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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smupet Jul 17. 2021

생리통이 이렇게나 착잡할 일이야?

이런 날에는 이런 향기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생리통이 말끔히 사라졌다!


십 대 중반, 초경을 시작하고 몇 번의 생리를 했을까, 갑자기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배가 뒤틀리고, 헛구역질이 나고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온 몸에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생리통은 매 달마다 나를 응급실로 데리고 갔다. 지금처럼 '생리공결'이라는 게 있었다면 차라리 하루를 푹 쉬어도 좋았을 텐데,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그런 게 없었다. 게다가 그 시절 나는 '개근상'에 대한 집착이 강했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는 가야 하는 곳이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개근'에 대한 집착은 사라졌지만 생리통은 여전했다. 한 번은 법원에 출석해야 하는 날 아침에 생리통이 찾아왔다. 그날도 어김없이 응급실에 실려갔다. 문제는 법원에 9시까지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피고인 신분으로 출석해야 하는 상태라 생리통 때문에 빠질 수는 없었다. 신길역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산재 노동자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집회에 참석했다가 유치장 신세를 지게 된 나는 법원 출석일을 받아서 나올 수 있었다.


왜 하필 오늘이야??????


기가 막혔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진통제는 투여된 상태였다. 간호사를 붙잡고 퇴원시켜달라고 말했으나 거절당했다. 아직 검사가 남았다며 기다리라는 간호사의 말에 보호자만 남겨두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대학 시절, 나와 자취를 하며 동생 같은 언니 덕분에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던 나의 동생, 그녀가 나의 보호자였다. 진통제 덕분에 법원에 도착할 무렵 생리통은 사라졌고, 가벼운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생리통이 감쪽같이 사라진 건 대학을 졸업할 때쯤이었다. 초, 중,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 '학생'으로 살았던 생애주기를 졸업하면서 그렇게 어마 무시하던 생리통도 사라졌다. 너무 신기한 일이었지만, 어떤 측면에서 이건 당연한 현상이기도 했다. 성장하는 몸은 항상 새로운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그 상태에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하다. 생리통도 그렇다. 사람마다 다른 건 적응기간이다. 물론 새로운 상태에 적응한 몸이라도 여전히 불편함을 가져올 수는 있다. 모든 사람이 같은 몸과 같은 환경 속에 살고 있지는 않으니. 생리주기가 내 몸의 일상으로 자리잡기까지 걸린 시간이 딱 '학생의 시간'만큼이었다는 게 신기할 뿐이었다.


긴 시간의 평화기가 지나 나에게 다시 생리통이 찾아왔다. 처음만큼 강렬하진 않다. 아니, 비교할 만큼도 안된다. 생리를 하는 건지 아닌지 느낌도 없던 상태에서 '생리가 시작되겠구나'를 느끼는 정도로 바뀐 것이다. 뻐근하고 묵직한 아랫배의 통증, 나에게 다시 찾아온 생리통은 딱 이 정도다. 별거 아니라면 별거 아닌 변화인데, 이게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아무래도 나이 때문인 것 같다.


"나도 이제 폐경기에 접어드는 걸까?"


생리주기도 부쩍 짧아졌다. 40대 중반, 이제 슬슬 내 몸이 완경을 준비한다 해도 이상할 게 없는 나이. 하지만 딱히 그 나이를 느낄 기회(?)는 없었다. 몇 살 때부터였을까, 의도적이었는지 그냥 그렇게 된 것인지 모르게 나는 내 나이를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 나이를 물을 때면 내 나이가 몇인지 한참을 더듬었다. 가끔은 내 나이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이, 어느 순간 나와 내 나이 사이에 틈이 생기더니 그 틈이 점점 더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쪽에서 커다랗게 벌어진 틈 너머로 보이는 45살의 나이를 타인 인양 바라보며 살고 있었다.


생리통, 

짧아지는 생리주기,

감지되는 몸의 변화

갑자기 45살의 나를 저 틈 너머에 두고 아직 여기에 있는 내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나는 왜 '폐경기'라는 단어를 저 멀리 밀어놓고 있었을까?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을 때 왜 그 틈을 메우려 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지금 내 마음이 이렇게 요상하지는 않을 텐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학생의 시기'를 졸업하며 나를 떠났던 생리통이 '가임기'를 마치려는 나의 몸을 다시 찾아왔다. 그때도 그랬던 것 같다. 더 이상 '학생'이 아닌 나에게, 나는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사회생활을 하는 나는 여전히 반쯤은 학생 같은 상태였다. 이번에도 그런 걸까? 새롭게 시작되려는 인생의 단계 앞에서 나는 또 과도기를 겪고 있는 것일까?


이번에는 나에게 찾아오는 몸의 느낌들을 온전히 경험하고 싶다. 그 몸이 전하는 감정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싸우거나 끌려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지금이 온전한 체력과 정신으로 경험하게 될 생의 마지막 변화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대단한 통증은 아닐지라도 생리통은 불편하다. 그 통증을 그대로 견뎌내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내가 나에게 아로마세러피를 해준다.

클라리 세이지, 펜넬, 라벤더, 제라늄, 안젤리카 루트, 로즈, 재스민 등의 에센셜 오일이 생리통에 주로 쓰인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에센셜 오일을 선택했다. 지금 나의 생리통은 내 몸의 새로운 주기를 시작하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맞는 에센셜 오일이 무엇일까 이것저것 시도해보다 찾은 건 세이지와 샌달우드다.


세이지 에센셜 오일 한 방울,

샌달우드 에센셜 오일 한 방울.

손에 덜어 양 손을 비비고 코로 가져가 깊게 들이쉰다.

그 손으로 아랫배를 마사지해준다.


세이지 에센셜 오일은 사실 조심해서 사용해야 하는 오일이다. 케톤 성분인 존 함량이 높아 임산부가 사용할 경우 유산을 초래할 수 있으며, 간질발작을 유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위험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약과 독은 아주 미묘한 차이라고 하지 않는가. 약과 독의 경계를 오가는 것이 오히려 몸에 더 극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예를 우리는 종종 목격하지 않는가? 세이지도 그런 부류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세이지는 '자극제'이다. 정체된 몸을 흔들어 순환시켜준다. 튜존을 포함하는 케톤 성분은 세포 재생을 촉진하는 화학성분이기도 하다. 세이지는 먼지 떨이개 같기도 하다. 세이지가 몸 곳곳에 쌓여있는 먼지들을 털어내고 나면, 다음은 샌달우드 차례다. 청소를 하면서 알게 된 빈 곳, 그곳을 채워주는 샌달우드는 나의 몸과 마음에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많은 것이 쌓였을 나의 몸 구석구석을 정리하는 시간, 너무 무겁지도 않게,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게. 지금 '완경'이라는 새로운 단계를 맞이하는 나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게 아닐까?

다행히 세이지와 샌달우드가 뻐근하고 묵직한 통증을 슬그머니 가라앉혀 주었다. 약간 한약과 닮은 진한 풀내음이 어쩐지 마음에 든다. 지금이라서 이 향이 마음에 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45살의 나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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