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은 혼자 남아있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 동이 틀 때까지 야곱과 씨름을 하였다.
천사 "동이 트려고 하니 나를 놓아 다오."
야곱 "저에게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놓아 드리지 않겠습니다."
천사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 "야곱입니다."
천사 "네가 하느님과 겨루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으니, 너의 이름은 이제 더 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다.
천사는 야곱에게 복을 내려주었다. 야곱은 생각했다.
"내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하느님을 뵈었는데도 내 목숨을 건졌구나."] 구약성경 창세기 32장 중에서 재구성
어떤 꿈을 꾸고 일어난 날 이 구절이 생각났다. '내가 뭐 야곱이라도 된다는 거야?'라며 피식 웃고 만 꿈이었다.
바이올렛과 레드가 담긴 65번 바틀로 명상을 한 오늘 아침, 이 꿈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나의 꿈이여, 무슨 말을 하려고 다시 찾아왔나요?"
그 꿈을 꾼 건 2년 전 여름이었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그땐 정말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그 전 해부터 어쩌다 증발해버린 학교의 전문상담사 자리. 상담실 문을 두드리던 아이들이 보건실로 몰리던 때였다. 나를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무능한 어른이 되기 싫어서 책도 보고, 연수도 듣고 이것저것 찾아보며 공부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버텨보겠다고 나를 상담해줄 상담가를 찾아가 난생처음 정기적으로 상담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가슴을 누르는 손들이 점점 더 늘어나는 것만 같았다.
이 꿈을 꾼 지 딱 1년 후 상담 시간에 만든 나의 모래놀이 상자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경계를 짓는 일'이었다. 내가 제일 못하는 것, 아니 내가 가지고 태어난 나의 모습.
나는 경계를 잘 못 짓는다. 타인의 마음이, 내 앞에 있는 이의 감정이 나에게로 쑥 들어와 내 것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내 것이 되어버린 아이들의 아픔, 답답함, 분노, 슬픔들이 수많은 손이 되어 내 가슴을 눌러왔다.
바로 그런 시기에 꾼 꿈이 오늘 다시 나를 찾아왔다.
꿈속에서 어떤 불한당을 만났다. 여자 화장실에 몰래 숨어든 남자! 신고를 하려고 앞에 보이는 청원경찰에게 다가가는데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얼른 경찰에 신고해야 할 것 같아 핸드폰을 찾는데 도대체 어디에 둔 건지 보이지 않는다. 겨우 핸드폰을 찾아 112 버튼을 누르려는데 자꾸만 번호가 이상하게 찍힌다. 너무 답답하다. 드디어 번호가 제대로 찍혔다 싶으면 엉뚱한 이에게 전화가 온다. 나중에 전화하겠다고 전화를 끊고 다시 112에 전화를 한다. 이번엔 진짜로 연결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나에게 전화를 한 친구와 연결된 것이었다. 나중에 전화하자고 말하는데도 친구는 자기 사업 얘기로 정신이 없다. 하는 수 없이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건물 밖으로 나갔다. 건물 옆으로 산길이 하나 나있는데 그곳에 폴리스라인이 쳐져있다. 혹시 아까 화장실에서 본 남자와 관련된 사건일까 싶어 폴리스 라인을 넘어갔다. 길 오른편으로 푸줏간이 줄지어 있는데 돼지들이 피가 묻은 채 통째로 매달려 있다. 도대체 무슨 사건인 건지 궁금해진다. 인기척이 전혀 없는 스산한 길을 걸어 올라간다. 드디어 친구가 전화를 끊었다. 다시 112에 전화를 하는데 여전히 연결되지 않는다. 언덕배기에 다다를 무렵 화장실에서 봤던 그 남자가 보인다. 언덕 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내 양팔을 붙잡고는 "너를 어떻게 죽여줄까?"라고 말하며 노려본다. "살려주세요~ 누가 좀 도와주세요~." 아무리 외쳐도 그곳엔 우리 둘밖에 없다. 한참을 몸부림치다 갑자기 내가 이 남자를 물리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밤새도록 그 남자와 몸싸움을 하다 잠에서 깼다.
꿈속의 이 남자, 대체 정체가 뭐지?
잠에서 깨는 순간 심연으로 물러나던 무의식이 나에게 던져주고 간 힌트에서 답을 찾아본다. 야곱 이야기!
누군가의 글에서 천사와 씨름한 야곱에 대해 봤는데, 그 글을 찾아야겠어. 인상적인 글이었는데 누구의 글이었더라?
존 샌포드였다!
[야곱이 천사를 그냥 보내지 않고 축복을 내려줄 때까지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는 것은, 자신의 경험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 때까지 그 경험에서 물러서지 않았다는 의미다. 야곱이 정신적으로 위대한 인물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정신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아무리 힘겹고 두려운 상황에서도 그것의 의미를 발견할 때까지 결코 물러서지 않는 사람은 바로 야곱과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치열하게 싸우는 사람은 결국 영혼의 암흑 상태에서 벗어나 새롭게 태어나게 된다. 반면 정신의 투쟁에서 꽁무니를 빼고 도피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영영 놓치고 만다.] 벨 훅스, <올 어바웃 러브>, 책 읽는 수요일
왜 이 글을 여기에 옮겨 적는데 울컥하는 거야?!
도망가고 싶던 내 마음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힘들고 지치고 더 이상 못 버틸 것 같았던 내 마음이 시비를 걸고 싶었던 걸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맞짱 뜨자. 여기서 끝장을 보자!'라고 말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이 도전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기 전에 나는 계속 도와줄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꿈을 함께 분석한 분석가는 '꿈에서 전화연결이 안 된다는 건 내 안에 실마리가 있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날 그 꿈속에서 나는 얼마나 112와 연결되기를 바랐는가? 번지수를 잘못 찾은 줄도 모르고 애가 닳도록 핸드폰만 쥐고 있는 나에게 꿈속 남자가 싸움을 걸지 않았다면 이 꿈은 어떻게 끝났을까? 그 남자가 나를 죽이겠다고 덤벼든 덕분에 나는 내 안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이 남자를 이길 수도 있을 것 같아. 이 남자는 어차피 나를 못 죽여.'
전문상담교사의 부재 덕분에(?) 나는 많은 아이들의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융 학파 분석가를 만나 새로운 배움을 시작할 수 있었다. 힘듦만 쳐다보고 있던 나에게 꿈은 무대를 마련해주었다. 내가 야곱에게 투사하던 내 모습을 알아채지 못할까 봐 금방 알아챌 수 있는 스토리로 각색해서!
2년 전 꿈이 오늘 새삼스레 나를 찾아온 이유, 그때처럼 다시 천사가 '어떤 경험'이라는 모습으로 나를 찾아오면 물러서지 말고 끝까지 버텨보라는 것일까? 버티면 결국 천사의 축복이 있을지니!
천사는 천사의 모습으로 찾아오기보다는 '경험'이라는 모습으로 찾아오는지도 모르겠다.
[바이올렛과 레드의 조합, 머리는 천상에 발은 땅에]
"나는 내가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나는 내 존재의 중심을 신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