리며 끊임없이 같은 자리를 빙빙 돈다면 얼마나 허무할까? 한참을 온 것 같은데 또 제자리라면 얼마나 힘이 빠질까? 다행히 달의 순환은 닫힌 원이 아니다.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지만 잘 보면 조금은 다른 곳에 서 있다. 빙빙 도는 건 맞는데 밖으로 점점 커지는 원, 나선형으로 퍼져나가는 원인 것이다. 우리는 순환하는 원 속에서 조금씩 다른 위치로 이동하고 있다. 빙글빙글 돌면서 생겨나는 원심력으로 필요 없는 것들은 휙 날려버리면서.




사실 토끼 꿈을 얘기하고 싶었는데 서두가 길어졌다.

토끼가 꿈에 반복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건 작년 여름이었다. 처음엔 토끼 쿠키 꿈이었다. 토끼 모양 쿠키를 두 판 가득 굽는 꿈. 그다음 꿈에 나타난 건 토끼 모빌이었다. 선물 가게에 들어갔는데 창가에 거대한 토끼 모빌이 있었다. 너무 예뻐서 넋 놓고 쳐다보고 있는데 어떤 여자가 그 모빌에서 토끼 하나를 떼어서 준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그 토끼를 다시 모빌에 붙여보려고 애를 쓰는데 가게 주인이 나타났다. 나에게 화를 내는 가게 주인에게 변명 한마디 못하고 토끼를 건넨다. 가게 주인이 모빌에 다시 토끼를 붙이고 나에게는 작은 고양이 인형을 준다. 잘 간직해 달라는 말과 함께.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건 고양이가 아니다. 귀가 뒤로 젖혀진 토끼다. 고양이 같은 토끼 인형을 가지고 가게를 나와서 요양원으로 간다. 내가 입원해 있는 곳이다. 여동생이 문병을 왔다. 나에게 너무 방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안 된다며 외출을 하자고 한다. 둘이 간 곳은 시내의 한적한 기념품 골목이다. 아기자기한 그 골목길을 동생과 걷다가 옷가게 하나를 발견한다. 나는 그 가게에서 옷을 하나 사도 괜찮겠다고 생각한다.


이 꿈을 상담 시간에 가져갔었다. 선생님은 토끼가 나의 공황장애일지도 모르겠다고 하셨다. 그때 내가 '토끼'라는 단어에서 떠올렸던 연상이 큰 귀, 놀라서 뛰어가는 토끼였다. 귀가 너무 커서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 도망가는 토끼.


며칠 후 내 꿈에 다시 토끼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토끼 무늬 티셔츠였다. 꿈속에서 나는 어떤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이었다. 어떤 직원 한 명이 토끼가 잔뜩 그려진 셔츠를 입고 나타났다. 나는 상사에게 바로 저거라며, 다 같이 토끼 셔츠를 입자고 제안했다. 상사가 내 말을 회피하는데도 나는 신이 나서 그를 쫓아다니며 계속 말한다.

"우리 다 같이 저 토끼 셔츠를 입어요!"


사실 그때는 토끼 꿈에 대한 분석 내용이 마음이 와 닿지 않았다. 토끼가 공황장애를 상징하는 것이라면 왜 그다음 꿈에서 저렇게 토끼 셔츠를 단체복으로 입자고 난리를 친단 말인가? 실마리가 풀린 건 오늘 아침 우주 토끼 바틀로 명상을 하면서였다. 올리브 그린과 핑크 음악 속에서 나는 아주 먼 과거의 겨울로 돌아가 있었다.


꼬마가 아파트 뒷 산 옆으로 난 길을 지나다 눈이 소복이 쌓인 산 쪽으로 난 토끼 발자국을 발견한다. 너무나 선명한 발자국을 보고는 흥분한다.

'저 발자국만 따라가면 토끼를 볼 수 있겠다!'

하염없이 토끼 발자국을 따라 숲으로 들어간다. 정신을 차렸을 때 꼬마는 낯선 공간에 와 있었다. 숲에서 길을 잃은 것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두려움이 잠깐 일었지만 꼬마는 이내 저 쪽에 보이는 토끼 발자국에 마음을 빼앗긴다. 또다시 흥분한 꼬마는 그 발자국을 따라간다. 결국 꼬마는 그날 토끼를 보지 못했다. 대신 토끼 발자국은 꼬마가 '잘 아는 장소'로 데려다주었다. 친구들과 우리들만의 비밀 본부라고 표시를 해 둔 숲 속의 어느 공간. 언제 길을 잃어버린 적이 있냐는 듯이 꼬마의 마음속에는 토끼를 보지 못한 아쉬움과 다음엔 토끼를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만 가득했다.


아! 그 토끼였구나!

토끼는 공황장애가 아니라 날 삼켜버린 두려움이 나를 다시 뱉어내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단서였다. 호기심과 모험에 대한 열망이 바로 그 단서였다. 토끼 발자국을 따라가던 꼬마의 마음. 언제부터 꼬마의 호기심과 모험에 대한 열망이 두려움에 먹혀버렸을까?

실패들 앞에서 쏟아지던 말들,

"그러니까 무모하게 그러지 말았어야지.", "좀 현실적으로 살아봐.", "이래 가지고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래?", "현실은 그게 아니야.",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구나."

그 말들 속에 자라난 생각과 감정들은 꼬마의 호기심과 모험에 대한 열망을 조금씩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토끼 발자국을 따라가던 그 꼬마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면 진짜 길을 잃어버리지 않았을까?

다시 토끼가 나를 부른다. 꼬마의 마음에 일던 호기심과 모험에 대한 열망이 나를 두려움이라는 괴물의 뱃속에서 꺼내 줄 거라고 말하면서.

토끼 발자국을 따라가던 그 꼬마가 있던 자리에서 나는 지금 나선형으로 빙빙 돌아 다시 그 근처 어디엔가 와 있는 것 같다.



[옅은 올리브 그린과 핑크의 조합, 우주토끼]


"지금 이 순간 나는 자유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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