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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Oct 14. 2020

3번의 만남, 9개월의 영상통화 그리고 연애 #1

어쩌다 시작한 국제연애 


솔직히 나는 국제연애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지금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국제연애"라는 단어를 내 손으로 브런치에 쓰게 될 줄 몰랐다. 결코 많은 의미를 두는 건 아니다. 그냥 어색해서 그런다.


국제연애라는 단어는 내 인생에서 오직 타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저 그런 사람들의 연애사를 듣는 게 좋았고 내 인생에선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두고 싶은 것이었다. 나에게 노란 머리의 파란 눈을 가진 남자들은 그저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음 직한 '대상'이었고, 난 그저 내 상상 속 편견으로 덮인 채 남겨진 그들을 감상하는 게 좋았다.


국제연애에 부정적이었던 이유는 내가 연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이다. 같은 한국인끼리도 말이 안 통해서 지지고 볶고 서로를 답답해해서 죽으려고 하는 게 연애인데,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이랑?? 정말이지 하룻밤 또는 몇 시간 그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를 보며 나를 대입해보는 간접 연애만으로도 충분한 로맨스라고 생각했다. 




"If you wanted to meet another Irish before you go back we could go for tea or a chat. Just an idea that's all."

(네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아이리쉬 한 명 더 만나보고 싶다면 차나 한잔 하면서 이야기 나누는 거 어때? 그냥 생각해봤어.)


뜻밖의 제안이었다. 언어교환 사이트에서 알게 된 그와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문자를 나눴다. 그때 나는 1년의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3일 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몸이었다. 뒤숭숭한 마음에 집콕만 하고 있던 차 이대로 한국으로 가기엔 아쉬운 마음이 컸기에 그의 제안이 반갑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더블린에 살았는데 아이리쉬 친구가 많이 없었다. 내가 공부하고 일하던 곳엔 브라질, 폴란드, 터키, 스페인, 프랑스 등 다른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이 많았고 같은 '외국인'처지의 우리끼리 더욱 쉽게 친구가 되곤 했다. 나는 항상 아일랜드 사람들이 궁금했다. 그들의 진짜 삶 속에 들어가 보지 못하고 주변만 떠돌다 떠나는 여행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여느 때와 같이 한차례 비가 내려 차갑게 젖은 길거리를 걸었다.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에 보이지 않는 그. 우리는 반대편 거리에 서서 서로 도착했다고 문자를 나눴다. 어둠 속에 가까워진 얼굴을 확인한 우리는 웃지 않았다. 무척 어색했고.... 어색했다. 


"Would you like to go to the pub? or What do you fancy?"

(펍에 가는 거 어때? 아니면 뭐 하고 싶어?)


어색함이 싫은 내가 먼저 물었다. 아일랜드에선 펍이 단순히 술 마시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찬 사교 공간이니만큼 나는 캐주얼하게 물어본 것이다. 그런데 한사코 커피숍을 가자는 그.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커피 한잔 마시고 1시간이 걸리는 집에 돌아갈 생각을 하니 '아 내가 괜한 용기를 냈구나.' 싶었다. 




더블린의 스타벅스를 비롯한 카페들을 보통 저녁 8시면 문을 닫는다. 카페를 가자는 그의 완강한 제안에 우리는 세 군대를 돌아다녔고 이미 내 마음속 흥미를 잃어갈 즘 10시까지 한다는 카페를 하나 찾아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밝은 조명 아래 마주한 우리. 어색함은 한 백만 배로 증폭됐다ㅎㅎ 그는 굉장히 말랐고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하는 모습이 나로 하여금 어떤 의무감 같은 것을 느끼게 했다. 원래 나는 수다스러운 사람이 아닌데 원어민 앞에서 유치원 아이 수준의 영어로 끊임없이 말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아이리쉬 남자들은 수줍음이 많다. 짧고 시원하게 깎아 올린 머리에 오렌지 빛 수염. 보통은 심각한 표정에 거친 억양으로 말하는 그들을 보면 세상 마초가 따로 없지만 클럽이나 바에서 만났던 아이리쉬 남자들은 대부분 말이 없고 신체적 거리를 철저히 두며 도무지 속을 모르겠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도 그랬다. 웃는 것도 아닌 그렇다고 찡그리는 것도 아닌 알 수 없는 표정의 그와 카페가 문을 닫을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카페를 나와 펍으로 향했다.

역시 아이리쉬 하면 맥주(파인트)를 빼놓을 수 없지! 한결 가까워진 우리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3일간의 만남, 9개월의 영상통화 그리고 마침내 연인이 된 이야기를 연재할까 합니다.

이 이야기는 시작만 있고 아직 끝은 없어요... 서로 다른 문화 배경을 가진 남녀가 만나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지켜봐 주세요:)



2편 읽으러 가기

https://brunch.co.kr/@lullukumi/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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