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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smupet Aug 11. 2021

걱정하는 나를 걱정하는 나에게

이런 날에는 이런 향기

어제 코로나 백신 접종을 했다.

그 전날에는 그가 백신을 접종했다.

나의 걱정은 그가 백신 접종을 예약한 날부터 시작해서 3일 전 극에 달했다. 심장 수술을 한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119를 부르는 게 좋을까, 내가 운전을 해서 데리고 가는 게 좋을까, 운전대에서 손을 놓은 지 몇 년은 되었는데 지금이라도 운전 연습을 좀 해야 하는 건 아닐까, 그가 입원하면 병간호를 해야 할 텐데 아이들 밥은 어쩌지, 어느 병원에 입원하는 게 좋을까, 만약 그가 죽기라도 하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걱정이 걱정을 부르며 형태가 없던 걱정은 디테일을 갖춰갔다.


그러다 문득 정신이 들면서 나의 걱정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걱정이 지나치면 그 일이 현실이 될지도 모르잖아. 부정적인 생각에 집착하면 부정적인 에너지가 모인대잖아. 이렇게 걱정하다 정말 내 걱정이 현실이 되면 어떡해? 그만 걱정하자. 너! 그만해. 이렇게 걱정하면 안 돼!! 정말 나 때문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할 거야?


매번 이런 식이다.

시작은 그냥 걱정이다. 무엇인가 발화점을 건드린다. 그러면 걱정이라는 놈이 활활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불타오른 바로 그 시점, 바로 그때 거기에 기름 한 드럼을 붓는다. 그건 걱정하는 나를 걱정하는 나다.


어느 날 나를 잘 아는 이가 나에게 물었다.

"걱정 많은 민서 씨를 그냥 좀 두면 어때요? 걱정 좀 하면 어때요?"


그 말을 듣고 알았다. 내가 걱정하는 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걸. 하지만 나는 걱정 대마왕이라는 걸.

나는 나를 쿨한 사람이라고 굳게 믿었다. 아니, 그런 사람이라고 최면을 걸었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걱정이 많은 그에게 훈수를 두곤 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 일이 진짜 긍정적으로 풀리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정말 그렇게 되는 거야!"


뭐야!

이 말, 정말 그에게 들으라고 한 말 맞아? 이건 나에게 하는 말이잖아!

사실 나는 쿨하지 않다는 걸, 진짜 대책 없는 걱정 대마왕이라는 걸 '인정'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알아채고 나서야 알았다. 그에게 뱉어내던 말들이 나를 향한 것이었다는 걸.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 생각하는 대로 된다는 그 말마저도 나는 나의 걱정 목록 안에 고이 모셔둔 것이다.


걱정 많은 나를 그냥 둬보라는 제안을 수락했다.

이틀 전 백신을 맞으러 가는 그를 따라나섰다. 백신을 맞고 과민반응이라도 생길까 봐 걱정하는 나도 함께 데리고 갔다.

'걱정할만하지. 걱정해도 돼. 괜찮아. 내가 있잖아.'

걱정하는 나를 다독여주며 병원으로 향했다. 백신 접종을 마치고 나온 그는 간호사에게 잔여백신이 있는지 물었다. 잔여백신이 있으면 함께 온 아내도 맞고 가면 안돼냐고 물었다. 간호사가 공책 하나를 건넸다. 거기에는 10명이 조금 안 되는 사람들의 인적사항이 적혀있었다. 잔여백신 예약 명단이었다. 맨 아랫줄에 나의 인적사항을 적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나의 걱정은 두배가 되었다. 그를 향한 걱정과 나에 대한 걱정.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크게 불편하진 않았다. 오히려 살짝 장난스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두배로 늘어난 걱정을 끌어안고 낑낑대는 나를 보니 어쩐지 짠하면서도 귀여웠다.

'걱정돼 죽겠지?'

'응, 너무 힘들어.'

'진짜 힘들겠다. 그 걱정들을 우리 같이 꺼내볼까?'

'죽으면 어떡해? 백신 맞고 죽은 사람들도 있잖아.'

'맞아. 나도 무서워. 그건 정말 있을 수 있는 일이니까.'

'평생 남을 후유증이라도 생기면 어떡해?'

'진짜 그럴 수도 있지. 맞아. 그런 걱정도 생길 만 해.'

'난 뇌출혈이 제일 무서워. 응급실에 근무하면서 뇌출혈로 실려온 사람들 봤잖아. 너무 끔찍해.'

'많이 봤지. 나도 싫어.'


한없이 걱정 목록을 늘어놓는 대화,

걱정을 더 증폭시킬 것 같은 이 대화가 오히려 걱정을 편안하게 바라보게 해 주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죽음을 걱정한다. 하지만 더 이상 그 걱정이 나를 압도하지는 못한다. 그냥 말을 걸 뿐.





사람마다 걱정의 영역은 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성취하지 못할까 봐 걱정한다. 어떤 이는 거부당할까 봐 걱정한다. 경제적인 빈곤에 대한 걱정이 가장 큰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시당할까 봐 걱정하는 이도 있다. 자신의 안위에 대한 걱정이 대부분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상실이 가장 두려운 이도 있다.

나의 걱정들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건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다. 어쩌다 이런 걸 가장 많이 걱정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그렇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게 바로 나다. 그 이유를 알면 좋겠지만, 몰라도 상관없다. 걱정하는 나와 대화하는 법을 익혀가는 시간도 꽤 괜찮으니 말이다.


걱정하는 나와 나의 대화, 그 속에 평온과 유머가 스며들면 좋을 것 같아 향기를 탐색한다. 어떤 향이 우리의 대화를 좀 더 말랑말랑하게 해 줄까? 

일단 나를 좀 잡아주는 게 필요할 것 같아. 뿌리의 힘이라면 나를 좀 단단하게 붙잡아 줄 것 같다. 작은 바람에도 이리저리 흔들리다 보면 불안이 증폭될 수밖에 없으니 그 흔들림을 조금은 잡아주고 싶어 졌다. 베티버 에센셜 오일을 꺼냈다. 거기에 나무의 진액에서 추출하는 머흐를 몇 방울 첨가해 단단하게 뿌리내린 듬직한 나무를 연상시키는 향을 만들었다. 다음은 로즈우드. 아로마 인사이트 카드에서 로즈우드의 감정 키워드는 '수용함'이다. 걱정하는 나와 대화를 하다 보면 걱정하는 내가 답답할 때도 있고, 그런 나를 외면하고 밀쳐내고 싶은 순간도 있다. 그러니 로즈우드가 들어가 줘야겠다. 여기에 저먼 카모마일을 몇 방울 첨가해 마무리했다. 저먼 카모마일은 다양한 임상실험에서 알레르기성 염증을 완화시키는 효과가 입증된 에센셜 오일이다. 이런 효과 때문일까? 저먼 카모마일의 감정 키워드는 '흘려보냄', 영어로는 Letting go이다. 저먼 카모마일의 향기가 말한다.

"나에게 과민반응을 일으키는 모든 것들을 다 컨트롤하면서 산다는 게 가능할까? 괜한 것에 힘쓰지 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만 최선을 다하면 그만이지. 결과는? 그건 내 몫이 아니잖아. 미래는 내 몫이 아니야. 시간의 몫이지."


여름 나무의 향기가 난다.

여름 나무는 가을의 결실을 걱정하고 있을까?

지금 이 순간 한창인 여름을 만끽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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