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 있는 나를 만나는 글쓰기
오늘 내 마음의 색깔을 글로 쓰면 어떨까?
어떤 이를 만났습니다.
"저는 이런 거 싫어요. 사람을 어떤 유형이라고 딱 정해놓고 틀에 맞추는 건 질색이에요."
컬러테라피에 대해 이런 오해를 하는 분이 의외로 많습니다. 이런 오해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을 규정해주는 틀이 편하다고 말합니다. 싫어하는 사람은 자신을 어떤 틀 속에 넣으려는 것 같아 불편하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 사이를 왔다 갔다 합니다. 어떤 때는 "너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해주는 게 위로가 됩니다.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없을 때, 나 때문에 내가 힘들 때 주로 그렇습니다. "너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이 주홍글씨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당신이 뭔데 나를 규정해? 당신이 나를 알아?"
같은 말이 다르게 들리는 이유, 그 말에 깔린 전제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너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 앞에 생략된 말, "지금"
제가 좋아하는 글이 있습니다. 파스칼 메르시어의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펼치자마자 나오는 인용문입니다.
[우린 모두 여러 가지 색깔로 이루어진 누더기. 헐겁고 느슨하게 연결되어 언제든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펄럭인다. 그러므로 우리와 우리 자신 사이에도, 우리와 다른 사람들 사이만큼이나 많은 다양성이 존재한다.
- 미셸 에켐 드 몽테뉴, <수상록> 제2권 I] - 파스칼 메르시어, <리스본행 야간열차>, 들녘
우리와 우리 자신 사에는 우리와 다른 사람들 사이만큼이나 많은 다양성이 존재합니다. 세상의 모든 색이 우리와 우리 자신 사이에 존재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또 우리가 알아채야 하는 건 바로 '지금' 내 안에서 빛나는 컬러입니다.
"당신은 이런 컬러네요."라는 말 앞에 "지금 이 순간"이라는 말이 항상 숨어있다는 걸 기억한다면 컬러테라피에 대한 오해를 좀 풀 수 있을까요? 그때 그때 다른 나와 당신, 우리에 대해 좀 너그러워질 수 있을까요?
'그때 그때 다른 빛깔로 반짝이는 나를 글로 써보면 어떨까?'
Aura-soma의 기본컬러 14개를 글로 쓰면서 들었던 생각입니다. 오라소마 바틀이 없어도, 테라피스트를 찾아가지 않아도 '색깔'은 너무나 일상적인 것이니 색깔로 일기를 써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유난히 이 옷이 입고 싶더라. 빨간색 원피스! 오늘 내 마음은 빨강인가?"
"그러고보니 내 가방, 내 핸드폰 케이스 모두 블루네! 나의 블루는 어떤 마음이지?"
이런 일상에서 시작하는 색깔있는 글쓰기, 누군가에게는 에세이, 누군가에게는 일기.
당신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지금, 저와 함께 시작해볼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