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로 듣는 컬러, 페일 바이올렛과 페일 핑크
'여배우'라는 이름의 바틀이 있다. 옅은 바이올렛과 핑크색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이 바틀은 영국 TV 드라마에 출연했던 여배우 빅토리아를 위해 만든 바틀이어서 '빅토리아 바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바틀이 보일 때면 나는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지금 내가 맡은 배역은 뭐지? 잘 연기하고 있는 거야? 혹시 지금 발연기를 하고 있는 거 아니야?"
셰익스피어는 세상 모든 것이 무대이고, 세상 사람들은 모두 배우라고 말한다. 우리는 한 사람이자 수많은 배역을 맡아 무대에 오르는 다양한 등장인물이기도 하다.
당신은 아무 역할도 맡지 않은 순간을 기억할 수 있는가?
만약 그런 순간을 기억한다면 당신이 기억하는 그 순간은 "아무 역할도 안 하는 사람의 역할"을 하는 순간일 것이다. 그 순간조차도 당신은 무대 위에 올라선 배우인 것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의 다양한 무대를 오가면서 이 가면을 쓰기도 하고 저 가면을 쓰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심리학에서는 그 '가면'을 '페르소나'라고 부른다.
이 무대에서 저 무대로 옮겨 다니는 순간들 속에서 진짜 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
'내가 지금 어떤 역할을 연기하고 있다'는 걸 알아채는 순간들 속에 진짜 내가 존재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내가 지금 어떤 역할을 연기하고 있다'는 걸 망각한 채 내가 곧 그 역할 자체라고 믿어버리는 순간 진짜 나를 잃어버리게 되는 게 아닐까?
어떤 무대에서 맡았던 배역이 좋다고 내가 바로 그 등장인물이 될 수는 없다. 그 무대에 영원히 머무를 수도 없다. 연극이 끝나면 무대도 철거되어야 하니까.
8월의 어느 날 내가 꿨던 꿈이 그랬다.
잠에서 깬 지 얼마 안 되어서 아직 침대 안인데 바깥이 소란스럽다. 침대에 누워있지만 동시에 바깥에서 상황을 보고 있다. 꿈이라 가능한 장면.
사람들이 잔뜩 몰려왔다. 우리 집을 철거해야 한단다. 남편이 그 사람들을 막으려고 용을 쓰지만 소용없다. 작업복을 입은 남자들이 집안으로 들어와서 사람들을 끌고 나간다. 끌려나가면서 아무리 몸부림쳐도 소용이 없다. 집 안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나 놀랍기만 하다. 다행히 아무도 내가 방 안에 있다는 걸 모르는 눈치다. 나는 침대에서 꼼짝달싹 하지 않고 그 상황을 지켜본다.
장면이 바뀌어 우리 가족이 어떤 초가집에 와 있다. 예전에 우리가 살던 집이란다. 가족회의를 한다. 철거를 하는 이유가 우리 집이 우리 땅을 넘어서 크게 지어졌기 때문이란다. 우리 땅을 넘어간 부분만 철거하기는 힘들 것 같고 집을 다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할 것 같다. 우리에게 집을 새로 지을 돈이 있는지 걱정을 하다 잠에서 깼다.
꿈에서 집은 나의 의식이 거주하는 공간이다. 그 집을 철거하는 꿈이라니 대체 뭐지?
집에 도둑이 침입한다거나 현관문이 부서져서 누군가 침입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꿈은 많이 꿨다. 집에 누군가 침입할까 봐 두려운 건 내 의식 안으로 새로운 것이 들어오는 걸 두려워하는 것이다. 보통은 무의식으로부터 올라오는 낯선 것에 대한 불편감이 두려움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현관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건 무의식으로부터 올라온 새로운 것이 나의 의식과 맞짱을 뜨겠다는 것이고, 도둑으로 몰래 들어오는 것은 최대한 마찰을 피하고 온건하게 내 의식에 자리를 잡아보겠다는 시도이다. 그러면 집을 아예 철거하겠다고 들이닥치는 것은? 이렇게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는 내 무의식의 의도는 무엇인가?
작업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리 집에서 끌어낸 사람들을 보면 왜 이렇게까지 과격한 조치를 취해야 했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도대체 나의 의식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끌어안고 살고 있었던 거야?'라며 나도 놀랐던 장면. 나는 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수많은 일들이 끌어내도 끌어내도 계속 나올 만큼 내 의식 안에 자리를 잡고 있으니 집이 남의 땅을 넘어갈 만큼 커질 수밖에. 각본 상으로는 벌써 퇴장했어야 할 인물들이 무대에서 나가지 않고 계속 버티고 있으니 드라마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있겠는가.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 무대가 터져버릴 것 같은 이상한 상황에서 나의 꿈은 그 무대를 아예 철거해버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새로 집을 지으려니 돈이 걱정이 되는가? 꿈에서 돈은 나의 정신적, 정서적 에너지와 자원을 상징한다. 벌써 무대에서 퇴장했어야 할 인물들을 붙잡고 있는데 썼던 에너지와 자원이라면 새 집을 짓고도 남지 않을까? 무대를 철거하는 마당에 그 배역이 혹시나 또 필요하면 어쩌나 미련 가지고 붙잡을 필요는 없을 테니.
이 꿈을 꾸던 시기에 나는 종잡을 수가 없는 상태였다. 학교를 그만두고 오라소마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던 시기에 나에 대한 확신이 무너지고 있었다. 간절히 바라던 퇴직이었는데 막상 학교를 그만두고 나니 불안함이 몰려왔다. '이대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릴까 봐 두려웠다. 커다란 걸 놓아버린 만큼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면 안 된다는 생각. 그런데 그 생각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들.
대학교를 졸업하고 병원에 취업을 하고, 보건교사가 되고, 조금의 방황은 있었지만 내 삶은 항상 너무나 무난했다. 한 번은 이 칸에 들어갔다가 또 한 번은 저 칸에 들어갔다가 커다란 서랍장 안에서 이 칸 저 칸을 옮겨가기만 할 뿐 그 서랍장을 아예 벗어난 적이 없었다. 무슨 용기에서인지 그 서랍장을 나온 순간 나에게 찾아온 두려움 속에서 한참을 헤매다 맞이한 8월, 나의 꿈은 이제 새로운 판을 짜자고 말을 걸어왔다.
꿈이 건네는 말이 위로가 되었다. 새 판을 짜고, 새 시나리오를 쓰고, 거기서 새 배역을 맡아보자고 그리도 과격하게 말하는 꿈이 참 든든했다.
삶은 끊임없이 바뀌는 무대가 아닌가?
그렇다면 나의 배역도 바뀔 수밖에. 그게 또 배우를 하는 재미가 아니겠는가?
[페일 바이올렛과 페일 핑크의 조합, 여배우]
"나는 내 삶의 무대에 등장하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였을 때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