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로 듣는 컬러, 로열블루와 골드
"나의 아름다운 딸아, 너의 황홀한 춤의 대가로 네 소원을 들어주마.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
"폐하, 저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가 갖고 싶어요. 그의 머리는 너무 성스러워요. 그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이리 가져다주세요."
헤로데왕과 그의 의붓딸 살로메의 대화를 떠올려 보았다.
Red Book에 기록한 융의 적극적 상상에서는 살로메가 엘리야와 함께 등장한다. 추악한 살인자 살로메가 융에게 "당신은 저를 사랑하나요?"라고 묻자 경악을 금치 못하는 융에게, 구약에 등장하는 위대한 예언자 엘리야는 자신과 살로메가 언제나 하나였다고 말한다.
말도 안 되는 난센스! 지고의 선이 추악한 악과 하나라니!!
이 모순 앞에서 융은 회귀하지 않고 앞으로 나간다. 자신의 세계를 손으로 더듬으며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우리 안에는 저마다의 살로메가 살고 있다. 당신은 당신의 살로메를 만난 적이 있는가?
내가 신성하다고 여기는 것, 좋다고 여기는 가치를 가차 없이 참수해버리는 흉측한 괴물이 당신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꿈에서 참수당하거나 목을 매달아 죽는 장면이 반복되던 때가 있었다. 도끼로 머리를 찍어서 죽이는 게임 속에 내가 들어간 적도 있었다. 2년 전 겨울과 봄, 여름. 얼마나 많은 머리를 잘라버리고 목 졸라 죽이고 도끼로 찍어내리고서야 끝났는지, 그 많은 죽음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던 것인지 지금 이 자리에서 생각해본다.
무슨 음악이 좋을까?
나도 융처럼 적극적 상상이라는 걸 해보고 싶다.
나에게로 들어가는 것이니 내 소울 바틀 soul bottle이 좋겠다!
오라소마에는 각자의 소울 바틀이 있다. 우리가 태어날 때 가지고 태어난 빛깔. 나의 소울 바틀은 로열블루와 골드의 조합, 32번 "sophia" 다. 깊고 깊은 밤하늘 속에서 '지혜'라는 별을 찾는 사람.
골드의 선율이 나를 이끈 곳은 작년 봄의 어느 꿈 속이다.
그날의 꿈은 마치 텔레비전을 보는 것 같았다. 꿈속에 내가 있는 게 아니라 꿈 밖에서 꿈을 바라보는 내가 있었다.
어떤 여자가 깊은 물속으로 뛰어든다. 자살을 하려는 것이다. 한 남자가 그 여자를 구하러 물속에 따라 들어간다. 끝이 안 보이는 깊은 바다라고 생각했는데 저 아래가 밝게 빛난다. 남자가 여자에게 물 위로 올라가자고 설득하지만 소용없다. 여자는 더 깊이 들어간다.
갑자기 저 깊은 곳에서 피라미드처럼 생긴 무언가가 밝은 빛을 내며 올라온다. 머리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피라미드다. 여자의 머리가 그 피라미드 모양의 머리 무더기에 붙더니 몸통에서 떨어져 나간다. 머리 무더기들이 꼭 개구리알 같다.
수많은 꿈에서 내 목을 따려는 괴물로 나타나던 나의 살로메는 어느새 내 안으로 들어와 내 몸에서 목을 떼어버린다. 2년 전 꿈과 1년 전 꿈, 1년 간 내 안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꿈에서 자살을 한다는 것은 꿈꾼 이의 '자발적인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나도 모르게 어떤 변화를 통해 성장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변화를 선택하고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서 성장해 나가는 걸 의미한다.
왜 하필 머리일까?
'머리'하면 누구나 쉽게 떠올리는 건 이성, 지성, 논리 이런 것들이 아닐까? 바로 그거다. 꿈에서도 머리는 그런 것들을 상징한다. 칼 G. 융은 사람들의 심리 유형을 크게는 내향형과 외향형으로, 세부적으로는 사고형과 감정형, 감각형과 직관형으로 정리했다. 감각 기능은 보는 것이다. 여기에 노트북이 있고, 저 사람은 어떤 옷을 입고 있고, 이런 것들.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 감각 기능이 발달한 사람이 아닐까? 사고는 우리가 감각 기관을 통해 파악한 사실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어떤 현상을 보고 통계를 돌려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처럼. 그리고 감정은 사고를 통해 연결한 것에 대해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다. 내향형인 사람의 가치는 자기만의 기준을 따르며 외향형인 사람의 가치는 사회적인 잣대에 따른다. 마지막으로 직관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이다. '감'이 발달한 사람이라고나 할까. 이 중에서 머리는 '사고형'을 상징한다. 사고와 감정, 감각과 직관을 골고루 쓰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가장 발달된 기능, 가장 익숙하고 편한 기능을 계속 꺼내 쓴다. 그게 나에겐 '사고'였을까?
당신에게는 어떤 것이 우등 기능이고 어떤 것이 열등 기능인가? 힌트를 주자면, 사고와 감정, 감각과 직관이 짝이다. 이들이 각각 시소에 타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사고 기능이 우등 기능이라면 당신의 열등 기능은 감정이다. 감각 기능이 우등 기능이라면 직관이 당신의 열등 기능이다. 모든 기능을 균형 있게 발달시킨다는 건 시소가 왔다 갔다 계속해서 움직이는 걸 의미한다. 이럴 땐 사고 기능을 썼다가 저럴 땐 감정 기능을 썼다가 왔다 갔다 움직이는 것.
사실 '사고 기능'은 나의 우등 기능이 아니라 열등 기능이다. 그걸 오늘 아침에야 비로소 온전하게 받아들였다. 아침 Red Book 수업 시간, 적극적 상상을 아주 잠깐 연습했다. 자신의 우등 기능을 떠올려보며,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으면 자신이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이나 가장 싫어하는 사람을 떠올려 본 시간, 누가 나타나든 그 사람에게 말을 걸어보는 것이었다. 나에게 떠오른 건 엉뚱하게도 '이상한' 이웃이었다.
'저 사람은 완전히 자기 세상에만 사는 것 같아.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그게 다 맞대.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며 뭐라고 말을 걸까 고민하다 갑자기 '풋!' 웃음이 나왔다.
'그거 나 같아!'
그래 나다. 나는 내 기준이 중요하다. 남이 뭐라 하든 나에게 가치 있으면 그건 소중한 거다. 내향 감정형, 이게 나의 우등 기능이었다. 삶은 그렇게 살면서 왜 나는 나의 우등 기능이 '사고 기능'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을까?
대학교에 입학해서 동아리에서 '세미나'라는 걸 처음 해봤다. 정해진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그 자리에서 나는 얼음이 되어버렸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 책을 읽고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지? 어떻게 저런 질문을 하고 저런 답변을 하는 거지? 내가 바보인가?'
그 열등감은 나를 책벌레로 만들었고 그때부터 책 속으로 엄청 파고들었다. 언젠가 매일매일 SNS에 책 한 권씩 독서평을 올리자 누군가 나에게 말했었다.
"어디 아픈 거 아니야? 정상이 아닌 것 같아. 뭐 이렇게 책만 봐~"
그렇게 책 속에 묻혀서 나는 나를 사고형 인간으로 개조하려고 발버둥 쳤다. 그러다 문득 나의 진짜 우등 기능인 '감정 기능'이 작동하는 순간이면 '왜 이래'라며 얼른 덮어버리려 했던 것 같다.
내가 나를 속이는 동안 나의 무의식은 지켜보고 있었던 걸까?
'어디까지 가나 보자.'
그러다 '이거 해도 해도 너무 하네'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꿈이 작동하기 시작한 게 아닐까?
'저 머리를 잘라버리자!'
그 여자의 머리는 자신의 몸통을 버리고 개구리알처럼 생긴 머리 무더기를 선택했다. 개구리알이나 개구리는 변형을 상징한다. 개구리알에서 올챙이가 나오고, 올챙이 꼬리가 사라지면서 앞다리 뒷다리가 생겨서 완전히 다른 모습의 개구리로 변신하는 것처럼.
무의식의 자궁 안에서 개구리알로 다시 돌아간 나의 머리는 1년이 지난 지금 다시 개구리가 되었을까? 이번엔 어떤 개구리가 되었을까? 지금의 내 상태를 보면 개구리알로 돌아갈 때보다는 조금 더 자유로운 개구리가 된 것 같다. 나를 좀 덜 볶고,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내 모습에 웃어주는 개구리. 마음에 어떤 호기심이 발동할 때 전보다 더 가볍게 저지르고 보는 개구리!
[로열블루와 골드의 조합, Sophia]
"나는 깊은 기쁨과 나의 존재 안에 명료함을 가져다주는 평화에 열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