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그리움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청난 정직성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그리움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걸 알아차리는 게 불가능하거나 엄청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움은 삶의 길이다. 만약 당신이 그리움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자기 자신을 따를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알려주는 낯선 길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는 순간 당신은 당신의 삶이 아니라 생경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당신이 당신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가 당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당신의 삶을 엉뚱한 삶으로 대체하는 건 어리석은 짓일 뿐만 아니라 위선적인 게임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렇게 사는 척하면서 자신과 타인을 기만할 수는 있겠지만, 절대로 타인의 삶을 자기 삶인 양 '진짜로' 살아낼 수는 없다. 당신은 오직 당신 자신의 삶만을 진짜로 살 수 있다.
당신이 자신이 되기를 포기하고 다른 이의 삶을 산다면 당신은 다른 이들에게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사람이 되어버린다. 다른 이들이 당신처럼 남의 삶을 사는 게 가능하다고 믿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당신의 삶은 원숭이 같은 모조품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원숭이 같은 당신의 삶이 다른 이들의 삶도 감염시킨다. 당신을 따라 다른 이들도 원숭이 같은 삶을 살게 된다. 서로가 서로를 모방하면서 평균적인 기대에 맞추어 살게 된다. 사람들의 평균적인 기대는 영웅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모두가 그 영웅의 삶을 모방하려고 애쓰게 된다. 영웅은 살해되어야 한다. 영웅이 살아있는 한 우리가 모두 그를 따라 하는 원숭이가 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C.G.Jung, <The Red Book>, SONU SHAMDASANI, p.187~188 번역.
융이 말하는 그리움을 따라가다 나의 그리움을 소환해본다.
내 마음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그리움은 무엇을 향하고 있는가?
'로열블루' 음악을 처음 듣던 날이 떠올랐다. 선생님이 '레드' 음악이라며 틀어준 음악이 실은 로열블루 음악이었다. 음악을 듣는데 갑자기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멈추지 않고 계속 흘렀다. 슬픔에서 나오는 눈물은 아니었다. 뭔가 막연한 느낌인데 어떤 언어로도 그 느낌을 잡을 수가 없었다.
융의 그리움이 나에게 물어본다.
"혹시 그 음악에서 느껴지던 막연함이 그리움 아닌가? 그 음악이 당신이 그리워하는 그 무엇에게로 당신을 데리고 갔던 게 아닐까?"
자리를 잡고 앉아 로열블루 음악을 튼다. 로열블루가 정말 나의 그리움이 향하는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가줄 수 있을지 눈을 감아본다.
아주 오래전 꿈이다.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밑바닥, 거기서도 구멍을 파고 더 밑으로 들어갈 수도 있을 것 같았던 시기에 꿨던 꿈이다. 내 삶의 첫 번째 우울증을 앓던 때였다.
꿈속에서 나는 다이빙을 하려고 사람들과 배를 타고 망망대해로 나왔다. 배가 멈추고 사람들이 하나둘 물속으로 들어간다. 나도 그들을 따라 물속으로 들어간다. 햇살이 뚫고 들어오는 바닷속은 너무나 평온하고 아름답다. 저 밑에 무언가 보인다. 그곳을 향해 점점 더 깊이 내려간다. 바다 밑바닥에 고대 유적이 잠겨있다. 흙으로 구운 벽돌, 투박한 유적의 흔적이 아주 고대의 것처럼 느껴진다. 비교적 넓은 그곳을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여기저기 돌아본다. 누군가 거기에 있다. 어떤 남자다. 내 또래의 남자. 나를 기다렸던 것 같다. 나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한다. 그를 따라 어느 집으로 향한다. 바로 그때 저 위에서 사람들이 올라오라고 손짓한다. 아쉽지만 더 머무를 수 없을 것 같다.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던 중에 잠에서 깼다.
뭔지 모를 이 꿈이 그때는 나에게 그냥 위로가 되었다. 다른 사람은 모르는 보물 지도를 나만 손에 쥐게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남자가 데리고 가려던 그곳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그 호기심은 나를 다시 삶으로 잡아당겼다. 그걸 알아내지 않은 채 그대로 땅 밑으로 가라앉아버리기 싫어졌다. 이 꿈을 꾸고 난 후 여러 번 꿈속에서 고대 유적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 유적들에 다가가는 게 쉽지 않았다. 닿을 듯 닿을 듯하다 잠에서 깨기 일수였다.
나의 그리움은 그곳을 향하고 있는 것일까?
알 수 없는 고대 유적. 나를 삶으로 다시 끌어내 준 곳.
어렸을 때 나의 꿈은 '탐험가'였다. 동굴 탐험, 오지 탐험에 대한 책들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폈다. 신비한 곳으로 탐험해 들어가다 보면 거기에 우주로 통하는 통로가 있을 것 같았다. 같은 책을 수없이 반복해서 펼쳐보면서 나름대로 탐험 계획도 세워보고, 상상 속에서 이것저것 시도도 해보았다. 하지만 학교에서 적어내라는 장래희망란에 그 꿈을 적어낸 적은 없었다. 공식적으로 나의 꿈은 의사, 피아니스트, 교수 이런 것들이었다. 그 어린 나이에 벌써 원숭이가 되어버렸던 걸까? 내 꿈이 너무 공상 같아서 사람들에게 말하기 창피했다. 나를 이상하게 볼까 봐 무서웠다. 어차피 지구 상에 탐험할 만한 오지가 더 이상은 없을 것이라며 스스로를 설득하기도 했다.
그런데 참 웃기지? 깊은 웅덩이에 빠진 순간 꿈이 나를 데리고 간 곳이 내가 탐험하고 싶은 바로 그곳이라니!
물론 꿈속에서 고대 유적을 처음 발견한 이후로도 나는 꿈과 상관없이 살았다. 그런 꿈을 꿀 때마다 문득문득 아련한 그리움이 느껴졌을 뿐, '꼬마였을 때 가졌던 막연한 꿈이 지금 내 삶이랑 무슨 상관이람'이라는 생각으로 현실을 살아갔다. 그러다 또다시 우울증이라는 깊은 웅덩이에 빠지고 나서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정말 무언가 잘못되었다! 내가 '가짜'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가짜'같은 삶이 너무나 그럴듯해서, 이 세상이 만들어놓은 표준적인 영웅의 삶과 닮은 것 같아서 그걸 놓을 수가 없었다. 나의 영웅을 내 손으로 죽일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우울증과 공황장애 속으로 도망쳤다. 한동안은 편했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고 하루 종일 잠만 자면서 보내는 그 시간이 영원히 지속되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다시 살아난 내 안의 충동이 나를 잠만 자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어차피 잠만 잘 거면 정말 미친척하고 마음에만 담아뒀던 걸 해버려~ 잠만 자나 미친 짓을 하나 뭐 별 차이 있겠어?'
웅덩이에서 기어 나와서 미친 짓을 하나씩 실행하기 시작했다. 사표를 내고, 오라소마를 배우고, 진짜 나의 상담센터를 열고,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왜 진작 미치지 않았을까? 미치니까 최소한 원숭이는 안돼잖아! 이렇게 좋은데! 이렇게 평온한데!
나는 지금 아직도 세상에 남아있는 오지를 탐험하기 시작했다. 나의 마음, 당신의 마음,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숨겨진 고대 유적을!
[또 로열블루, 라파엘 대천사]
"직관은 내가 더 명확히 들을 때, 더 분명히 볼 때, 더 확실히 맛볼 때 피어납니다. 숨겨져 있는 모든 것이 명확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