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을 짓고 이사 온 지 어느덧 2년이 되어간다. 이 집에 이사를 오면서 할머니 꿈을 참 많이 꿨다. 진짜 우리 할머니 말고 꿈속에만 존재하는 할머니.
할머니들이 단체로 현관문을 부수고 들어와서 집을 점령하기도 하고, 한 분이 슬그머니 문을 열고 들어와 거실에 드러누워 버티기도 했다. 선물을 주시거나 밥상을 차려주시는 따뜻한 할머니도 있었다.
오늘 아침 마젠타 음악으로 명상을 하는데 문득 꿈속에서 할머니가 차려주던 밥상이 생각났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밥, 뚝배기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던 찌개, 보기만 해도 군침도는 반찬들.
"할머니~ 배고파요~ 할머니 밥이 먹고 싶어요!!"
마음속으로 할머니를 부른다.
꿈속에서 나의 집은 어떤 건물 2층이었다. 창 밖으로 놀이터가 보이는데 아이들이 신나게 놀고 있다. 무엇을 하길래 저렇게 신나는 걸까 궁금해서 유심히 관찰한다. 아이 몇 명이 놀이터 건너편 건물에서 무언가 들고 나온다. 그곳은 동굴과 통하는 입구다. 동굴에서 무엇을 가지고 나와서 노는 거지? 갑자기 동굴에 가보고 싶어 진다. 집을 나와 동굴 입구로 통하는 건물로 간다. 대문이 하나 나온다. 문을 두드리자 할머니 한 분이 나와서 나를 맞아주신다. 집 안으로 들어가서보니 통나무 집이다. 꼭 동화 속에 나오는 숲 속의 집 같다.
꿈속에서 동굴은 무의식을 상징한다. 해가 들지 않는 어두운 곳, 미지의 세계, 대지의 자궁이 동굴이다.
보통 옛이야기에서 주인공은 숨겨진 보물을 찾으러 동굴에 들어간다. 보물을 그냥 가지고 나오면 너무 시시할 텐데 그 동굴에는 꼭 괴물이 하나쯤은 살고 있다. 그 괴물을 처치해야지만 주인공은 보물을 가지고 나올 수 있다. 할머니의 남편, 사람을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할아버지가 그 괴물일까? 그럼 괴물과 함께 사는 할머니는 뭐지? 그렇게 따뜻하고 자상한 할머니가 괴물일 것 같지는 않은데.
옛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가 있다. 곤경에 처한 주인공을 도와주는 노인! 주인공이 절망하는 순간 어디선가 어떤 노인이 불현듯 나타나 굶어 죽기 직전에 먹을 걸 주거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법의 도구를 선물해준다. 융은 이런 노인이 전형적인 '노현자 원형'이라고 말한다. 도저히 개인의 의식적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곤경에 처했을 때 그 상황을 뚫고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노현자, 나의 꿈속 할머니가 바로 노현자인 것 같다.
꿈속에서 음식을 먹는다는 건 영혼의 자양분을 섭취하는 것이다. 마젠타 음악이 나를 다시 할머니 집으로 데리고 간 이유, 내 영혼에 자양분을 채우라는 것이겠지? 알 것 같다. 왜 나에게 지금 할머니 밥이 필요한지.
지금 나는 다시 동굴 앞에 서 있다. 그때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이젠 이 동굴 안으로 들어가 보아야 한다. 그 속에서 괴물이 지키고 있는 보물을 가지고 나와야 한다. 그 보물은 다름 아닌 나 자신, 내 삶의 비밀을 열 수 있는 황금 열쇠니까!
할머니가 차려준 밥 한 그릇이면 어떤 괴물이라도 쫄지 않고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멋지고 감사한 일이다! 이런 할머니가 나의 꿈속에 살고 있다는 게.
당신의 꿈속 노현자는 어떤 모습인가? 할머니인가? 할아버지인가? 아니면 또 다른 어떤 모습인가?
혹시 아직 만나지 못했는가? 만났는데 그 사람이 당신을 도와줄 마법을 선물해주는 노현자라는 걸 모르고 지나친 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