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을 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잠에서 깬 직후와 잠들기 직전인 것 같다. 나의 경계가 가장 느슨해지는 바로 그 시간.
당신이 만약 명상에 호기심은 있지만 명상이 너무 거창해 보여서, 나와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인 것 같아서 시도해보지 않았다면 이 시간을 이용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의 SNS를 보고 명상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방법으로 말하자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명상을 뭔가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나에게 명상은 경계를 푸는 일이다. 갑옷을 벗고 창문을 열고 나에게 불어오는 바람을 그 결 그대로 느끼는 것이다. 나의 이성이 정신을 차리기 전,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이 키 포인트이다.
잠에서 깬 아침, 침대에서 뒤척이며 '일어나야 한다'는 마음과 '일어나기 싫다'는 마음이 뒤엉켜버리기 쉬운 시간, 정당하게 좀 더 누워있을 시간을 허락해보라. 누워서 명상을 하는 것이다. 눈도 뜰 필요가 없다. 침대에 등을 대고 똑바로 누워서 호흡에 집중해보라. 거기에 중얼거림까지 더해지면 더 좋다.
"감사합니다."
뭐가 감사하냐고? 그냥 일단 중얼거리는 거다. 그러다 보면 '감사합니다'라는 말의 주어가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한다. 떠오르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냥 주문이라고 생각하고 중얼거려라. 입 밖으로 소리를 내어 놓든, 속으로 되뇌든 그건 당신의 취향대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침 명상은 나를 꿈과 현실의 중간 지대로 데리고 간다. 이성이라는 놈이 꿈과 현실 사이에 놓인 다리를 걷어차버리기 전에 중간 지대로 가서 꿈의 메시지를 현실로 가져온다. 그 시간에 컬러 파장이 담긴 오라소마 에센셜 음악의 도움을 받는다. 그날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 컬러를 선택하고, 음악을 튼다.
오늘 아침에 내 눈에 들어온 바틀은 옅은 코랄색의 87번 바틀이다. 이 바틀은 '사랑의 지혜'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지고 있다. 자아의 반영 너머에서 자신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사랑의 지혜. 내면으로 들어가는 여정을 시작한 은둔자가 어딘가에 도착해 물이 가득 담긴 그릇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 보고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거울 속에서 봤던 모습과 같으면서도 뭔가 다르다. 그릇에 담긴 물속에 비치는 얼굴에서 발견하는 것, 어쩌면 이 사람이 긴 여정에서 발견한 빛이 아닐까? 자신의 얼굴을 비춰주는 조명, 바로 자기 머리 위에서 빛나는 태양을 말이다. 똑같은 사람을 찍어도 조명에 따라 사진의 이미지가 확 달라 보이는데, 태양을 가린 채 들여다보는 자신의 얼굴이 햇살 아래서 보는 얼굴과 같을 수 있겠는가?
코랄 음악과 함께 한 오늘 아침에는 중간 지대에서 누군가 나에게 말을 한다.
"날개가 있어야지만 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리고 내 앞에 나타난 여자 아이.
그 아이의 몸에 무언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갑옷 같기도 하고 가시 같기도 한 것들이 바닥으로 후드득 떨어지고 아이의 맨 살이 드러난다. 빛이 투과되어 반짝이는 몸이 마치 공기 같다. 그 가벼움이 아이를 날 수 있게 해 준다.
내가 날개가 없어서 못난다고 투덜거리고 있었던 걸까?
여자 아이에게 덕지덕지 붙어있던 것들, 어제 꿈속에서 내가 본 파란 천막이 떠올랐다. 나의 숲에 보기 싫게 자리 잡고 있던 파란 천막.
꿈속에서 나는 친한 언니와 함께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언니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어떤 지하 통로 입구다. 비밀 기지 같은 땅굴 입구였다. 황토색 군복을 입은 군인이 입구를 지키고 서 있다가 우리를 발견하고 언니에게 말한다.
"여기는 출입이 허가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당신만 들어갈 수 있어요."
언니는 나만 두고 갈 수가 없어서 다시 나온다. 땅굴 입구에서 나와 뒤를 돌아본다. 소나무 숲이 펼쳐져 있다. 나의 숲이다. 사람들이 이 숲에 찾아온다. 숲 오른쪽에 파란 비닐 천막이 있다. 엄청 큰 천막이다. 그 안에 있는 나무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숲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는 곳이라 천막이 없으면 나무가 죽어버린다. 나의 생각이 그 파란 천막 왼편에 또 다른 작은 천막을 하나 둘 만들어낸다. 어느 순간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숲을 즐기는데 방해가 되는 것 같다. 그 파란 천막을 거둬내고 그곳에 유리로 된 투명한 온실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잠에서 깼다.
숲은 무의식의 영역이자 시련과 이니시에이션 initiation의 장소다. 성인기에 접어든 원시 부족의 아이는 홀로 숲으로 보내진다. 일정 기간 동안 숲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아 마을로 돌아온 아이만이 그 집단의 어엿한 성인으로 받아들여진다. 지금도 지구촌 어딘가에서 살고 있는 원시 부족들에게는 이런 통과의례가 남아있다고 한다. 쫓겨나다시피 숲으로 들어간 아이는 수많은 위험에 맨몸으로 맞서야 한다. 어떤 날짐승이 자신을 덮칠지 모르는 상황, 더위나 추위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울타리도 없고, 무엇을 먹어야 할 지도 당최 알 수 없는 혼란 속에서 이 아이는 어떻게 살아남아 마을로 돌아갈 수 있을까?
당신은 숲에 홀로 버려진 적이 있는가? 사방을 둘러봐도 도와줄 사람 하나 없는 막막한 상황, 멋진 캠핑 장비는커녕 나를 지켜줄 간단한 무기 조차 없이 깊은 숲에 홀로 고립된 적이 있는가?
내 인생의 지도에는 그런 숲이 몇 군데 있는 것 같다. 그 숲을 피해 가고 싶지만 그곳을 지나지 않고는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지점을 벌써 몇 군데 지나온 것 같기도 하다.
꿈속에서 본 숲은 내 인생의 어느 길목에서 만난 숲이었을까? 나는 살아남으려고 그 숲에다 파란 천막을 쳤다. 밤이 되면 기온이 무섭게 떨어지는 그 숲에서 나의 나무들이 얼어 죽을까 봐 지레 겁먹고 엄청나게 큰 천막을 만들어버렸다. 그런데 그 천막이 낮의 햇살까지 가로막아버렸다. 그 안의 나무들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알 도리가 없다. 숲의 아름다움도 훼손해버렸다. 안 되겠다. 저 천막을 거둬야겠다.
파란 천막을 거둬낸다. 그 안에 있는 나무들도 바깥에 있는 것과 똑같은 소나무들이다. 온실도 사실 필요 없는 것이었다. 긴긴 겨울을 저 소나무는 얼마나 잘 버티어내는가. 한낮의 따뜻한 햇살만 충분히 쪼인다면 소나무들은 아무리 혹독한 겨울이라도 살아남는다. 긴 겨울은 소나무에게 나이테 하나를 더 만들어준다. 나이테의 개수만큼 두꺼워진 나무는 땅 속으로 점점 더 깊고 단단하게 뿌리를 뻗어나간다. 그 뿌리가 어느 순간 땅굴에까지 다다른다. 출입허가를 받지 못해 들어갈 수 없었던 그 땅굴을 나의 나무는 뿌리로 들어간다.
해는 언제나 떠올라 나에게 온기를 전해준다. 밝은 빛으로 길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 그 햇살을 가리는 건 언제나 나였다. 숲을 통과하는 여정 속에서 나는 다시 태양의 존재를 기억해낸다.
숲에 홀로 들어간 아이가 살아 나오는 방법, 숲에 집을 짓고 장벽을 쌓은 채 머무르면 안 된다. 그곳에 머무르는 건 영원히 성장이 멈춰버린 죽음의 시간 속에 갇히는 것일 테니. 숲은 '통과의례'의 장소가 아닌가. 말 그대로 통과해서 나와야 한다. 햇살이 밝게 비추는 낮의 숲, 그 햇살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숲의 입구에 다다를 수 있다. 두려움으로 그 햇살까지 가려버리지만 않는다면! 인생은 언제나 우리를 홀로 내팽개쳐 버리지 않는다.
[페일 코랄과 페일 코랄의 조합, 사랑의 지혜]
"나는 작별을 고하고 과거를 놓아버립니다. 나는 현재에 감사합니다. 내 주변으로부터, 내 안에서 따뜻함과 보살핌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