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안에 가둬 놓았던 꼬마

귀로 듣는 컬러_로열블루

by Redsmupet

두 개의 세상을 살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움직이는 세상과 잠으로 빠져들어서야 시작되는 세상.

이십 대까지는 잠자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잠이 워낙 많은 탓에 초저녁부터 내려앉는 눈꺼풀이 원망스럽기만 했었다.

꿈을 기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상황이 역전되었다. 잠자는 시간, 꿈을 통해 무의식의 세상을 사는 그 시간을 침해받기 싫어졌다. 심지어 그 세상으로 도망가고 싶어 잠만 자던 때도 있었다. 병원에서는 이런 나에게 '우울증'이라는 진단명을 붙여주고, 우울증 약을 처방해주었다.

이것 참, 글이 몇 편 나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공황장애에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이제는 우울증까지!

생각해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공황장애와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은 어차피 쌍둥이 같은 존재였고 우울증은 거기서 파생되는 불안과 공포를 느끼지 않기 위한 방어전략이었으니까.

몇 달 동안 정말 많이 잤다. 아니 잠만 잤다. 그 속에서 무수한 꿈들을 만나고 그나마 잠을 안 자는 동안 한 일이라고는 그 꿈을 기록하는 일밖에 없었다.

잠만 자기 시작한 지 서너 달이 지났을 무렵 꿈속에서 나를 닮은 아이를 만났다. 그리고 그 아이가 나를 다시 세상으로 나오게 해 주었다. 고마운 그 꼬마가 오늘따라 자꾸만 생각난다.

오라소마 에센셜 음악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 로열블루의 파장을 담은 피아노 선율 속에서 그 꼬마를 다시 불러본다. 로열블루 파장이 선사하는 깊고 광대한 공간 속에서 다시 꿈속으로 들어간다.




꿈속에서 나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꼬마애를 돌보고 있다. 보모 같은 역할이었다. 시간이 되면 약을 챙겨주는 게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꼬마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꼬마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한다.

"생일 선물로 꼭 받고 싶은 게 있어요."

그게 무엇인지 물어보니 꼬마가 대답한다.

"놀이공원에 가고 싶어요. 이 성 밖으로 나가서 놀아보고 싶어요."

그 꼬마는 왕자였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어서 태어나서 성 밖에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한 꼬마 왕자.

나는 누군가에게 왕자를 데리고 놀이공원에 가도 될지 허락을 구한다. 꼬마의 부탁이 너무나 간절해서 들어주고 싶다. 성 관리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그건 너무 위험한 일이라고 거절한다. 그때 누군가가 끼어든다.

"왕자님의 여동생이랑 같이 데리고 가면 돼요. 그 여동생은 아주 용맹한 공주예요."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왕자가 성을 탈출해 놀이공원에 갔다. 성이 발칵 뒤집혔다. 아까 끼어들었던 목소리가 또 들린다. 마치 동화의 마지막 장면을 읽어주듯이 말하는 목소리.

"공주가 함께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꿈에서 아이는 나의 과거이거나 미래일 때가 있다. 과거 상처 받은 경험 속에 갇혀 성장을 멈춰버린 내면 아이일 수도 있고, 내 안에 있으나 아직 발현하지 못한 잠재력이나 창조성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다. 꿈속 아이의 나이에 내가 경험한 사건에 대한 감정이나 기억일 수도 있고, 그 아이의 나이만큼의 시간 전에 시작된 일 일수도 있다. 예를 들어 꿈속에 나타난 아이가 3살이라면 3년 전에 시작된 어떤 일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내 꿈에서 만난 꼬마는 무엇이었을까?

세상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나 스스로 가둬놓은 어떤 것이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은 좀 이상하잖아. 이런 건 말하면 안 될 것 같아.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게 편한 거야'라며 스스로 묻어버린 생각과 느낌들. 그런데 알고 보면 그게 바로 진짜 나의 알맹이였던 것 같다.

편한 게 편한 게 아니었던 것, 그게 나를 낮의 세상에서 한 발 물러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내가 나를 속이는 데 실패하고 잠의 세계에 스스로를 가둬버린 것이다.

사실 나는 꿈속 꼬마의 엄마였던 것 같다. 내 안에서 태어난 나의 알맹이를 내가 아는 세상의 기준과 다르다고 성에 가둬버린 사람. 다행히 꼬마는 어른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성을 탈출해 놀이공원에 갔다. 용맹한 여동생과 함께. 참 재밌는 게 여기서도 여동생이다. 용맹한 여동생.

그래~ 내 안에 든든하게 동행하는 용맹한 여동생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내가 가둔 그 꼬마가 지금은 나에게 신나게 노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잖아. 놀이공원에서 신나게 놀이기구를 타듯이 그렇게 내 안에서 나오는 것들을 가지고 신나게 놀아보라고 손짓하고 있잖아!


무의식이 이끄는 꿈의 세상에 눈 감아버렸다면 나는 지금도 끝없는 잠 속에 빠져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잠이 잠에서 탈출시켜준 것이다. 그 소중한 잠을 위해 낮의 세상에서 잠의 세상으로 넘어가는 순간을 작은 리츄얼로 맞이한다. 로열블루 음악을 들으며 나의 아니무스를 부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나의 아니무스여, 오늘은 나를 어떤 곳으로 데리고 갈 건가요?"


*칼 G. 융은 인간의 무의식 안에는 집단무의식이라고 부르는 층이 있는데, 그 안에 무수한 원형들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수많은 원형들 중에서 남자의 무의식에는 여성성의 원형적 심혼이, 여자의 무의식에는 남성성의 원형적 심혼이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각각 아니마와 아니무스라고 이름을 붙였다(존 A. 샌포드, <무의식의 유혹>, 아니마).


[오직 로열블루만]


"직관은 내가 더 명확히 들을 때, 더 분명히 볼 때, 더 확실히 맛볼 때 피어납니다. 숨겨져 있는 모든 것이 명확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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