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로 듣는 컬러, 오렌지와 바이올렛
오라소마에는 "타조"라는 이름의 바틀이 있다.
바틀 윗부분의 오렌지 컬러는 모래를, 바이올렛 컬러는 머리를 상징한다.
모래 속에 머리를 콕 박고 있는 타조, 그게 이 바틀의 이름에 대한 설명이다.
타조는 왜 모래에 머리를 처박고 있을까?
나만 그 심정을 잘 아는 걸까?
숨고 싶은데 숨을 데가 없을 때 머리라도 처박고 싶은 심정, 두 눈이라도 일단 감아버리고 싶은 마음.
수치심.
그래! 수치심이 느껴지는 순간의 심정이다.
이 바틀이 눈에 띄던 날, 내가 깨어난 꿈속에서 나는 '수치심'이라는 감정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준 놈을 만났다.
서울에서 며칠 머무를 일이 있어서 호텔에서 묶던 날, 잠들기 전부터 걱정이 몰려왔다.
'또 꿈에 나타날 텐데. 혼자 감당할 수 있을까?'
대학생 시절, 동생과 자취를 하던 집에 침입한 강도, 하룻밤의 일이었지만 내 삶에서는 계속 반복되는 밤이 되어버린 그 시간. 그 시간은 나에게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이라는 진단명을 안겨주었다.
밤에 자다가 누군가 침입할까 봐 문이랑 창문이 제대로 닫혔는지 수십 번을 확인하다 밤을 꼴딱 세고, 아주 미세한 소리에도 누군가 집에 들어온 것 같아 겁에 질려 숨도 쉴 수 없는 날들이 있었다. 길가는 사람이 갑자기 나에게 칼을 들이댈 것 같은 어처구니없는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했다.
융학파 상담가에게 2년 넘게 꿈 분석을 받고, 오라소마라는 내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도구를 얻게 되면서 지금은 불쑥불쑥 찾아오는 두려움의 강도가 많이 낮아졌지만 낯선 곳에서 잠을 자는 게 아직 쉽지는 않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여지없이 꿈에 강도가 나타났다. 호텔 방에 침입한 강도는 그 날처럼 내 목에 칼을 댄다.
'아~ 또야? 내가 또 이 강도를 부른 거야? 왜? 도대체 왜?'
평소와는 다른 반응.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진 않았나 보다!
꿈속의 나는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고 무엇이 이 강도를 불러들였는지를 탐색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도에게 말했다.
"나에겐 당신이 원하는 게 없어!"
그러자 그 강도가 갑자기 호텔 직원으로 바뀌었다. 이 직원이 나에게 룸서비스로 마사지를 해주겠단다. 먼저 손을 마사지해주고 나서 발을 마사지해주다가 왼쪽 엄지발가락에서 커다란 자갈 하나를 꺼낸다. 아프진 않은데 돌이 빠져나간 자리에 큰 구멍이 나서 피가 흐른다. 호텔 직원은 멀뚱하니 보고만 있는다. 이불이 피로 흥건해진다. 나는 손으로 발가락을 눌러 지혈을 한다.
어느새 장면이 바뀌어 어떤 식당 안에 있다. 식당 주인 할아버지가 내 왼발을 무릎 위에 올리고 붕대로 정성스레 감싸주고 있다.
목에 칼을 들이대는 강도의 침입으로 시작해서 할아버지의 따뜻한 손길로 끝난 꿈.
타조가 모래에 처박고 있던 고개를 들 타이밍이 된 걸까?
그날, 그 놈들이 뻔뻔하게 하고 간 말이 있다.
"문단속 똑바로 해~ 그래야 이런 일 안 당하지!"
강도질을 해놓고 '네 탓'이라고 말하고 간 놈들, 그 놈들의 말이 웃기게도 나에게 각인된 것 같다.
'왜 그렇게밖에 못했을까, 정말 왜 문단속도 제대로 못해서 그런 일을 당했을까, 나는 왜 나에게 이런 일을 당하게 할까.'
'내 잘못'이라는 생각, 그 돌멩이를 마음에서 빼내는데 참 오래도 걸렸다. 머리에서 그게 아니라는 걸 인정하는 건 빨랐지만 마음에서 그게 진짜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는 데는 20년 씩이나 필요했다.
'내 잘못'이라고 여길 때 덤으로 얻은 수치심을 '내 잘못'이 아니라고 인정하면서 벗어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왜 고개를 처박고 있니? 당당하게 고개 들어 내 삶을 봐야지.
뒤로 돌아가서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줘야 할 때가 있다.
내가 그 아이였을 때는 너무 어려서 너무 서툴러서 다른 사람들 옆에 서서 함께 비난했을지라도, 충분히 큰 다음에는 다시 뒤로 돌아가서 그 아이를 달래줘야 그 아이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꿈의 도움으로, 그리고 타조 바틀이 이끄는 손길로 스물한 살의 여자애를 안아준다.
할아버지가 내 발을 따뜻하게 감싸주듯이.
"괜찮아~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오렌지와 바이올렛의 조합, 타조]
"나는 새로운 열정을 갖고 삶의 장애와 어려움에 직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