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마음에 오라소마 바틀장 앞으로 다가갔다. 명상을 하다 바틀이 터져서 산산조각 난 적이 있었다. 제발 이번만은 아니기를 바라며 찬찬히 살펴보는데 아주 얌전하게 뚜껑이 부서진 바틀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이건 고마운 거지. 폭발해서 산산조각 나면 쓸 수도 없는데 이건 뚜껑만 깨졌으니 밀봉해서 쓰면 되잖아?"
정말 파동이라는 게 있나 보다. 나의 파동이 다른 그 무엇과 주파수가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정말 있나 보다.
바틀이 진짜 반응할 수도 있다는 걸 아주 강렬하게 알려준 건 오라소마의 0번 바틀이었다. "영혼 구조 spirit rescue"라는 이름의 바틀이었다. 그때도 명상 중이었다. 융 분석가가 진행하는 칼 융의 <Red Book> 수업을 들으면서 각자의 영혼에 대해 명상을 하는 시간이었다.
"퍽! 쨍그랑~~"
바틀장에서 유리 파편이 튀어나왔다. 유리 파편들을 치우느라 애를 먹었다. 영혼에 대한 명상을 하는데 영혼을 구조하는 바틀이 깨지니 좀 무서웠다.
"대체 이게 뭐지?"
어제는 '호오포노포노' 명상 중이었다. 상담이나 프로그램을 하고 나면 잠깐이라도 명상을 하는 편이다. 어제도 그랬다. 호스피스 병원에서 가족 상담 의뢰가 들어와 병원에 다녀온 후였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그분들이 후회 없이 보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책에서 본 대로 명상을 했다.
"무엇이 죽음 앞에서도 사람들 마음을 그렇게 꽁꽁 묶어두게 만드는 걸까요? 나의 기억과 프로그램, 나의 패턴 속에도 그런 게 분명 있겠죠? 책에 나온 대로 저는 저의 기억과 프로그램, 패턴을 정화하겠습니다. 저의 세상과 그분들의 세상은 분명 연결되어 있을 테니까요. 미안합니다. 용서해주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연결'이라는 메시지를 가진 코랄 바틀이 깨졌다.
<코랄 컬러의 키워드>
산호, 공동체, 상호의존, 의존성, 관계중심, 공감, 연민, 사랑의 지혜
민감함, 상처 받기 쉬운, 보답받지 못한 사랑, 투사
대양, 무의식, 잠재의식
어제 가족 상담을 가면서 목표는 하나였다. 만지기!
많이 만지게 해드리고 싶었다. 가족의 살갗을.
오라소마에는 '생의 마사지'라는 것이 있다. 블루와 핑크 컬러가 함께 들어있는 '차일드 레스큐'바틀로 손을 마사지해주는 것이다. 엄지손가락부터 새끼손가락이 시작되기 전까지 손의 바깥선을 따라 부드럽게 마사지를 해준다. 딸에게 엄마의 손을 마사지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녀가 엄마의 손을 마사지할 때 그녀와 같은 생을 거쳐온 어머니의 세월을 따라갔다.
"십 대 소녀였던 어머니를 지나가고 있네요. 어머니는 그 시절 뭐가 제일 재미있었을까요? 뭐가 제일 하고 싶었을까요? 당신은 십 대 시절 뭐가 제일 재미있었어요? 뭐가 제일 하고 싶었어요? 이제 어머니의 이십 대까지 온 것 같아요. 당신이 이때쯤 태어났겠네요. 당신의 스무 살은 어땠나요? 어머니의 스무 살을 상상해보세요...... 당신 나이의 어머니에게 도착했어요. 그 시절 당신은 십 대 후반이었겠네요. 당신 기억 속의 어머니와 지금 어머니 나이가 된 당신은 얼마나 닮았나요? "
이렇게 칠십이 넘은 어머니의 현재를 지나 인생의 마지막까지 마사지를 하도록 했다.
"이렇게 엄마를 만져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가? 내 딸들도 이렇게 만져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네요."
어머니의 다리까지 다 마사지를 해준 딸을 의자에 앉혔다. 이번에는 내가 그녀의 생을 마사지해줬다.
"이 따뜻한 손이 서로 만져줬음 얼마나 좋았을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은 말.
어쩌면 그건 그녀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아직 엄마에게는 생애 마사지를 해주지 못했다. 엄마 일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살았으면서 그 시간을 온통 나로만 채웠다.
어느 날 문득 거울 속에서 엄마 얼굴을 보았다. 아빠를 쏙 빼닮은 내 얼굴에도 엄마의 모습이 있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철이 없는데 엄마라고 달랐을까?'
너무나 당연한 걸 그때까지 모르고 있었다는 게 더 놀라웠다. 나의 이십 대, 삼십 대, 사십 대는 다 그럴만하다면서 엄마의 이십 대, 삼십 대, 사십 대는 '엄마니까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였다. '엄마면서 너무한 거 아니야?'였다. 엄마로 사는 게 보통 일이 아닌 것 같다. 내가 엄마가 되어서도 엄마는 엄마니까 엄마처럼 해달라고 떼를 쓰니 말이다. 이러다 지금의 엄마처럼 60대가 되고 나면 내 마음에는 또 얼마나 많은 미안함이 쌓일까?
알면서도 엄마를 엄마 말고 '그녀'로 보는 게 참 쉽지 않다.
오늘 아침, 코랄빛으로 물든 잎사귀가 눈에 들어온다. 수많은 가을을 지나오며 단풍잎이 산호색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울긋불긋'이라는 단어 안에서 단풍잎은 그저 '노랑'과 '주황', '빨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