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범벅이 된 상처

귀로 듣는 컬러, 옐로우와 레드

by Redsmupet

꿈이 너무 강렬했던 걸까? 오늘은 이른 새벽 잠에서 깼다. 꿈을 기록하고 다시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몸을 일으켜 바틀장으로 갔다. '일출 일몰'이라는 이름의 바틀이 눈길을 잡아끌었다. 옐로우와 레드 컬러의 조합이 뜨고 지는 해의 빛깔 같다.

이 바틀은 오라소마의 창시자, Vicky Wall의 바틀이기도 하다. 그녀의 고단했던 인생 여정이 이 바틀 안에 담겨있다. 의붓어머니의 학대 속에서 자란 비키는 이른 나이에 집을 나와 약초상 밑에서 일을 하며 허브를 배운다. 좀 살만해지는가 싶을 때 그녀는 당뇨에 걸린다. 삼십 대 중반이었다. 당뇨는 그녀의 발과 시력을 야금야금 갉아먹어갔다. 그녀가 최초의 이퀼리브리엄 바틀을 만든 건 완전히 시력을 잃을 즈음이었다. 고단한 생의 절정에서 비키는 세상에 빛이 담긴 병을 선보인다.

그녀의 바틀에 담긴 옐로우와 레드는 섞이면 오렌지 컬러가 된다. 이 컬러는 환희와 통찰을 상징하는 동시에 상처와 트라우마를 말한다. 정반대에 있을 것 같은 것들이 한데 모여진 컬러, 그녀의 오렌지빛 삶 속에서 이들이 만난다. 상처와 환희, 트라우마와 통찰.

이 바틀이 이른 새벽부터 나를 깨운 꿈을 풀어줄 수 있을까?




어제 꿈에서 나는 나의 모든 애인들을 만났다. 대학시절 첫사랑부터 지금의 남편까지 어떻게 하룻밤 꿈에 그들이 다 나올 수가 있지? 이런 꿈이 악몽인 건가?

첫 장면은 버스 안이었다. 버스는 버스인데 아주 특이한 버스였다. 양쪽으로 좌석이 3개씩 붙어있고, 배를 탄 게 아닌가 싶게 파도가 버스 통로로 들이닥쳤다. 나는 버스 뒤편 오른쪽 창가에 앉아 있었다. 다행히 파도가 나한테까지 물을 뒤집어 씌우지는 않았다. 옆에 앉은 사람들은 덮쳐오는 파도에 흠뻑 젖어버렸다. 어느 순간 버스가 일반 고속버스로 바뀌어 있다. 보통 버스처럼 좌석이 좌우로 두 개씩이다. 이번엔 내가 왼쪽 창가 자리에 앉아있다. 내 옆에 나의 몇 번째 남자 친구가 앉아있다. 그가 지도 앱을 보며 버스 종착지에서 집에 가려면 내륙을 가로로 횡단해서 가야 하는데 그 길을 잘 모르겠다며 서울에 갔다 다시 남쪽 끝에 있는 그의 집으로 가야겠다고 말한다. 그를 도와줘야겠다. 나는 지도 앱에 다시 버스 종착지와 그의 집 주소를 입력하고 길 찾기 버튼을 누른다. 지도 앱에 우리나라 전도가 뜨고 가장 잘록한 부분을 가로지르는 길이 빨갛게 나타난다. 그에게 내비게이션만 보면서 가면 잘 찾아갈 수 있다고, 이 길이 새로 뚫린 길이니 고생하지 말고 한번 시도해보라고 말한다. 자신을 못 미더워하는 그를 보며 내가 같이 가줘야 하나 걱정하는데 그가 나에게 같이 가달라고 부탁한다. 자기 집까지 같이 갔다가 가 달란다. 그를 도와주기로 한다.

버스에서 내리자 다른 사람이 나타난다. 나의 첫 번째 남자 친구. 말없이 그를 안아주었다. 그때 스치는 생각, '그가 내 남편과 참 비슷하구나. 그런데 나를 정말 사랑하는 건 내 남편이야.'

그가 가고 또 다른 남자 친구가 내 앞에 서 있다. 그도 안아주었다. 그다음 사람도, 그다음 사람도.

도대체 거기서 몇 명의 옛 연인들을 안아준 거지?

어느새 나는 작은 마을버스를 타고 있다. 내가 근무하던 학교 정문이 보인다. 이제 내려야겠다 생각하고 하차벨을 눌렀는데 버스 정류장이 생각보다 멀리 있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서 내려주는 건지 조마조마해진다. '샘마을'이라는 방송과 함께 버스가 선다. 모두 버스에서 내린다. 종점이었다. 버스에서 내린 나는 잠에서 깼다.


이별이 쉬웠던 적이 없었다. 매번의 이별은 그때마다 최악이었다. 누가 먼저 이별을 통보했건 이별 앞에서 매번 나는 처절한 희생자가 되어 있었고, 상대방은 세상 몸 쓸 놈이었다. 우연히라도 다시는 만나지 않기를, 제발 그들이 아주 아주 잘 살아서 나를 손톱만큼도 떠올리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런 그들이 이렇게 꿈에 한꺼번에 나오니 이건 분명 악몽이다. 그런데 꿈이 무섭지가 않다. 꿈속에서 그들을 안아주는 내 마음이 너무나 평온하다. 뭘까? 이 꿈.


꿈에 이어 나를 부른 바틀이 비키의 바틀인 걸 보면 꿈도, 바틀도 오늘 나에게 '상처'에 대해 말해주고 싶은가 보다. 매번의 이별이 최악이었고, 거기서 큰 상처를 받았다고 여기는 나에게 그 상처를 다시 한번 보지 않겠냐고 말하는 것 같다. 정말 그 상처가 그렇게 큰 것이었니?


그런 경험이 있는가? 넘어졌는데 무릎에 피가 범벅이 됐다. 엄청 크게 다친 것 같아 일어나지도 못하겠고 눈물만 뚝뚝 떨어진다. 엄마가 와서 업고 집으로 데려가 물로 씻겨준다. 흙이랑 피가 다 씻겨나가고 나니 상처가 상상했던 것보다 너무 작다. 엄마를 보고 멋쩍게 씩 웃는다.

어렸을 때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경험, 이게 갑자기 생각났다. 혹시 내가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그 이별들이 나에게 준 상처도 이런 것이었나?


이별의 상처가 아주 큰 상처일 것이라는 추측은 내가 완벽하게 희생자였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남들은 다 말리는데도 나는 당신을 믿었어. 내가 당신한테 어떻게 했는데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라는 생각이 내 상처를 후벼 팠다. 그런데 그 생각 뒤에 감춰진 생각을 보게 된다.

'당신에게서 내가 갖고 싶은 모습을 발견했어. 당신과 함께 있으면 그게 내 것이 되는 거지? 그런데 나는 그게 좀 내 생각대로 다듬어졌으면 좋겠어. 지금 당신이 가진 그대로는 부족해. 왜 내 말을 안 들어주는 거지? 왜 내가 바꾸고 싶은 대로 안 따라와 주는 거지? 너는 내가 되어야 하는데 왜 자꾸 너는 너라고 하는 거지?'

그가 이 말을 들었다면 이렇게 대답했을까?

"네가 생각하는 나는 내가 아니야. 그건 네가 바라는 너지!"

희생자는 없었다.


상처에 덕지덕지 붙은 생각들을 물로 씻어내고 나니 그 안에 진짜 생각이 또 붙어있다. 그 생각까지 씻어내고 나니 실제 상처는 예상보다 너무 작다. 생각이 피처럼 엉겨 붙어서 상처가 그렇게 작은 줄도 모르고 아프다고, 서럽다고 울고 있었다. 꿈속에서 내가 안아준 나의 남자 친구들이 실은 매번의 이별 앞에서 상처가 너무 크다고 서럽게 울고 있는 나였던 것 같다.


[옐로우와 레드의 조합, 일출과 일몰]


"삶의 기쁨에 나 자신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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