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로 듣는 컬러_블루와 그린
아침에 눈 뜨자마자 꿈을 기록해온지 어느덧 4년째.
칼 G. 융의 [Red Book]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나만의 Red Book을 써보고자 지난 꿈 기록들을 훑어본다.
4년간 내 무의식의 기록, 그 속의 글자들이 꿈으로 다시 생생하게 살아난다. 바로 어젯밤 꿈처럼.
무수한 꿈들을 지나 바로 1년 전 꿈 앞에 멈춰 선다.
너무나도 솔직한 꿈 앞에서 여전히 솔직하지 못한 내가 그 꿈속으로 다시 한번 들어가 보고 싶어 오라소마 바틀장 앞에 선다.
"누가 날 도와줄래요?"
혼잣말 같은 작은 속삭임에 반짝이는 바틀 하나.
블루와 그린 컬러가 한 병에 담긴 "The Heart Rescue" 바틀이다.
1년 전 어느 날 꿈속에서 나는 빨래를 하고 있다. 빨랫감이 하나 가득인데 '세탁기로 다 같이 돌리면 되니까 별거 아니야.'라고 생각한다.
장면이 바뀌어 어떤 집에 있다. 꿈속 우리 집. 동네 제일 끝, 내리막길에 있는 집이다.
'여기에서 자전거를 대여해주는 것이 좋겠어'라고 생각한다.
다음 장면, 동생과 국수를 먹으러 간다. 국숫집 오른쪽에서는 사람들이 카누 타는 법을 배우고 있다.
'우리도 저걸 할 걸 그랬나? 여기가 바닷가였나? 맞다. 저 앞이 바다지'라고 생각하는데 어느새 나와 동생이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 동생이 말한다.
"언니, 여긴 대서양이야. 우리가 드디어 대서양 바다에 발을 담가 보는 거야."
감격에 겨워 맑고 깊은 바닷물을 한없이 들여다본다. 너무 맑아 그 속에 들어가고 싶지만 물안경이 없어서 망설여진다. 저 바닷속에 상어가 있는 게 아닐까 무섭기도 하다. 망설임과 두려움은 잠시 뿐, 바다에서 배를 타는 사람들, 바닷속에서 다이빙을 즐기는 사람들이 바닷속을 봐주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빨래는 연금술에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과정과 같다. 빨랫감과 물, 세제가 한데 뒤엉켰다가 헹궈지면서 분리되고, 또 한 번 뒤엉켰다가 헹궈지면서 분리되는 과정이 의식과 무의식을 혼합하고 거기서 나온 불순물을 분리해서 제거하고 다시 혼합하는 순환 과정과 닮았다. 꿈속에서 제일 먼저 나는 의식과 무의식을 통합해내는 연금술의 한 단계를 수행한다. 꿈을 기록하고, 상담을 받고, 또 상담받은 내용을 글로 정리하면서 지내온 시간들이 혹시 연금술사가 되기 위한 수련과정이었을까?
빨래를 마치고 나서 해야겠다고 생각한 일이 자전거 대여다. 바퀴가 두 개인 자전거는 의식과 무의식의 조화를 상징한다. 두 개의 원, 두 개의 바퀴가 조화롭게 잘 굴러가야 자전거가 앞으로 나갈 수 있다. 바퀴 하나는 앞을 향하고, 다른 바퀴는 뒤를 향한다면 그 자전거는 마냥 제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꿈을 함께 보던 융학파 분석가는 나에게 '사람들에게 자전거를 대여해주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의식과 무의식의 조화, 대극의 합일을 이끌어주고 싶다는 의미'라고 해석해주었다.
나의 무의식이 나에게 하는 말, "네가 하고 싶은 게 이거야! 이제 세상으로 나가 자전거 대여점을 열자."
하지만 나는 그 말 앞에서 "내가 뭐라고. 아직은 아니야"라고 말하며 숨어버린다.
그 순간 꿈은 나에게 여동생을 보내준다. 내 꿈의 단골.
함께 국수를 먹고 함께 대서양에 발을 담그며 나를 바다로 이끄는 동생.
꿈에서 음식을 먹는 것은 영혼의 에너지를 보충하는 것이다. 앞으로 있을 내면의 여정에 필요한 에너지. 그리고 바다는 무의식을 상징한다. 동생과 함께 영혼의 에너지를 보충하고 바다에 발을 담갔지만 아직까지 나는 무의식에서 만나는 것들을 해석할 물안경이 없어 주저한다. 상어처럼 무시무시한 그림자를 만나 잡아먹힐까 봐 두려운 마음과 함께 나를 바다로 이끄는 수많은 조력자들을 보며 용기를 내 바닷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이 일렁인다.
왜 이 꿈 앞에 멈춰 섰을까? 1년도 더 지난 꿈 앞에.
나는 사실 거짓말쟁이다.
간절히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아닌 척하는 데 선수다.
내가 그럴 자격이 없을 것 같아 두렵고, 하고 싶은 걸 말해버리고 못하게 될까 봐 하기 전부터 가슴이 쪼그라든다. 이런 내가 솔직해지기로 결심한 게 불과 몇 주 전이다. 나는 이제 누구를 만나든 큰 소리로 말하기로 결심했다.
"저는 사람들에게 자전거를 대여해줘요."
아직은 이 말을 입 밖으로 끄집어낼 때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또 거짓말쟁이가 되고 싶은 마음이 발동하기도 한다. 아무 말 안 하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으니 그 속으로 숨고 싶어 진다. 하지만 아무 말 안 해서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도 이젠 싫다.
꿈이 혹시 이 말을 하려는 걸까?
"너 계속 갈팡질팡할래? 1년 전에도 내가 말했잖아. 하라고. 자전거 대여점."
사실 이 꿈을 꾼 후 몇 달이 지나서 나는 물안경을 선물 받았다. 꿈속에서.
정말 빼도 박도 못할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안경까지 줬으니 이제 핑계 댈 것 없지?"라고 말하는 꿈.
계속 머리만 굴리는 나에게 오늘 "The Heart Rescue" 바틀이 가슴에서 올라오는 느낌에 집중할 때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넌 가슴이 없니? 머리에서 네 가슴으로 통하는 길이 막혀버린 거니? 그럼 어디 한번 다시 뚫어보자."
[블루와 그린의 조합, The Heart Rescue]
"나는 가슴으로부터의 진실을 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