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당한 태몽

귀로 듣는 컬러, 옐로와 핑크

by Redsmupet

"너 혹시 임신했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뜸 소리부터 지르는 동생

"짜증 나~ 그래 임신했다. 했어~!!"

동생이 짜증을 내든 말든 신나서 얘기를 했다.

"나 태몽 꾼 것 같아. 그 애 태몽인가 봐!"


이미 이란성쌍둥이를 낳아 키우며 개고생하고 있는 동생에게 임신은 날벼락같은 일이었다. 정말 그 아이를 나아야 하나 고민하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있었는데 여기저기서 전화가 왔단다. 내가 전화를 하기 전에 이미 태몽을 꿨다며 임신을 물어보는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 들어나 보자. 어떤 꿈이었는데?"




꿈속에서 나는 동양화에서 볼 법한 풍경 속에 있었다. 깊은 산 중 어떤 언덕 위에서 호수를 내려다보며 낚시를 하고 있었다. 나 혼자였다. 아주 깊고 맑은 호수에서 거대한 물고기가 튀어 올라왔다. 햇빛에 반사된 비늘이 무지갯빛으로 반짝였다. 신비로운 물고기의 모습에 매료되어 한참을 넋을 놓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자 달이 보인다. '그새 밤이 된 건가? 그런데 저게 뭐지?'

환한 보름달이 하나가 아니라 두 개다.


나의 태몽일 리 없으니 임신 가능성이 있는 동생일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이 꿈을 꾼 지 벌써 십 년이 넘었다. 그 조카가 벌써 초등학교 3학년이니.


"언니, 시댁에서 꾼 꿈이 더 마음에 들어. 미안하지만 언니 꿈은 내 태몽으로 안 받을래!"

동생은 나의 꿈을 쿨하게 거절하고 전화를 끊었다.

'치! 진짜 좋은 꿈같은데'


동생에게 거절당한 내 꿈이 오늘 아침 '재탄생'이라는 이름의 바틀로 명상을 하다가 생각났다.

"네가 동생의 태몽이라고 생각했던 꿈, 그 꿈이 너에게 하는 말을 이젠 들어보지 않을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 꿈을 꾼 건 정확히 11년 전, 보건교사로 일하기 시작하던 해였다.

내가 보건교사가 된 건 어찌 보면 동생 덕이었다. 대학원을 마치고 '학자'가 되는 것이 나의 길이 아닌 것 같아 방황하던 때 동생이 말했다.

"언니, 우리랑 같이 임용고시 준비하자. 언니는 보건교사 자격도 있잖아~"

동생 부부는 수학과 커플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제부는 회사원이 되고 동생은 대학원에 가서 교원자격증을 땄다. 그러던 어느 날 둘은 결혼을 했다. 임용 시험을 준비하는 동생을 보며 제부가 어느 날 회사에 사표를 냈다. 수학선생님이 되고 싶다면서. 그렇게 둘은 부부 고시생이 되었다. 교원자격증이 없었던 제부는 먼저 교육대학원에 들어갔다. 고시생 부부에게 쌍둥이가 생겼다. 어찌나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인지 동생 부부의 생활은 전쟁 같았다. 그 와중에 동생은 임용 시험공부를 계속할 수 없어 포기했다.

시간이 흘러 쌍둥이가 사람의 모습을 갖춰가자 동생은 다시 임용시험 준비에 들어갔다. 제부도 대학원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시험공부를 시작하던 때였다. 동생이 나에게 같이 임용시험 준비를 하자고 권한 게 이때였다.

제부가 먼저 사립학교 정교사가 되었다. 나도 얼마 안 있어 사립학교에 정교사로 채용되었다. 동생은 교사 말고 임산부가 되었다. 또다시 임신이 동생의 발목을 잡게 된 것이다. 내가 태몽이라 우기던 꿈을 꾼 게 이때였다.

이렇게 글로 적다 보니 내가 참 철딱서니가 없었구나 싶어 진다. 동생에게 그 임신이 어떤 것이었을지 왜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동생의 어려운 선택 덕분에 나에겐 예쁜 조카가 생겼지만 동생에게서 '선생님'이라는 자리는 멀어져 버렸다.


철딱서니 없던 언니가 동생의 마음이 어떤지도 모르고 계속 태몽이라고 우기던 꿈, 태몽이 아니면 이 꿈은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던 것일까? 지금까지 나에게 전해주지 못해 내 주위를 맴돌고 있는 이 꿈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꿈에서 물은 감정이나 무의식을 상징한다. 그리고 물고기는 무의식이나 무의식의 충동을 상징하는 동시에 생명력이나 풍요, 개인의 성장처럼 다산성에서 파생되는 의미들을 나타내기도 한다. 고대 문화권에서는 달의 여신을 기리는 제사에 물고기를 제물로 바쳤는데, 여기에는 여신을 경배하는 뜻과 함께 물고기의 다산성을 전해받는다는 의미도 있었다고 한다.


무지갯빛 물고기를 낚고서 두 개의 보름달이 환히 뜬 밤으로 이어지는 나의 꿈이 달의 여신에게 바치던 제사와 연결된 것은 아닐까 상상해본다. 여신에게 바치는 제물이자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의 염원을 상징하던 물고기, 내가 바친 물고기는 무지갯빛 비늘로 덮여있었다.

무지개는 '변용, 하늘의 영광,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의식의 단계, 하늘과 땅의 만남, 현세와 낙원을 잇는 가교 또는 경계, 하늘의 신의 옥좌를 나타낸다'라고 한다(진 쿠퍼, <그림으로 보는 세계 상징문화사전>, 까치).


혹시? 에이 설마~ 아니 그래도 혹시? 싫어~ 그렇게 생각하기는 정말 싫어. 그런데 그 무지갯빛 물고기가 자꾸만 '보건교사'로 살았던 10여 년의 시간처럼 느껴진다. 그게 여신의 선물이라고? 인정하기 싫지만 왠지 그런 것만 같다. 동생의 말 한마디가 아니었다면 나는 보건교사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무심코 던진 동생의 한마디, 내가 낚아 올린 무지갯빛 물고기.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도 일은 했었다. 간호사로 대형병원에서 근무하기도 하고, 대학교에서 조교로 일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일들 속에서 나는 진짜 '사회생활'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간호사로 근무하던 시간들은 나에게 그냥 학교의 연장처럼 느껴졌다. 분위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 속에서 성장하는 동료들과 달리 나는 계속 학생이라는 페르소나를 붙들고 있었다. 대학교라는 일터도 나에겐 그랬다. '보건교사'로 학교에 와서야 비로소 나의 진짜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다. 서른이 넘어서야 학생이라는 페르소나를 벗어버리고 어엿한 직장인이 된 나는 호되게 신고식을 치렀다. 어디 하나 둥글게 다듬어진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상태에서 여기저기 부딪히며 생채기를 냈다.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둥글둥글해진 것 같진 않다. 대신 딱딱하기만 하던 게 조금 말캉말캉해진 것 같다. 어떤 게 와서 부딪히면 뾰족 튀어나온 부분에 제일 먼저 닿기는 하는데 말캉말캉하니까 생채기를 내지는 않는다. 그냥 "어! 여기에 뭐가 좀 튀어나와있네" 정도일 뿐. 이게 무지개의 '변용'일까?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만년 학생이고 싶었던 것 같다. 울퉁불퉁한 내가 사회로 나가 둥글둥글해질까 봐 겁이 났다. '아무도 나를 바꿀 수 없어!'라는 고고함 속에서 나오고 싶지 않았다. 동생의 말 한마디에 제 발로 걸어 나와서 알게 된 건 나를 바꿀 필요가 없다는 것, 나는 그냥 나로 존재해도 괜찮다는 것이었다. 다만 딱딱함을 풀고 말캉말캉해지기만 하면 된다는 걸 십여 년의 시간이 아주 조금씩 알려줬다.

여전히 울퉁불퉁한 나는 딱딱함 대신 말캉말캉함을 얻고 학교 밖으로 통통통 튀어나와 새로운 곳에서 통통통 경쾌하게 튀어 다니고 있다. 이번에 건너가야 하는 무지개다리는 뭘까?

11년 전의 그 꿈이 오늘 나에게 '변용'의 묘미를 알려준다.


그런데 달은 왜 두 개였을까?



[옐로우와 핑크의 조합, 재탄생]


"나는 사랑을 들이마시고 사랑을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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